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괴물 컴퓨터 에니악(ENIAC) 등장

1946년 2월14일:20세기 컴퓨터역사 이정표를 세우다

일반입력 :2010/02/11 11:13    수정: 2011/05/25 00:44

이재구 기자

■10시간 걸리던 계산을 30초만에 ‘뚝딱’

1946년 2월 14일 저녁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내 무어스쿨에서 3블록 떨어진 특별실험실에는 국방부 관계자, 보도진,학교관계자 등 모두 200명이 몰려 들었다. 이 학교 휴스턴홀에서 바닷가재 죽과 안심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마친 미국 최고의 수학자,과학자 50명이 합류했다.

이 대학 존 모클리교수와 대학원생 프레스퍼 에커트가 3년 동안 연구해 온 세계 최초의 일반목적용 전자식 계산기 '에니악'(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ENIAC·전자 숫자 적분 및 계산기)을 완성해 공식 시연회를 여는 자리였다.

운영 요원 한 사람이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무게가 27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니악 내부에 있던 1만7468개의 진공관이 일제히 깜빡이며 연산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진공관의 깜빡이는 불빛만이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기계의 연산작업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아! 참석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에니악은 그때까지 노련한 수학자들이 수작업으로,또는 기계식 계산기로 7~20시간이나 걸려 해결했던 포 탄도 계산 문제를 단 30초 만에 풀어 내놓았다.

당시로선 발사된 포탄이 목표점에 도달도 하기도 전인 짧은 시간 내에 이처럼 정확한 계산결과를 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 군부대에서 대포나 미사일을 발사할 때 필요한 사거리를 알려 줄 탄도계산과정은 대기,온도, 풍속 등에 따라 약 200단계의 계산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날 기계는 종래에 비해 1440배나 빠른 연산속도를 과시했다. 그것은 당시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컴퓨터와 비교해도 100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연산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즉, 1초에 5000번의 덧셈, 357번의 곱셈,또는 38회의 나눗셈을 할 수 있었다.

속도를 높이는 비결은 기존 컴퓨터에 사용된 스위치와 계전기 대신 진공관을 사용한 것이었다.

■전쟁을 위해 개발되기 시작한 다목적 컴퓨터

당시만 해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연산을 수행하면서 ‘괴물’로 불린 에니악은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육군 산하 탄도연구소(The Ballistics Research Laboratory·BRL)의 폰 노이만박사는 에커트와 모클리의 연구소식을 전해 듣고 이들을 만난다. 존 모클리교수는 예전에도 많은 계산기계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그는 1942년 아이오와 대학을 방문, 존 빈센트 아타나소프와 클리포드 베리가 만든 계전기 방식 컴퓨터인 아타나소프베리컴퓨터(Atanasoff Berry Computer·ABC)를 눈여겨 보고 온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 진공관으로 속도를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결국 대학원생 에커트가 기존 기계식 컴퓨터, 또는 전기기계식 컴퓨터에서 사용된 진공관의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각 진공관 소비전력을 기존의 75%나 줄이는데 성공한다.

1943년 5월31일. 미 육군은 드디어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 설계에 1년, 이의 제작에 다시 18개월의 시간과 50만달러의 세금이 들었다.

1945년 5월 독일,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제 2차세계 대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종전 후에 납품된 에니악은 이후 수소폭탄설계용 계산, 날씨 예측, 우주선(Space Ray) 연구, 열폭발,임의숫자연구, 풍동설계 등 이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컴퓨팅에 사용된다.

컴퓨터는 단순한 수식 계산기계라는 인식만이 널리 퍼져있던 때였다.

이로 인해 에니악은 20세기 컴퓨터개발사에서 이정표를 제시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각인된 이 괴물컴퓨터 에니악과 아이오와대에서 개발한 아타나소프베리컴퓨터(ABC) 간에는 최초의 컴퓨터가 어떤 것이냐는 논쟁이 일게 된다.

컴퓨터 역사를 볼 때 기계식을 탈피한 컴퓨터는 ABC가 최초였기에 당시 에니악 공개 시연현장을 보도한 타임(TIME)지 기자도 단순하게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대신 '최초의 다목적용 전자식 컴퓨터'란 긴 수식어를 통해 ABC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에니악이 켜지면 필라델피아시가 정전된다?

