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카톡의 상생을 삐딱하게 보는 이유"

기자수첩입력 :2013/08/08 10:50    수정: 2013/08/08 11:13

남혜현 기자

상생은 창조경제와 같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단어의 뜻이 갈린다. 상생이니 창조니, 누가 들어도 좋은 단어일수록 뜻이 모호하다. 남경필 의원은 지난달 자신이 주최한 창조경제 토론회에서 모호한 것이 창조적인 것이라 말했다. 창조경제가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을 담았다.

그런데, '상식'이란 게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한 약속 말이다. '상생'이 그렇다. 상생은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의 개념에서 나왔다. 우리 사회에선 흔히 있는 자와 없는 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이라 해석한다.

이석우 카카오 공동 대표가 그간 논란이 됐던 '상생'에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7일 게임기자연구모임에 참석, 상생이란 말이 사실은 창조경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누구 입장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생'의 뜻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여론이 '중소기업'만 상생의 대상이라 말하는데, 대기업은 왜 상생에서 배제시키냐는 반문을 담았다.

그는 철학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중소, 신생 개발사에만 유리한 것이 상생인지를 되물었다. 위메이드나 넥슨 같은 대형 업체들을 상생에서 배제시키는 게 맞나라는 논리다.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보지 말아달라고도 강조했다. 작금의 상생 논의가 오히려 대형사에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다.

맞는 말이다. 카카오 측 설명에 따르면 매출 1억 이상을 낸 경험 있는 업체란 부분 무심사 입점 혜택은 중소개발사에 많이 돌아간다. 100여개 파트너 업체 중 60%가 카카오에서 1억 이상 매출을 올렸다. 이 중 대형 개발업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히트작을 다수 보유한 대형 업체들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카카오의 행동을 중소 개발업체들은 '상생'이라 부르기 꺼린다. 부분 무심사 입점제도가 발표됐던 지난달 30일, 한 중소 개발업체 관계자는 카카오가 손 안대고 코 풀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안드로이드와 iOS 버전을 동시에 내놓아야만 카카오에 입점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 때부터 상생과 거리가 멀었다고도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굳이 매출이 잘 나오는 게임을 수수료를 줘가며 카카오톡에 붙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카카오가 이미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을 자사 플랫폼에 쉽게 붙이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형 개발사들, 인기 외산게임이 다 들어오면 이제 애니팡 같은 신화는 나오기 힘들다는 말은 자조에 가까웠다.

개발사들은 카카오를 '슈퍼 갑'이라 부른다. 시장에서 힘 있는 자는 곧 갑이다. 카카오가 모바일 게임 시장을 평정한 이후, 개발사들은 카카오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밉보여 카카오 게임에 입점 못하면 어쩌나 몸을 사린다. 사감정이 입점 심사에 영향을 끼칠 일이 없음에도, 혹여나 피해올까 마음 졸이는게 '을'의 생존 본능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상생이란 이 수많은 '을'들이 마음 졸이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대형 개발사, 퍼블리셔에 대한 역차별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을'에 기회를 부여해 산업 전체를 고루 살리는게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상생에 대한 정의이자 약속이고 상식이다.

카카오에 초심을 잃었다고 나오는 비판은 상식을 되살려 달라는 요구기도 하다. 게다가 카카오는 게임하기를 열며 중소개발사들에 '상생'을 만들어보자 하지 않았던가. 물론, 카카오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손해보는 제도를 내놓으라 할 순 없다. 그렇지만 카카오도 중소 개발사도 손해보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는 있다.

카카오에 거는 기대는 있다. 이석우 대표는 이날 우선은 첫번째로 급하다고 생각한 심사 제도에 대해 먼저 발표했다라며 계속 보완할 점이 있어 두번째, 세번째를 준비하는 대로 발표할 것이라 말했다. 업체별 매출 등에 따라 차등 수수료율을 매기는 것에 대해서도 심사숙고 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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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가 모호한 것이 '열린 가능성' 때문이라 본다면, 상생은 그래선 안된다. 상생은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산업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이 같이 살 수 있도록 '책임'에 무게를 둬야 한다. 결국 그게 카카오도 살 길이다. 수익을 내는 100만 파트너란 카카오의 다음 목표를 위해서도 중소 개발사와 상생은 중요하다.

상생은 창조경제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