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영어의 힘

전문가 칼럼입력 :2013/11/11 10:46    수정: 2013/11/12 15:37

임백준
임백준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 영어는 당연히 제대로 구사해야 하는 언어다.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일이 일상이기 때문에 미국생활이 17년에 이르는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적어도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온 사람들에게는) 영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좋은 교재를 찾아서 듣고,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부지런히 대화를 하고, 많이 읽고 쓰는 의식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영어실력은 제자리에서 맴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나보다 오래 미국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면서 보낸 사람이 있다. 그가 주변사람들과 영어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를 곁에서 들어보면 영어로 말하는 능력이 결코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요지는, 주어진 환경이 어떤 것이든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도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게이츠, 저커버그, 온라인 코딩 강사로'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온라인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라는 장벽에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가 될 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실전적인 영어회화를 강조하고, 대학에서도 영어공부를 실전적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20년 전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측을 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 것이다.

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편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은 영어를 장벽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넓은 세상을 가진 셈이라서 다행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내가 아는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듣는 팟캐스트 방송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이렇다. 닷넷과 관련된 최신기술 동향에 대해서 양질의 대화를 나누는 '.NET Rocks', 소프트웨어 개발 일반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지하실 코더'(The Basement Coders), 빅데이터나 병렬처리와 관련한 최신기술을 이야기하는 '케이크 솔루션 소프트웨어 개발'(Cake Solutions Software Development), 소프트웨어 업계 리더들과 수행한 인터뷰를 주로 소개하는 '체리엇 솔루션스'(Chariot Solutions), 닷넷기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딥프라이드바이트'(Deep Fried Bytes), 다양한 기술일반을 다루는 '핸솔미니츠'(Hanselminutes), 자바 기술을 다루는 '자바파씨'(The Java Posse), '자바 펍하우스'(Java Pub House)도 유용하다.

자바월드에서 진행하는 '자바월드 자바테크놀로지 인사이더', 소프트웨어 공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라디오, 스칼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스칼라타입스(The Scala Types)와 스칼라웨그스(Scala Wags). 간단하게 추려본 것만 해도 이 정도이고 이밖에 양질의 동영상과 슬라이드쇼를 찾아서 볼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채널나인'(Channel9), '파알리스'(Parleys), '인포큐'(InfoQ)가 있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코세라'(Coursera.org)도 있다.

이 모든 내용을 포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유투브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구글테크톡스'(Google Tech talks)의 유익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모든 자료가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으니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시청각 교재의 천국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교재들이 모두 영어로 작성되었고, 영어로 진행되는 교재라는 점이다.

영어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교재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이러한 교재를 소화하는데 있어 영어가 별다른 장애가 아닌 사람과 영어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자료를 마음껏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갖는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얼마 전에 한국정보통신진흥원(NIPA)에서 일군의 젊은 개발자들을 선발해서 뉴욕으로 연수를 보냈고, 나는 그들 앞에서 강연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운을 누렸다. 강연을 하는 도중에 한국에도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팟캐스트 방송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정치와 관련된 팟캐스트 방송은 많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을 다루는 방송은 없다고 해서 조금 실망했다.

나 역시 미국에서 <나꼼수>와 같은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 듣기는 했지만 정치의 과잉은 현실의 결핍을 의미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내가 앞에서 말한 종류의 팟캐스트 방송을 더 많이 들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이 등장해야 옳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업계 현실이 개발자들에게 좀처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글을 시작하면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주어진 환경이 어떤 것이든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도 없다.

가끔 한국에 있는 청년후배들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번 칼럼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다.

인터넷에 무료로 존재하는 값진 자료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능력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게이츠, 저커버그, 온라인 코딩 강사로' 뉴스를 잘 읽어보기 바란다. 뉴스가 소개하고 있는 코드(code.org)라는 웹사이트를 실제로 방문해보라. 보고 들으면서 배울 수 있는 값진 자료가 눈앞에 파라다이스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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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보네어나 앤더스 하일스버그 정도가 아니다. 게이츠와 저커버그다. 그들이 우리에게 코딩기법을 전수해 준단다. 그것도 무료다. 이것은 파라다이스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가 살아가는 세상의 지평을 파라다이스를 포함하는 곳으로까지 확장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백준 IT컬럼니스트

한빛미디어에서 『폴리글랏 프로그래밍』(2014),『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삼성SDS, 루슨트 테크놀로지스, 도이치은행, 바클리스, 모건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맨해튼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분산처리,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관계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