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UX를 디자인하는 사람들

[4인 4색, UX를 말하다-2]

일반입력 :2011/02/25 09:02

김준환

사용자 경험(UX)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세상에 알려졌기에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최근 대형 이슈로 부상했다.

UX는 사용자와 제품간 상호작용(User Interface)를 넘어서 제품 기획, 및 개발, 사용, 폐기까지에 이르는 라이프 사이클(Product Life cycle)에 걸쳐 사용자가 맞닥뜨리는 모든 범위로 확장하여 고려해야 한다는 흐름과 사용자의 복잡한 감성을 충족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흐름이 양 대 축을 이뤄왔다.

이러한 좋은 취지들이 상품화가 될 만큼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이론 수준으로 전락하는 듯 하더니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UX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UX를 통해 차별성을 꾀하고자 하는 업계 모두에게 제 2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UX와 복수 전문 분야가 집결된 배경의 구성원들

이제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위치에서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UX와 관련된 업종에 있는 것일까? 이를 논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복수 전문 분야의 집결’ 혹은 ‘다학제적’ (multi-disciplinary) 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제대로 된 UX 아이템을 발굴하고 디자인하고 솔루션화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UX 현업에 존재하는 복수 전문 분야의 집결의 의미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용성과 일관성, 심미성을 중요시하던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가 주류를 이뤘던 시절부터, 사용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많은 지식과 새로운 시각을 가진 구성원들이 필요했던 것은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기서 UX 분야가 조금 먼저 보편화되었던 미국과 서유럽 일부 국가들과 한국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 등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전공자들이 채용된 반면, 한국은 그래픽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관련 공학 중심으로 다양성을 충족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대기업과 디자인 업체가 서로 다른 원인을 갖고 있었다. 먼저 대기업의 경우, 전자 산업이 발달한 한국의 실정에서 UI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기 전에 담당자에 대한 수요가 먼저 형성된 점을 들 수 있다.

불확실성을 갖고 낯선 배경의 전공자들을 새로 채용하기 보다는 이미 익숙한 전공자를 뽑거나 내부 직원들 중 적절한 사람들로 충원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디자인 업체의 경우에는 웹 분야 등에서 그래픽 디자인 경험을 갖은 사람이거나 사용성 평가 등에 적합한 전공자들이 채용된 경우가 많아서 역시 구성원의 다양성에는 차이를 보였다.

사용 경험 만드는 UX 디자이너에 대한 요구사항

그렇다면, 이와 같은 다학제적 배경간의 시선 차이와 이질감을 넘어서 좋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UX 디자이너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평소에 어떠한 학문적인 지식과 소양을 지녀야 할까? 직급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주니어(Junior)급은 기본 지식을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자.

주니어급은 가장 할 말이 많다. 이왕이면 시작부터 잘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다양한 배경과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UX 분야에 첫걸음을 내딛곤 하곤 하는데, 그 중에는 수년이 넘도록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도 쉽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높은 경쟁 속에서 이 분야에 입문했다면 UX의 기본 지식을 최대한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기본 지식이라 함은 단어 그대로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 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다. 인지 심리학(Cognitive Science)부터 사용 성(Usability), 정보 구조(Information Science), 시각 디자인(Visual Design), 인간 수행(Human Performance),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사용자 리서치(User Research),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 등 실로 다양한 학문들이 나름대로의 체계와 철학을 갖고 발전되어 오고 있다.

