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2.0, 길드에서 플랫폼으로

전문가 칼럼입력 :2007/06/28 22:53

김국현(IT평론가)

나는 저서를 지닌 작가이자, 창작 캐릭터를 가진 만화가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저작물로서의 작품과, 창조자의 권리에 민감하다는 전제를 두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권리와 열정을 지켜줄 제도로서 저작권법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한참 전부터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세계를 구세계의 질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작권도 그렇다. 특히 앞으로가 걱정되는 부분은 내 작품임을 나타내 줄 저작인격권보다는, 지적 창작을 노동으로 보고 그 대가를 보호하기 위한 재산권을 설정하려는 저작재산권 쪽이다. 복제와 전송을 금지하여 희소하게 만들면 노동의 대가가 보호되리라 믿으며 전통적 재산권의 상식에 숨으려 하지만, 실체가 없는 표현과 정보에 대해 단지 복제를 금지하면 이 무형의 재산이 보호될지 잘 알 수 없다. 저작권은 언제부터인가 이 모호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복제와 전송을 금지하는 법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그 통제와 재산의 상관관계는 의외로 모호하다. 이 시대에 있어 통제되어 잊혀지는 것이 재산상 득이 될까, 아니면 자유롭게 공유되어 널리 향유되는 것이 재산상 득이 될까? 웹 2.0의 논쟁은 후자의 손을 들고 있다. 사실 저작권은 그 존재 의미를 ‘창조를 위한 동기 부여’라 삼고 있다. 우리의 저작권법도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백히 규정한다. 그러나 저작권의 역사가 왕이 허락한 판권에서 시작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날 저작권은 전근대적 통제권으로 기능해 버린다. 그러나 이 권리가 목적대로 창조자의 인센티브를 고양하기는 하는 걸까?복제를 감시함으로써 권리를 보호한다는 발상은 활판 인쇄 시절에는 의미가 있었다. 물리적 통제와 감시로 독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의 복제를 그 존립의 구조로 삼는 이상계에서는 이러한 복제의 통제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복제와 전송은 이상계의 회로 그 자체이다. 굳이 P2P가 아니라도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증거는 수도 없다. 창조자가 원하는 것은 복제 금지라는 수단이 아니라 창조의 기쁨이 수반하는 어텐션과 그 어텐션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의미의 권력, 그리고 그 권력이 생성해 낼 수 있는 미래의 부라는 목적이다. 오픈 소스를 생각해 보자. 그 들은 복제를 허락하지만 여전히 창조의 동기로 넘쳐나고 있다. 그 편이 부와 권력의 씨앗인 어텐션을 획득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상으로서의 웹 2.0은 이를 설명한다.표현자로서의 나는 내 작품이 더 널리 퍼지기를 원한다. 나는 모처럼 만든 내 작품이 더 널리 퍼져 모두가 함께 봤으면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평가와 대가를 받기를 원할 뿐이다. 저작물을 막고 지우는 것이 아니라, 보도록 내버려 두고 아니 더 많이 보고 느끼도록 배려하고, 그 대가가 창조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대가를 창조자에게 직접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용자는 디지털화된 컨텐츠를 아날로그 컨텐츠의 10% 가격에 살 수 있을지 모르고, 그 10% 거의 모두가 인세로 창조자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대가만 기대할 수 있다면 창조자는 창조물의 복제를 환영할 것이다. 창조자들은 그간 참으로 비효율적인 창조의 인센티브 회수 구조에서 살아 왔다. 창조물을 유통함에 있어서의 현실적 제약을 저작권이 은폐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게다가 복제를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이는 창조자가 아니다. 이 일을 대행하는 중간사업자와 유통업자, 즉 ‘미들멘’ 들이다. 저작권이 만들어질 당시로 돌아 가자면 '길드'다. 복제를 감시하는 대가로 권리를 관할하던 이들의 독점이 허락되어 온 것이다. 입법에 의해 보장 받는 독점권이 바로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이다. 유통업자의 독점권, 그리고 글로벌한 유통업자의 독점권을 인정해주는 것, 길드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중개하고 복제를 통제함으로써 그 대가를 취하는 메커니즘을 저작권은 만들어 온 것이다. 사태가 이러하니 통제적 저작권에 의해 사회 전체의 창조적 후생이 증가한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더욱이 재산권이라고는 하나 가져가도 재산이 줄지는 않고, 오히려 그 가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이 메커니즘은 간과하고 있다. 바뀌는 세상의 중심에서는 모든 현상을 의심해야 한다. 점점 강화되는 저작권은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로비의 결과일 뿐이다. 