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넷플릭스·할리우드, 어떻게 손잡았나

'불법복제 퇴치' 공감대…중국시장 개척 욕구도

인터넷입력 :2019/01/23 14:11    수정: 2019/01/23 14:1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97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영화산업협회(MPAA)가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기반업체에 문을 열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업체는 스트리밍 대표주자 넷플릭스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2일(현지시간) 넷플릭스가 MPAA 회원사로 신규 가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이달초 페이스북, 구글 등이 회원사로 있는 인터넷협회를 탈퇴했다.

MPAA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디즈니, 소니,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21세기폭스, 유니버셜 등 6대 영화사만 회원으로 두고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단체다.

넷플릭스

■ "중국시장 노리는 넷플릭스, MPAA 로비력 높이 평가"

거대 영화사 이외엔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던 금단의 땅에 넷플릭스가 발을 들여놓은 것. 게다가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한 때 콘텐츠 공급 문제를 놓고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양측의 결합은 ‘적과의 동침’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넷플릭스의 MPAA 가입은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둘은 우선 ‘불법복제 퇴치’란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2017년 무렵부터 ‘불법복제 퇴치’ 문제에선 할리우드 영화사들과 행보를 같이 했다.

물론 넷플릭스가 그 무렵부터 자체 제작 콘텐츠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 불법 복제에 대한 문제 의식이 커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CEO

연예전문매체인 데드라인은 넷플릭스의 중국 시장 욕심도 이번 결정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MPAA는 그 동안 중국에서 할리우드 영화 쿼터를 확대하기 위해 많은 로비를 해 왔다. 그 노력 덕분에 한 해 34편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넷플릭스 역시 최근 중국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바이두의 동영상 스트리밍 자회사인 아이치이와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중국시장 진출은 아직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해선 수입 콘텐츠 비중을 30%로 제한하고 있다.

넷플릭스 입장에선 MPAA의 로비력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 폭스·디즈니 합병도 MPAA 결심 계기된 듯

MPAA 입장에서도 달라진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들어 젊은 층들은 TV 시리즈물을 한꺼번에 몰아보거나, 극장 개봉작을 집에서 보는 등의 시청 행태를 많이 보이고 있다.

폴리티코는 MPAA의 달라진 행보를 좀 더 자세히 전해줬다.

2017년 9월 취임한 찰스 리브킨 MPAA 회장은 넷플릭스 같은 회사를 끌어안는 것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리브킨은 프랑스, 모나코 대사를 역임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인물이다.

찰스 리브킨 MPAA 회장 (사진=MPAA)

리브킨은 이날 넷플릭스 가입 사실을 알리면서 “모든 회원사들은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을 좀 더 전진시키길 원한다”면서 “그건 스토리텔링 방식 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방식까지 확대하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예전문매체 데드라인은 또 21세기폭스와 디즈니 간의 합병도 MPAA가 넷플릭스를 영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MPAA 회원사는 한 곳이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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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경우 회비 수입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MPAA 회원사들은 매년 1천200만 달러 가량의 회비를 납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21세기폭스가 빠지면서 줄어드는 회비를 넷플릭스 영입으로 메우려는 복안이라는 것이 데드라인의 분석이다.

데드라인은 또 “아마존이 MPAA 신규 회원사로 가입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