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손정의와 韓 이해진이 손잡은 이유

[이균성의 溫氣] 美中 패권 맞설 韓日 대항마 만들기

인터넷입력 :2019/11/14 10:55    수정: 2019/11/18 07:35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의 일본 야후와 한국 네이버의 자회사인 일본 라인이 경영을 통합키로 했다는 소식은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다. 특히 반도체 부품 소재 분야 등에서 한국과 일본이 여전히 ‘경제 전쟁’ 중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가 얼마나 오묘한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결코 주종(主從) 관계일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이번 소식은 두 가지 관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문제를 타결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둘째 세계 IT 시장의 주도권 싸움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두 번째 관점에서 볼 때 이번 결합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두 회사가 알려진 대로 합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이는 손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GIO이자 라인 회장 둘 사이의 결단이라 봐야 한다. 둘은 각각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IT 분야 최고 기업가다. 특히 손 회장의 경우 글로벌 투자자로 유명하다. 이 회장 또한 수년전부터 국내보다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로 둘은 큰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둘의 결합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 까닭은 최근 IT 시장의 글로벌 판도 때문이다. 주지하듯 IT 시장은 전통적으로 구글 아마존 애플 MS 같은 미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은 첨단 IT 시장의 패권 싸움이 전방위로 확대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한국과 일본은 그 와중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해진 회장은 틈날 때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의 가공할 만한 공세에 대한 두려움을 표하곤 했다. 국내에서는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가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싸워야할 적은 구글 같은 미국 기업과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인데, 아무리 계산해 봐도 승산이 적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내 시장은 제한돼 있고 그러므로 길은 해외뿐인데 그들과 싸워 이기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러나 아무리 두려워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달려가고 프랑스로 달려가고 미국으로 달려갔다. 모르긴 하되 이 회장 필생의 꿈은 글로벌로 성공하고 지속 가능한 한국계 서비스 회사를 처음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 일을 해낸다면 한국 경제사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휴대폰으로 세계 1위를 한 것에 맞먹는 페이지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그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손 회장은 재일교포 글로벌 투자자이면서도 한국에는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다. 한국 시장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적으로 “손 회장의 경우 미국 중국 일본 외에는 나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으로선 아쉬운 일이지만 그가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만큼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투자의 기본은 ‘확장성’에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이 쿠팡에 조(兆) 단위 투자를 했을 때 모두가 놀라고 의아해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소 놀라웠던 쿠팡 투자는 아직도 시험대 위에 있는 상황이지만, 투자의 귀재였던 손 회장도 최근 처지가 녹록치 않다. 우버·위워크를 비롯해 투자했던 기업들의 경영상황이 악화하면서 최소 수조원대 투자손실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다스 손’이 ‘마이너스 손’이 됐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둘의 결합은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시아권에서는 탄탄하게 뿌리내린 IT 서비스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이해진 회장의 꿈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실패를 보전하기 위해 과거보다 조금은 더 안전한 투자를 희망하는 손 회장의 새로운 생각이 궁합에 맞는 것이다. 그 합(合)의 결론은 ‘美中의 유력 서비스에 맞서는 아시아권 IT 서비스 회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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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 두 명의 결단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결단은 미래지향적인 것이고, 글로벌 구도 속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한일 두 나라 기업의 '운명적 결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운명에 처한 기업이 이 두 기업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글로벌 경제 지형에서 한일 두 나라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미 엮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베 총리가 현명한 지도자라면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과의 대화에 조건 없이 나서야 한다. 그게 일본 경제와 기업을 살리는 길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과의 물밑 대화에서 이번 사례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데도 과거에 얽매여 외면한다면 그건 지도자가 취할 자세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