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는 왜 '인터넷 강력 규제'를 외쳤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이터 유출·분할론 등 의식한듯

데스크 칼럼입력 :2019/04/02 16:51    수정: 2019/04/04 15:5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터넷을 좀 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아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주장이다. 그것도 전통 매체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인터넷 규제를 강력 촉구했다. (☞ 저커버그 칼럼 바로 가기)

저커버그는 이 칼럼에서 “인터넷은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고 운을 뗀다. 그리곤 4개 영역부터 규제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유해 콘텐츠, 선거 관리, 프라이버시, 데이터 이동성 등이 그 대상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페이스북은 그 동안 유해 콘텐츠를 비롯한 해악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저커버그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기업 스스로 이런 결정을 하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나 규제 당국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커버그의 기본 논리다.

구체적인 규제 방안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저커버그는 유럽연합(EU)이 지난 해 도입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 페이스북 대외 총괄 "분할보다는 규칙 정비가 소비자에 더 이익"

저커버그는 그 동안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여왔다. ‘프라이버시 시대는 갔다’고 외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소셜 플랫폼에 대한 규제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 왔다.

이랬던 저커버그가 왜 ‘인터넷 규제’란 깜짝 제안을 했을까?

물론 최근 들어 연이어 불미스런 사태에 휘말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해 영국 정치 컨설팅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를 통해 개인정보가 대거 유출된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

최근엔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총격 사태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대로 중계되면서 또 다시 곤욕을 치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미국 정가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페이스북 분할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페이스북 분할 불가론’을 유포하는 역할은 대외 총괄을 맡고 있는 케빈 마틴 부사장이 맡았다. 케빈 마틴은 부시 행정부 당시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워싱턴포스트)

최근 미국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이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을 분할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특히 워런은 왓츠앱, 인스타그램 같은 서비스를 페이스북과 별도 회사로 분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케빈 마틴 부사장은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을 분할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나 유해 콘텐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부 기관이 인터넷 규제를 통해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란 게 케빈 마틴의 주장이다.

■ '만능 규칙' 제안엔 비판적 의견도 많아

물론 마크 저커버그의 선의까지 부정할 순 없어 보인다. 최근 소셜 플랫폼을 둘러싼 각종 사건 사고들은 개별 회사 차원에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 콘텐츠를 다루는 표준이 필요하다는 저커버그의 주장에 대해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술을 위한 센터의 크리스 칼라브리스 정책 담당 부사장은 씨넷과 인터뷰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만능 솔루션’ 제안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인터넷엔 수많은 플랫폼이 있고, 다양한 유형의 목소리와 포럼이 있다”면서 “정부 기관이 이런 포럼들이 콘텐츠를 규제할 방법을 선택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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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부에선 ‘페이스북 위기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저커버그가 인터넷 규제를 제안한 것은 이런 상황을 돌파할 승부수인 셈이다.

과연 이런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까?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저커버그가 느닷없이 ‘인터넷 규제 필요성’을 들고 나온데 대해 미국 언론이나 정가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