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 살리기’ 정책 경쟁 기다린다

기자수첩입력 :2012/03/08 10:44    수정: 2012/03/08 11:16

전하나 기자

“우리는 본(Born) 글로벌이 아니라 본투글로벌(Born To Global)일 뿐.”

지난 7일 전병헌 의원이 주최한 IT벤처 도약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부부처의 관료가 “본글로벌 세대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하자 그 자리에 있던 한 벤처기업인이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이상 본글로벌은 절대 될 수 없다”며 이렇게 반박한 것이다.

이는 용어상의 개념정립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IT벤처 지원에 대한 정부 정책이 애초에 엇박자를 내고 있는데 대한 ‘딴지’에 더 가깝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중소기업청 공무원들이 나와 “우리나라만큼 벤처 지원 정책이 많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면서 제각기 펼치고 있는 지원책들을 ‘제자랑’하기 바빴다. SW산업진흥법, SW 마이스터고,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그램, 엔젤투자매칭펀드 등 꺼내놓은 대책만 여러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콘트롤타워 없이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정책들이 결국 혼선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련부처들이 내놓는 정책 대부분이 정말 빈 손으로 시작한 20대 창업보다는 ‘안전빵’할 수 있는 중소기업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특히 이날 자리한 청년 벤처 기업가들은 정부 정책이 지원액이나 창업률에 대한 숫자에 집중하면서 정작 벤처에 대한 사회적문화·환경 조성에는 소홀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벤처 대표는 자신도 25살에 창업을 하면서 1억원의 채무를 졌다면서 “창업 자체가 모험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벤처붐이 일어나는 것을 막연히 기대해선 안된다”고 했다.

창업하는 순간 ‘빚’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회. 빚을 하루빨리 갚지 못했을 때엔 ‘루저’가 되는 사회.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인물은 탄생하기 어렵단 설명이다.

주커버그를 있게 한 실리콘밸리에서도 실패는 반복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역사와 전통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덕분이다. 실패는 계속해서 다른 도전을 낳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아무도 ‘벤처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실패를 용서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와 분위기 마련이 시급하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이맘 때쯤이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내걸고 각종 벤처 지원 정책들이 만들어질 때다. 그러나 이제껏 나왔던 그 수많은 공약들은 대부분 ‘생색내기’용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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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겠다면 벤처부터 챙겨야 한다. 이런 가운데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티켓몬스터의 전략기획실장 출신인 안상현씨 등 몇몇 벤처 기업인들이 정치권에 뛰어들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들이 내놓는 공약은 역시나 ‘벤처 실패자 구제’가 주된 골자다.

기성 정치인들도 늦지 않았다. 전병헌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를 종합해 총선공약화하고 여야할 것 없이 ‘벤처 살리기’를 위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다짐을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