또한, UX분야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현업 전문가들의 노하우와 경력을 정리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지식들이 현업에서 모두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입문 초기에 독한 트레이닝 과정 없이 현업에 뛰어드는 신입 UX 디자이너 중에는 본인들이 발생시킨 오류와 불합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모든 분야를 제대로 섭렵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그런 천재가 어디 있을까? 본인의 전공과 특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주특기와 이를 뒷받침 할만한 부특기 정도만 내 것으로 만든다면 결과의 질은 정말 다를 것이다. 주, 부특기 외에는 실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른 전공자들과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다양성을 몸에 익힘으로써 대체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인의 전공을 살려 시너지를 얻는 방향을 강하게 권장하고 싶다. 예를 들어, 건축학을 전공한 친구가 건축학이 지니고 있는 고귀한 개념은 모두 버리고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창의적 발상능력이나 취미 삼아 하고 있는 SW 프로그래밍으로 UX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식의 사례는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어시스턴트급이다. 이 위치는 전체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실무 능력의 급을 높여줄 것을 주문하고 싶다. 당사자들에게는 다소 애매할 수 있다. 주니어급처럼 뭔가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따로 주어지지 않는 반면, 일은 점점 많아진다. 의사결정 권한을 넘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난다. 주니어급에서 몸소 경험했던 불합리와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요구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필요 시에는 시니어급 역할도 하도록 요구 받곤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결국 실무에 대한 좀더 성숙한 처리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관리적인 측면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지만,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알차게 활용하지 못하면 실무를 모르는 관리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또한, UX 디자인은 대부분 여러 사람간의 협력에 의해서 결과물이 나오곤 한다. 이러한 협력관계에서 연차는 높으나 경력과 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과 한 팀이 된다는 것은 다른 팀원들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 실무 처리능력의 일환으로써, 본인이 창출한 디자인 결과물을 최종 솔루션으로까지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프로세스에 익숙해지고 그 안에 속한 다양한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시니어급은 전문성 없는 관리자가 아닌, 관리 능력을 가진 전문가가 되자. 흔히들 이 위치가 되면, 실무를 떠난 관리자로서의 길을 택하거나 혹은 그렇게 강요 받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즉, 실무를 모르면서 연차가 찬 관리자의 역할 정도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실무에 물이 오르고 있는 전문가 입장에서의 관리자 역할에 대한 병행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UX분야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실무 경력보다는 연차가 먼저 찬 관리자 비중이 높았다. 다른 분야 관리자가 어떠한 사유로 UX 분야의 관리자로 변신하거나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젠 우린 나라에서도 UX 분야가 활성화된 지 10여년이 되었다. 물론, 탄탄한 실무 경력과 관리 능력 모두를 겸비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내실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당신이 채용 권한을 지녔다면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리드(Lead)급인데, 이 위치에 있는 분은 UX 분야의 롤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니어급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리드의 위치가 되면 실무 능력보다는 정치적인 면이나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등이 더욱 중요한 요구사항으로 강조되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다 일까? 한 조직에서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높아질 때, 그에 맞는 정치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유독 UX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모든 직종의 공통 요구사항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무엇이 요구되는가? 역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전문성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의 전문성은 시니어급에서 요구되는 실무에 대한 전문성과는 깊이가 다르다. 이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상황 별로 차이가 있겠으나, UX 분야에서 전문가란 타이틀을 자신 있게 내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흔히들 UX가 사람과 관련된 분야라서 10년 정도는 한 우물을 파야 조금 길이 보이는 정도라고 얘기하곤 한다. 권한이 많아졌다고 안주하지 말고 본인이 몸소 체험한 다양한 실패사례와 성공 노하우를 기반으로 UX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계속 연구하고 담당 부서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린 후배들이 먼 외국의 흰 수염 난 교수가 아닌 매일 마주보는 부서장을 롤 모델로 삼을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Design without designers'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보다는 누군가의 창작물에 대한 논리적인 검증자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현실을 다룬 글이었다. 다행히도 그 글의 결론은 창의적인 활동과 최적화는 목적 자체가 다르므로 그에 부합하는 사람과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적극적인 의미의 디자이너의 역할은 최적화보다는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창의에 해당한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을 거쳐야 최적화할 대상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UX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으나, 실제로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결과물들은 소수인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이미 경쟁은 치열해졌고 기대치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UX 디자인은 어떻게 하느냐에 앞서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위해 고민을 하고 그 생각을 창의적인 디자인 결과물로 승화시키는 것, 이 기본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UX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구성원, 즉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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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어디에서든 '가장 사용자 중심적인 존재'이고 싶은 경험 디자이너. Digital TV와 Display Product 분야에서 다양한 상품화 경력을 쌓았으며, 이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글로벌 사용자 연구를 통한 새로운 UX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인간공학(Human Factors)을 전공했으며, 업계 실무자 관점에서 쓴 10여 편의 국내외 논문 저자와 60여건의 특허 발명자이기도 하다. 현재 삼성전자 UX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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