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PC, 오피스로 돌아가라

황병선입력 :2011/05/03 08:13

황병선
황병선

아이패드로 촉발된 스마트 태블릿 시장의 폭발이 결국은 전세계 2위 PC업체인 에이서의 대표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필자가 예상한대로 전체 PC시장에서 아이패드와 가장 경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넷북의 판매실적 저하와 태블릿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이번 에이서 CEO 퇴진의 이유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제 MS 윈도 기반의 태블릿이 아닌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고, 이 시장은 생각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런 스마트 태블릿이 그렇게 새로운 고객을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고객의 사용 패턴을 보면 결국 아이패드는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비율보다는 집에서 넷북이나 노트북을 대신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따라서 기존의 PC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 인텔/MS 기반의 에코시스템에서 먹고 살던 회사를 걱정시키는 것이다.

PC 에코시스템 관계자들이여,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PC란 제품은 태생 자체가 사무실을 위한 기기였다. 1973년에 제록스가 “알토”라는 워크스테이션을 만든 것도 그 당시에 10년 뒤에 모든 사무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기를 만든다는 "비전"으로 설계된 제품이었다.

물론 그 제품의 미래를 읽지 못했던 제록스는 제품의 상용화를 중도에 포기했고, 제품의 핵심 기술과 아이디어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로 옮겨가게 되어서 현재의 매킨토시와 윈도로 대변되는PC 산업이 발전한 것이 오늘날이다.

사실 초기 Apple이란 8비트 컴퓨터는 오히려 사무실용 제품은 아니었다. 출발은 개인용 기기였고 게임기였으며 해커들의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Apple컴퓨터도 VisiCalc라는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초기에 사무실로의 확장이 성공적이지 못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IBM-PC도 업무용 S/W였던 Lotus 1-2-3가 없었다면 초기 시장에 안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PC가 키보드와 모니터가 있고 프린터가 있는 한 이 제품의 최고이자 최적의 시장은 오피스 머신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란 어떤 OS인가? 사실 Windows는 MS Office를 위한, Office에 의한, Office의 OS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 구조를 봐도 알 수 있다. MS 매출의 80% 이상이 두 제품에서 나오는데, 그 중 하나는 Windows OS제품군이고 다른 하나는 MS Office 제품군이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초기에 MacOS의 아이디어를 많이 훔쳤다는 욕을 먹으면서도 Windows 개발을 시작했던 이유도 이미 Mac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던 MS Excel을 PC용으로 판매하기위해서라고 알려져있다.

이미 DOS 기반에서는 그 당시 Lotus 1-2-3에게 시장을 선점당한 MS 입장에서 좀 더 미래 지향적인 Excel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Windows는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Windows는 발전해나갔고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바란대로 Excel이 PC기반의 오피스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결국 Windows라는 플랫폼의 킬러 앱은 Excel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Office로 확대된다.

PC와 Windows는 이런 과거의 유산에서 발전한 기기이고 운영체제이다. 사실 Windows는 기본적인 운영체제의 개념이 제록스가 만들었던 워크스테이션과 커다란 차이는 없다. 책상 위에서 사용하도록 만든 “Desktop” 컴퓨터에 “책상”이라는 메타포어를 사용하였고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File”과 “Folder”라는 메타포어를 사용한다. 마우스로 입력되는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서 “Pointer”가 있었고, 여러 개의 동시 작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Multiple Window”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재 키보드가 입력되는 윈도를 표시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이게 과연 “쉬운 개념”들일까?

왜 아이패드와 아이폰은 그렇게 쉬운걸까? 유아부터 나이가 많으신 노인들조차도 이런 기기를 사용하게끔 만든 것이 바로 쉬운 UI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거의 40년간 PC OS에 핵심이라 믿었던 메타포어를 모두 버렸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패드를 사용하기위해서 고객은 “File”, “Folder”, “Mouse”, “Pointer”, “Multiple Window”등의 개념과 사용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 사실 “File”이란 컴퓨터상에 저장되는 다양한 객체들, 즉 문서, 사진, 음악, 메모 등을 모두 포괄적으로 부르기 위해 추상화한 메타포어이다. 한마디로 어렵다는 얘기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보다 추상적인 개념의 메타포어가 아니라 자신에게 친숙한 실세계의 개념을 사용하고 싶을 뿐이다. “사진 파일”을 관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관하고 싶을 뿐이다. “음악 파일”의 목록을 보면서 생성 날짜나 크기 정보에는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과 가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결국 고객에게 필요한 건 추상적인 개념의 “File”을 관리하는 “Explorer” 가 아니라 “사진” 앱과 “카메라” 앱뿐이였다.

과거 윈도 모바일 OS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Windows Everywhere”라는 그들의 전략대로 PC Windows에서 사용했던 메타포어를 거의 변경없이 휴대폰 사용자에게 강요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고객들은 어떤 UI가 쉬운 지를 알게 되었다. 일부 안드로이드 OS의 제품도 아직 그런 어려운 “메타포어”를 제대로 버리지 못해서 어려운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다시 PC 시장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아이폰으로 증명된 쉬운 UI로의 변화는 다시 태블릿 시장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고객은 당연히 쉬운 UI의 제품을 원하게 되었다. 태블릿과 유사한 용도로 경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넷북 시장부터 우선 영향을 주고 있고,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개인용 컴퓨팅 제품 시장에 전반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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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인텔 기반의 PC와 Windows 그리고 MS Office가 사무실에서 사라지는 일은 20년 내에 없을 것이다. 그것들의 목적은 분명히 사무실에서 필요한 문서 작업에 최적화되도록 발전되어 왔기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반적인 고객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용도로서 그 효용성은 이제 감소되기 시작했고, 아마도 20년뒤에는 가정에서 스마트 태블릿에게 그 자리를 완전히 내주지 않을까라는 과격한 예측을 해본다. 누가20년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모든 사무실에서 1인 1 PC로 하루종일 업무용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줄을.

PC는 이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피스로. 집에서는 좀 자리를 비켜주기 바란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병선 IT컬럼니스트

다년간의 벤처 대표를 하고 세상의 뜨거운 맛을 본 개발자 마인드의 기획자. 퓨처워커라는 필명의 블로거로,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앱 개발자를 육성하면서 플랫폼전문가그룹에 대표위원으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