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딸 논란' 보도와 '뉴스의 사회학'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틀짓기와 공정성에 대해

데스크 칼럼입력 :2019/08/22 13:06    수정: 2019/08/23 11:0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890년대 뉴욕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한 기자가 우연히 유명인이 연루된 흥미로운 범죄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곧바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러자 경쟁사에 비상이 걸렸다. 사회면 데스크는 담당 기자를 닦달했다. 결국 그 기자는 범죄 뉴스를 집중 취재한 끝에 낙종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후 뉴욕의 각 신문들은 범죄 보도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뉴욕은 졸지에 범죄 도시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자물쇠와 파수견을 찾기 시작했다. 늘어난 범죄 보도 때문에 뉴욕 경찰국장까지 해고됐다.

미국의 저명 언론인인 링컨 스테픈스가 자서전을 통해 고백한 내용이다. 범죄 보도 전쟁 여파로 뉴욕 경찰국장에서 해임된 인물은 훗날 미국 26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사진=뉴스1)

마이클 셔드슨의 ‘뉴스의 사회학’ 첫 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셔드슨은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저널리스트는 현실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다. 셔드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들이 보도할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특정 부분을 선택-강조하고, 틀짓고, 또한 누락시키면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조국 이슈'에 묻혀버린 다른 이슈들도 관심 가져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둘러싼 보도경쟁을 보면서 케케묵은 언론학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후보에 대한 엄밀한 검증 과정’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좀 지나치단 생각이 든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조국 후보 관련 기사가 1만 건을 넘었단 얘기도 들린다. 동생과 제수를 둘러싼 의혹에서 시작된 보도가 최근엔 딸 대학 입시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관련 얘기로 옮겨갔다.

물론 보도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내겐 그럴 능력도 없다. 또 그 문제는 후보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선 과열된 보도 경쟁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 몇 가지만 지적하려고 한다. 최소한 공정한 언론이라면 조국 검증과 함께 이런 문제도 함께 제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링컨 스테펀스. (사진=위키피디아)

첫째. 조국을 제외한 다른 후보 검증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9일 총 8명의 장관급 개각 인사를 단행했다. 조국 후보 외에도 검증해야 할 후보가 7명이나 더 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얘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둘째. 청문회 일정을 빨리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인사청문 요청안은 지난 14일 국회에 접수됐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요청안이 송부된 지 15일 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조국 공방' 때문에 제대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셋째. 청문회를 왜 하는지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들을 엄밀하게 검증하는 건 꼭 필요하다. 권력이 큰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나 개인적인 비리가 막중한 사람은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도 엄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폭로전으로 치닫거나, 지나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신중해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저널리스트들은 늘 사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인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충실하게 사실 보도를 한다. 문제는 전체 맥락에서 일부 사실만 떼낸 뒤 집중 보도할 때 생긴다.

다시 ‘뉴스의 사회학’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책에서 소개한 링컨 스테펀스 사례는 ‘오보’나 편파적 보도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성실하게 특정 사건을 파헤쳐서 생긴 문제였다.

■ '뉴스의 사회학'이 제기한 중요한 지적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조국 후보를 둘러싼 지금의 보도 경쟁이 링컨 스테픈스 사례와 비슷한 건 아닐까? 과열된 경쟁 때문에 더 중요한 맥락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특종 경쟁 때문에 과도하게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가? 혹시 그 때문에 다른 많은 후보들을 검증할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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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을 던지면서 ‘뉴스의 사회학’에 나오는 한 구절을 곱씹어본다.

“저널리스트들은 정신 나간 조종사, 허리케인, 야구나 선거에서의 예상 밖 승리, 모든 역경을 극복한 승리, 고통에 직면한 부유층이나 유명인사,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부자들의 비극이나 스캔들, 기타 계획되지 않은 기대 밖의 스캔들, 사건, 불행, 실수, 난처한 상황, 공포, 경이로움 등에서 취재의 즐거움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뉴스의 사회학> 7쪽.)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