에니악은 7만개의 저항기, 1만개의 캐패시터, 1500개의 릴레이(계전기),6000개의 기계식 스위치와 1만7468개의 진공관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차지하는 면적만도 1800평방피트(2.6 m × 0.9 m × 26 m)에 무게는 27톤이 나갔다.

납땜한 곳만도 모두 500만군데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기계를 가동하는 데는 160KW의 전력이 들었다. 오늘날 노트북 컴퓨터 칩이 5W대의 전력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전력사용량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총 길이가 26미터나 되는 이 공룡 컴퓨터를 수용하기 위해선 42평 정도의 큰 공간이 필요했다. 2만개에 가까운 진공관은 너무 많은 열을 발생시켰기에 방을 에어컨으로 냉각시켜야 했다.

에니악은 다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빠른 기계가 아니었다. 프로그램교체는 수주일이 걸렸고 기계는 항상 장기간의 유지보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비용도 비쌌다. 당시 미 육군이 에니악 인수의 댓가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지불한 돈은 48만 6840달러. 60년의 시차를 무시하더라도 지금 시세로 6억30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가동에 드는 전략량이 하도 크다 보니 필라델피아 뷸레틴 지는 1946년 “에니악이 켜지면 필라델피아시가 정전이 된다”고 잘못된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 에니악과 관련된 일화를 얘기할 때 가장 널리 인용되는 초기 컴퓨터개발사의 신화가 되었다.

■20세기 컴퓨터역사에 신화를 남기고 사라지다

에니악은 아이오와대의 아타나소프 베리 컴퓨터(ABC, 1942), 컬로서스 마크1(1944), 하버드마크1(IBM ASCC, 1944), 컬로서스 마크2(1944) 등에 뒤이어 나온 컴퓨터였다.

에니악은 최초는 아니었지만 이전 아날로그컴퓨터의 기계두뇌와 기계 스위치를 진공관으로 대체했고, 입출력·메모리 기능을 하는 펀치카드와 태뷸레이팅 머신기술을 최적화시킨 의미있는 기계였다.

물론 운영요원들이 항상 컴퓨터 옆에 대기하면서 타버린 진공관들을 교체하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1955년 10월2일 오후 11시45분. 미국 동북부에 가을 비가 쏟아지고 밤하늘이 번쩍 거리는 가운데 공중에서 빚어진 전기덩어리 하나가 에니악이 설치된 건물로 떨어졌다.

벼락을 맞은 에니악의 전원이 끊어졌고 9년간 현대 컴퓨터시대의 개막과 가능성을 알려주며 맹활약하던 에니악의 활동은 그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에니악의 아버지 에커트와 모클리는 에커트모클리컴퓨터사(EMCC)를 세우고 에니악에 기반한 후속작을 만든다.

이들의 '유니박(UNIVAC)'은 1952년 11월 4일밤 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후보와 애들레이 스티븐슨 일리노이 전 주지사간의 대선결과를 실제와 똑같이 예상해 유명세를 타며 에니악의 전통을 이어간다.

유니박은 아이젠하워 후보가 438명의 선거인단을, 스티븐슨 후보가 9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리라는 것이었다. 확률 100대 1로 승리를 점친 것이었다.

하지만 CBS책임자 미켈슨은 스티븐슨이 박빙으로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결과를 약간 뒤집어 8대7로 아이젠하워가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최종 개표결과 유니박의 예상대로 1%이내의 오차로 아이젠하워가 승리하자 찰스 콜링우드 기자의 당황한 생방송 리포트가 TV에 등장했다.

유니박이 수시간 전 정확히(선거결과를) 예상했지만 CBS는 이를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에니악 설계 기술은 탁월한 기능과 목적, 이후 등장하는 컴퓨터에 미친 영향력 등으로 사실상 현대컴퓨터의 모태와 같은 기계로서 인정받기에 이른다.

1955년 퇴역한 에니악은 13년이 지난 1967년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관련기사

EMCC를 인수한 스페리랜드가 하니웰의 컴퓨터 설계가 에니악을 본뜬 것이라며 특허소송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에니악소송은 사상 최초, 최장의 컴퓨터 특허소송 기록을 이끌며 1973년에야 하니웰의 승리로 결론났다.

컴퓨터는 이후 60여년 간 '광속의 발전'이라 불릴 정도로 급격한 발달을 했다. 이제는 에니악보다 2만배 이상 가볍고 처리 속도가 빠른 무게 700g대의 노트북 컴퓨터와 600g대의 태블릿을 499달러에 살 수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