OS 플랫폼, 독점과 오픈 그리고 파괴적 혁신-1

전문가 칼럼입력 :2013/12/02 14:45    수정: 2013/12/02 16:29

최성호
최성호

2000년 4월3일.

미국 연방지방법원이 마이크로소프트(MS)에 역사적인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린 날이다.

MS가 컴퓨터 운영체제(OS)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윈도95에 자사 웹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사전 탑재해 자유로운 경쟁을 질식시켰다는 것이다. MS가 IE와 경쟁 관계인 넷스케이프와 같은 브라우저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했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판결 이후에도 IE는 윈도 기반 PC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갖는 브라우저로 계속 군림했다. 이는 곧 IE가 단일 플랫폼으로써 가장 큰 인터넷 생태계가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MS가 갖고 있는 독점적인 윈도 PC 사용자 기반이 단일 산업 표준의 거대한 인터넷 시장을 조성해 준 것이다. 야후도 네이버도 구글도, 그 속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독점의 역설적 사례는 상당 기간 예외로 남을 것 같다. 요즘은 OS를 가진 회사들이 플랫폼 영향력을 자사의 핵심 사업을 위한 지렛대로 삼으면서 서비스와 하드웨어 영역 구분 없이 전후방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OS가 플랫폼을 소유한 회사의 다른 사업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활용되는 때는 없을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앱스토어라는 신천지를 만들었지만 30%라는 높은 수수료를 징수했다. 구글 역시 구글 플레이(안드로이드 앱 마켓)에서 거래세를 걷기 시작했다. 앱 사업자들은 안드로이드폰을 도피처로 삼아 사업을 키웠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시 거대 OS플랫폼의 정책 변경에 휘둘리는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콘텐츠를 박리다매하는 아마존은 2007년부터 이잉크(e-ink) 버전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을 제공해왔다. 2011년에는 음악이나 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7인치 태블릿 ‘킨들 파이어’를 199 달러에 선보였다.

이미 스마트폰이 전자책은 물론 게임과 비디오 콘텐츠까지 소비할 수 있는 기기로써 대세가 된 상황에서 아마존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전용 태블릿이 시장에서 통할지는 불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괜찮았다. 아마존이 가진 콘텐츠 파워가 킨들 하드웨어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마존같은 콘텐츠 슈퍼파워라면 전용 기기로도 시장에서 충분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8월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킨들 하드웨어의 올해 예상 매출은 45억 달러로 작년보다 26%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아마존 콘텐츠만을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전용 기기를 그렇게나 많이 산다는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마존의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매출은 올해 38억 달러로 예상되고 내년에는 56억 달러로 증가해서 킨들 하드웨어 매출을 넘어 설 것으로 모건 스탠리는 추정하고 있다.(참고로 아마존은 킨들을 디지털 콘텐츠를 파는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킨들 하드웨어 매출에서는 거의 이익을 남기지 않고 있다.)

아마존은 안드로이드 2.3(코드명 진저브래드) 기반으로 자체 OS인 '파이어'를 만들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OS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는 있지만 구글 검색, 지메일, 지도, 구글 플레이, 유튜브, 크롬 브라우저는 물론 일정, 연락처와 같은 애프리케이션들은 사용할 수 없다. 이건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벗어나 독자적인 OS플랫폼을 가지려할 때 감수해야 하는 허들이다.

아마존이 지도 회사를 인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구글 애플리케이션만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100만개가 넘는 앱이 있는 구글의 앱 생태계도 사라진다.

독자OS 플랫폼이 애플이나 구글처럼 앱 사업자들의 수익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사용자 기반을 만들지 못하면 앱 마켓 생태계를 구현하는건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마존은 영리했고 옳았다. 아마존은 핵심 사업이 필요로 하는 OS플랫폼의 성능 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HTML이라는 웹 표준이 서버에서 콘텐츠를 보여주는 퍼블리싱(publishing)형 미디어 서비스에 유리하게 출발한 것이라 아마존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적합하고 아마존 사이트 역시 웹 브라우저를 통해 이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OS는 웹보다 네이티브(native) 기능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버전이 떨어지는 안드로이드OS라도 괜찮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아마존의 콘텐츠만 볼 수 있는 전용 기기라도 아마존의 콘텐츠 파워라면 사용자가 기꺼이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구글은 최근 행보를 보면 이제 크롬 브라우저를 다가올 웹 애플리케이션 세상을 위한 독점적인 사용자 플랫폼으로 만드는 꿈의 실현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 같다.

구글은 지난 3월 크롬 웹 브라우저를 안드로이드 OS보다 상위 플랫폼으로 가져가겠다는 선언일 수 있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안드로이드 조직을 크롬 조직에 합친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이룬 그동안의 업적으로 보면 한편 의아해 보이는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구글이 검색 광고 수익 모델이 핵심인 것을 이해한다면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을 장악하는 목표를 1차 달성한 상황에서 모바일에서 PC에서만큼의 광고 수익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빨리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

모바일 기기는 작은 디스플레이의 한계로 PC보다 상품 정보를 상세하게 전달하기 힘들다. 따라서 사용자는 모바일보다 PC에서 상품 리뷰 검색을 여전히 많이 한다. 그런데 검색광고 클릭은 상품 검색 과정에서 많이 일어남으로 상대적으로 모바일에서 검색광고 노출 기회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검색광고로 유입 가능한 트래픽의 축소를 의미한다. 게다가 모바일 환경은 결제 가능한 상거래 사이트가 적고, 비싼 제품을 모바일에서 결제하는 경우도 드문 상황이다.

어쨋든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애플 OS처럼 구글이 침투하지 못한 플랫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플랫폼들은, 구글의 애플리케이션들이나 광고가 들어 갈 수 없는, 물리적으로 단절된 영역이다.

플랫폼은 일종의 영토(Territory)이며 플랫폼간 경쟁은 곧 정치가 된다. 그래서 전 세계의 영토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구글은 이제 그 영토들의 물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구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들이 동작할 수 있는 수단이자 기반으로 크롬 브라우저를 활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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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구글은 앞으로 크롬 브라우저를 최상위 전략으로 놓고, HTML5 웹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크롬 기능을 계속 확장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크롬을 웬만한 사용자 애플리케이션들을 실행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켜 사용자 접점에서 최상위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크롬은, 플랫폼 수성을 통해 자기 영토를 유지하려는 쪽 입장에서는, 구글 서비스와 수익모델을 나르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다 피차이 구글 크롬 및 안드로이드 부문 부사장이 “소비자가 가는 곳이면 우리도 어디든 갈 것”이라고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다음 회에 계속)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성호 LG전자 SBC센터장

2012년 7월에 LG전자에 입사하여 본사 조직인 스마트비즈니스센터(SBC) 센터장 역임 중. SBC는LG전자 스마트기기의 사용자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서비스와 컨텐츠 및 컨버전스를 사업부와 공동기획하고 이에 수반하는 서버 side 플랫폼의 기획 및 운영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2006년부터 2012년에 걸쳐 네이버 부사장으로 재직하였고 기획관리본부장, 검색본부장, 네이버서비스본부장 직을 수행하면서 서비스와 제휴를 총괄하였다. 1989년 국내 1호 소프트벤처로 유명했던 휴먼컴퓨터 창업멤버로서 국내 최초의 윈도용 전자출판소프트웨어인 문방사우와 워드프로세서인 글사랑을 직접 개발한 장본인이다. 현재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겸임 교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