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 암세포, 포식자 먹이 찾듯 이동한다

'레비워크' 관찰..."암 전이 막는 치료 개발에 기여할 것"

과학입력 :2018/11/08 12:06

전이 암세포가 자연계 포식자처럼 움직이는 방향과 거리를 바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소속 외국인 부부 연구자가 전이 암세포의 이동 전략인 '레비워크'를 통계적으로 규명해 공동 교신 저자로 함께 연구 성과를 8일 발표했다.

레비워크란 자연계 포식자가 먹이를 찾을 때 보이는 움직임을 뜻한다. 한 지역에서 불규칙하고 빈번하게 방향을 바꾸며 움직이다가 때때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무작위 움직임을 반복한다. 시간 당 움직이는 변화의 위치가 단순 확산에 비해선 길지만 방향이 있는 탄도 움직임보다는 짧다.

전이 암세포는 비전이 암세포에 비해 빠르게 확산하고, 방향성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는 전이 암세포가 비전이 암세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동 전략을 취한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었다.

전이 암세포의 움직임을 대량으로 기록하는 것도 어려웠으며 데이터를 모은다 하더라도 레비워크를 구분해 낼 분석법과 시뮬레이션 모델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 특훈교수와 크리스티아나 칸델-그쥐보프스카 연구위원은 오랜 시간 암세포의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암세포가 레비워크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통계적 분석으로 확인했다.

포식자가 먹이를 찾아 불규칙하고 빈번하게 이동하는 전략을 전이 암세포도 구사한다는 설명이다.

살아있는 쥐에서 비전이/전이 암세포 이동 세포 이미지. 실제 쥐에서 흑색종이 퍼지는 모습을 3시간 동안 찍은 다음, 150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구역을 나눠 이동 양상을 살폈다. 녹색은 종양세포의 핵, 붉은 색은 혈관, 파란 색은 콜라겐을 나타낸다. 사진의 위쪽이 비전이 세포, 아래쪽이 전이 세포의 이동 양상을 보여준다. 두 종류 세포 모두 세포 가닥을 지배적으로 형성하고 있으나, 아래 전이 세포가 존 3~4에서 더 이동 거리가 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 공동 연구진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에 걸린 살아있는 쥐에서도 전이 암세포의 레비워크 이동을 관찰했다.

IBS를 비롯해 미국, 폴란드 연구자로 이뤄진 국제 공동 연구진은 전이 암세포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실험법을 새로 고안했다. 보통 2차원 접시에서 이뤄지던 세포 실험을 1차원으로 단순화했다. 실제 몸속에서도 세포가 섬유질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 움직임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세포가 앞뒤로 움직일 트랙을 유리 평면 위에 구현했다. 트랙 외에는 금과 자기조립단층을 입혀 세포가 붙지 않고 트랙 안에만 머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평면에서 움직이는 세포 움직임은 방향 전환 시점을 구분하기 어려워 한 걸음을 정의하는 데 모호함이 있었던 반면, 이 방법은 세포의 방향 전환 시점과 한 걸음의 크기를 정확히 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6개의 다른 종류의 세포를 최대 16시간 동안 추적해 세포 한 종류 당 5천~2만 개의 위치 데이터를 얻었다. 다양한 모델을 적용해 데이터를 해석한 결과 전이 암세포가 나타낸 움직임의 누적 빈도분포가 레비워크를 나타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레비워크가 실제 조직 내에서도 적용되는지 확인하고자 살아있는 쥐 피부에 흑색종 세포를 도입하고, 고해상도 현미경을 사용해 전이·비전이 세포의 이동을 관찰했다.

기록을 토대로 구역을 나눠 양적 분석을 시도한 결과, 종양 부위에서는 전이·비전이 세포 모두 빽빽하게 위치해 세포 간 충돌이 잦았지만, 종양 부위로부터 멀어지자 전이 암세포의 경우 방향성을 갖고 빠르게 이동함이 관찰됐다.

이번 연구에서 생물학 부문을 맡은 그쥐보프스카 연구위원은 “암세포 전이 원리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 궁극적으로는 암 전이를 막는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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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는 “미래에는 세포 움직임을 수정하는 RNA 기술과 이를 관찰하는 통계 물리학의 조합으로 세포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포의 이동 패턴을 파악하는 연구는 세포생물학의 강력한 도구가 되리라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10월31일자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