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를 전적으로 응원하기 힘든 이유

[백기자의 e知톡] 혁신 앞세운 과속…구 시장 대하는 태도 개선해야

인터넷입력 :2019/06/16 09:35    수정: 2019/06/16 10:09

직장인 A씨는 중년의 나이에 퇴직해, 그 동안 모아둔 퇴직금과 은행 빚을 얻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 한 상가에 과일 가게를 열었습니다. 인생 2막을 위해 임대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에 1억원이 넘는 비용이 쓰였습니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 또한 100만원 넘게 들었습니다.

평소 유동인구와 상점 위치를 고려했을 때 네 식구 정도는 먹고 살겠다 싶었습니다. 가게 오픈한 직후에는 특히 더 많은 손님이 찾았습니다. 과일이 금방 동 나면서 더욱 신선한 과일을 가져와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선순환이 시작됐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과일장수로 변신한 A씨의 평화로운 인생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과일을 잔뜩 실은 트럭이 자리를 잡더니 손님을 하나둘 뺏어갔기 때문입니다. 그의 강력한 무기는 기동성을 기반으로 한 저렴한 가격과 품질이었습니다. 좋은 위치에서, 스피커를 통해 “과일이 왔어요~ 꿀사과가 단돈 5천원”과 홍보활동까지 하니 A씨의 속은 타들어갔습니다.

그렇게 A씨 가게에 손님이 뜸해지면서 팔리지 않고 남은 과일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신선도와 맛도 떨어졌습니다. 이를 알아챈 손님들은 A씨 가게로 가던 발길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저렴하고 신선한 과일 트럭으로 향했습니다. 밝았던 A씨 표정은 손님들 앞에서 만큼은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매일 썩어들어 가는 과일과 함께 인상도 구겨져 갔습니다.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A씨 이야기는 아주 꼭 들어맞는 비유는 분명 아니지만, 현재 택시 업계와 ‘타다’와 같이 모빌리티 업체들이 겪는 갈등과 언뜻 비슷해 보입니다.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택시 면허를 갖게 된 택시 기사(A씨)들이 그들이 봤을 때 갑작스레 등장한 유사 택시 서비스(과일 트럭)를 반대하는 것이 한편 당연해 보입니다. 그것도 완전한 합법적인 서비스가 아닌, 법의 예외조항을 이용해 법망을 살짝 비켜간 서비스라고 하니 더욱 얄미워 보일 법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머지않아 자율주행차 시대가 온다”, “우리가 안하면 어차피 외국 기업들이 와서 장악할 시장이다”, “우리와 상생해야 택시도 살아남는다” 등의 주장은 현재 나이든 택시 기사들 입장에선 아주 먼, 남의 얘기일 수 있습니다. 퇴직 후에나 일어난 법한 일입니다. 상생하자는 말도 “우리가 짜놓은 계획과 플랫폼을 받아들여”라는 강요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삶을 사는 개인 택시 기사들은 당장 오늘 내일 내가 쥘 수 있는 돈에서 단 돈 1천원이라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손해볼 수 없다는 마음에 생존권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사진=지디넷코리아)

이에 타다(VCNC)의 실주인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는 “타다는 전국 택시 매출의 1%도 안 되고, 서울 택시 매출의 2%도 안 된다”고 스스로의 영향력을 낮췄습니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은 앞서 타다 측이 발표한 “출시 6개월 만에 가입 회원 50만 명, 운행 차량 1천대”라는 성과에 더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가 아닌, 타다가 택시 시장을 잡아먹게 될 미래가 더 두렵다는 뜻입니다. 출시 6개월 만에 이 정도인데, 앞으로 6개월, 1년 뒤에는 얼마나 더 커질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까요.

타다에 대한 이용자들의 지지는 그 동안 택시를 이용하면서 승객들이 겪었던 불쾌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증폭됐습니다. 승차거부, 불필요한 대화, 담배냄새, 돌아가기, 승객 골라태우기 등 누구나 몇 번씩 경험했던 나쁜 기억들이 좀 더 비싸더라도 더 쾌적한 타다 서비스가 낫다는 인식을 갖게 했습니다. 이런 이용자의 불편과 불만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타다는 작은 혁신을 이룬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지디넷코리아와 오픈서베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실제로 타다와 같은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혁신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택시 이용불만 뭐?...“불필요한 대화” 1위]

그렇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타다 측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 위원장은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를 이끌고 함께 걸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것임을 항상 유념하고 노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최종구 "혁신의 승자들, 패자 이끌고 함께 걷기를"]

물론 타다와 같은 서비스를 하는 모빌리티 업체들을 ‘혁신의 승자’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승자가 아닌 이제 막 승리를 맛보기 시작한 플레이어 정도로 보는 게 맞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로 뒤처지는 패자가 생긴다면 이는 정부가 챙겨야지, 왜 기업이 이것까지 챙겨야 하는 비판도 가능해 보입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그런데 타다가 택시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택시 기사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답답한 존재로 내려 보고, 겉으로는 상생을 강조하지만 이면에는 혁신이란 명분을 앞세워 “우리 방식을 따라야 산다”를 고집하는 듯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타다 측의 전략은 2013년 우버가 한국에 진출하려다 택시 업계는 물론, 대중들의 지지까지 점차 잃었던 것과 어딘가 닮아 가는 듯 보입니다. 당시 우버는 혁신을 앞세워 한국의 정부와 법을 무리하게 넘어서려다 퇴출당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우버는 자신들이 무리해서 한국 시장에 들어오려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혁신적인 서비스로 이용자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동에 불편을 겪었던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과 서비스를 빠르게 도입하고 응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법이라고 해서 기존의 질서를 구식으로 몰아가는 것, 이미 오래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속도를 높이다 보면 부작용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얼마전 타다 측은 준고급 택시 서비스와 관련해 서울시 인가를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공식절차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배포하는 바람에 사과하는 해프닝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개인택시조합 측의 불편한 심기를 더욱 자극하기도 했습니다.[서울택시조합 "타다 서울시 인가 거짓"…무슨 일이?]

푸드트럭 자료 이미지(출처=이미지투데이)

이용자 입장에서는 내 집에서 가깝고 더 맛 좋은 과일을 살 수 있는, 기동성 좋고 홍보 수단까지 잘 갖춘 과일 트럭이 혁신적인 서비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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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장사가 기운 A씨에게 똑같이 품질로 승부하고, 끝까지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고, 정 안 되면 같이 거리로 나와 트럭에서 과일을 팔면 그만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A씨가 남이 아닌 내 부모라면, 혹은 그게 나라면 이런 비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새로운 서비스로 인해 생기는 그늘을 더 진정성 있게 살펴보고, 좀 더 세련된 메시지로 상대편을 설득하고 하나씩 끌어 안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업계가 타다를 크게 지지하면서도 전적으로 응원하기 힘든 이유, 기존 시장을 대하는 매너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