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처 개편에서 드러난 ICT 맨얼굴

기자수첩입력 :2013/01/18 08:39    수정: 2013/01/18 09:16

정윤희 기자

지난 15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업계 및 학계의 염원이었던 ICT 전담부처 신설은 보기 좋게 무산됐다. 그것도 모자라 방송과 통신이, 규제와 진흥이 쪼개졌다. ICT 정책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편입과 방송통신위원회 축소 존치.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된 셈이다.

탄식이 터져 나온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딱 맞다. 오히려 ICT 경쟁력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방통위를 그냥 놔두느니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동시에 국내의 ICT 산업 위상도 뼈저리게 드러났다. 기존에 장관급이 맡던 업무는 ICT 전담 차관의 영역으로 격하됐다. 허탈한 동시에 낯 뜨겁다. “ICT 강국 재건”, “ICT 전담부처는 시대적 사명”…. 대선을 전후해서 외쳤던 거룩한 구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자기 위안에 불과했음이 명백해졌다. 날고 긴다던 ICT 전문가들도 발표 임박 시점까지 전담부처 신설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었다.

결국 새 정부가 ICT를 바라보는 수준이 이 정도다. 나라 전체의, 적어도 새 정부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에 ICT는 없다. 어떤 ICT 분야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내놓지 못하고 추가 협의에 따를 것이란 설명 뿐이다.

심지어 인수위는 ICT를 미래창조과학부에 편입시키는 방안과 문화체육관광부에 편입시키는 방안, 이렇게 두 가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ICT란 그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의 산업에 불과했다는 방증이다.

‘진흥’에 대한 우려도 높다. 우리나라 ICT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부 차원의 진흥 정책은 오히려 트렌드에 뒤처지기 일쑤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너무나 많이 경험해왔다.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자리매김 한 것은 김영삼 정부다. 이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대한민국은 ‘IT 강국 코리아’로 탈바꿈했다. 이를 깡그리 없앤 것이 이명박 정부다. ‘ICT 경쟁력 하락’이라는 필연적인 결과가 뒤를 따랐다는 비판이 널렸다.

정부조직개편은 그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알 수 있는 청사진이다. 이는 부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박 당선인이 굳이 과학기술부에 ‘미래창조’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 역시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많은 ICT인들이 전담부처를 원한 것도 그래서다. 분산된 ICT 정책기능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헛된 기대로 끝났다.

이대로라면 ICT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눈앞의 월급과 매일 이어지는 야근뿐이다. 산업에 대한, 직업에 대한 비전은 없다. 통신, 소프트웨어, 콘텐츠, 게임…원래부터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낮았지만 한탄과 원망밖에 남지 않는다. 3D 업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ICT. 그토록 열심히 일한 대가는 남의 몫이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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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종사자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정부 개편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이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그래서 하루하루 세계 최강들과 맞부닥치고 이겨 낸다는 자부심은 '당신들만의 생각' 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이끌고 나간다는 국정 주도세력들에게 ICT는 그저 부처 한 귀퉁이에 이리저리 붙여 넣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만의 생각'이다.

부처 개편은 ICT 종사자들의 맨얼굴을, 실력을, 새 정부 파워엘리트들의 인식수준을 한꺼번에 확인 시켜 주었다. '당신들만의 생각'은 '그들만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을 틈도 여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