이 기득권 보호 운동은 국제적인 식자층에 의해 치밀한 지층을 이루며 굳어 가고 있다. 보호 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서 득을 보는 이들은, 불로소득의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유족과 중간자들뿐이다. 정보와 표현은 믹스되고 축적된다. 이 축적 과정이 문화이자 문명의 숙명이다. 그리고 그 것을 촉진해야 하는 것이 문명으로서의 제도다. 작금의 UCC 현상은 현존 제도를 앞선 숙명적 결과다. 웹2.0이 배출한 수백만 창조자들의 리믹스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은 저작권을 옹호하는 한 줌의 제도권뿐이다. 복제를 금지할 권리는 사라져도 된다. 아니 복제란 우리 세계의 일상이 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처럼 추적 가능한 얼개만 붙어 있다면 복제란 곧 유통이기 때문이다. 유통 재고를 파악할 수 있는 보편적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P2P의 폭발적 복제란 혁신적인 창조 유통 채널이기 때문이다.졸저 <웹2.0 경제학>에서 나는 직접 보상 행위, 즉 직접적 가치 교환을 해 주는 초월적 정리자의 등장을 그려 본 바 있다. 현존의 저작권과 이에 의존한 유통 구조는 이러한 초월적 정리자의 등장과 함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아니면 거꾸로 저작권 확장 로비가 멈출 때 이러한 초월적 정리자는 등장할 것이다. 초월적 정리자를 꿈꾸며 나름의 불로소득 메커니즘을 완성한 구글도 겨우 광고를 통한 간접적 가치 교환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꿈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작권 문제의 아수라장이라 여겨진 유튜브를 태연하게 삼켜버린 것이다. 과연 누가 초월적 정리자의 꿈을 완성할 것인가? 지금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이상계의 초월적 정리자가 내 창조의 가치를 공평무사하게 계산하고, 어떠한 유통업자들보다 높게 나를 평가해 준다면, 그리고 그 것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복제를 금지할 필요도 명분도 사라진다. 내 창조물이 내 것임을 시스템이 기억하고, 부든 권력이든 어텐션이든 내게 적절한 대가가 돌아 오도록 배려해 준다면 말이다. 새롭게 태어날 권리 프로세싱 플랫폼이 어떠한 모습인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방향성만은 비교적 명백한데, 1.복제는 자유롭게 무한히 일어날 것. 이 이상계의 속성을 거스르는 일은 쉽지 않다. DRM이 미봉책인 이유다. 2.대가 지불에 대해서는 물권적 원칙(property rule)이 아닌 보상 책무(liability rule)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권리 보호를 꾀할 것이다. 즉, “내 것이니 쓰지마”가 아니라 “일단 쓰면 알아서 청구될 것”의 태도 변화다. 실제로 저작 권리자들이 혐오하는 ‘유료 웹하드 서비스’의 사업적 성공은 이 방향성의 시발이다. 이들의 문제는 그렇게 사용자에게 청구한 가치가 창조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직무유기에 있다. 월 1만원을 낸 사용자가 100곡의 음악과 5편의 영화, 10편의 UCC를 받았다고 하자. 1만원과 그가 본 광고 매출 중 비용을 제한 수익 분 일부가 권리자 들에게 공평히 배분될 수 있다면 이는 권리 프로세싱 플랫폼으로 기능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사용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검색해 낸다. 검색된다는 사실은 권리자를 특정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같은 뜻이다.얼마가 돌아가야 적정한 것인지 모르고, 플랫폼마다 줄 수 있는 돈이 다를 수 있다는 형평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창조물이 ‘만들어낸 가치’만큼이란 말이 적합할 것이다. 근래의 매시업 Open API의 이용규약을 떠올려 보자. 처음에는 공짜지만 사용자 수가 얼마 이상으로 넘어가면 수익배분을 서비스 제공자와 하게끔 하고 있다. 윈윈(win-win)의 회로다. 창조물도 Open API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창조물 덕에 권리 프로세싱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가치가 클수록 그에 합당한 대가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저작권의 모습은 어떻게 변모할까? 과연 누가 권리 프로세싱 플랫폼을 완성할 것일까? 그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애드센스가 묘하게 결합된 모습을 지닐까?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상상치 못했던 제도가 설계될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등장한 초월적 정리자는 과거의 어떤 정리자보다도 막대한 어텐션과 부와 권력을 관할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존재 자체가 현존 저작권이라는 글로벌한 가치 교환 길드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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