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동영상'과 훔쳐보는 사람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포털 실검 1위 유감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13 12:55    수정: 2019/03/13 15: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핑 톰(Peeping Tom)’이란 영어 숙어가 있다. ‘훔쳐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영어에서 흔히 쓰이는 이 말엔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사연’이 있다.

때는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 코번트리에 레오프릭 백작이 살고 있었다. 레오프릭 백작은 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악덕 영주였다.

아내 고다이버는 이런 주민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달라”고 간청했다.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남편은 황당한 제안으로 맞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돌면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고다이버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곤 주민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절대 밖을 내다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가수 정준영(왼쪽)과 승리. (사진=뉴스1)

고다이버의 희생에 감동한 주민들은 모두 창문을 틀어막았다. 단 한 사람 양복 재단사 톰(Tom)만 빼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톰은 좁은 틈으로 고다이버의 알몸을 훔쳐봤다.

약속을 어기고 훔쳐본 대가는 컸다. 톰은 그날 이후 눈이 멀었다. 더 큰 수치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후세 사람들이 '훔쳐 본 톰'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을 묘사한 ‘Peeping Tom’은 ‘훔쳐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영어 숙어로 길이 길이 남았다.

서두가 길었다. 최근 며칠 빅뱅 멤버 승리와 가수 정준영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버닝썬이란 클럽을 둘러싼 온갖 성 추문에서 시작된 추문은 급기야 정준영이 성 관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단톡방에서 돌려봤다는 또 다른 추문으로 확산됐다.

그 얘기를 더 이상 덧붙이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런 저런 매체들이 워낙 많이 다뤘기 때문이다. 여기선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는 우리들의 자세 얘기다.

어제 하루 포털 인기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정준영 동영상’이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이름이 거론된 여자 아이돌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올라왔다.

‘정준영 동영상’이 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을까?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정준영이 단톡방에 올렸다는 동영상이 있는지" "상대가 어떤 연예인인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결과가 ‘정준영 동영상’ 실검 1위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화가 존 콜리어가 그린 '레이디 고다이버'

'정준영 동영상'이 검색어 1위에 오른 걸 보면서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모두 ‘피핑 톰’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포털에서 '정준영 동영상'을 검색하는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라. 창문 틈으로 고다이버의 알몸을 훔쳐보던 11세기 톰이 연상되지 않는가?

지금 거론되고 있는 많은 몰카 사건 피의자들은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하면 된다. 그건 경찰을 비롯한 수사 당국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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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있다. 천박한 호기심을 억누르는 일이다. 그게 치졸한 범죄 행위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수치심을 안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정준영 동영상' 실검 1위가 유독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