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중고폰 수거, 디지털로 바꾼 ‘중가비’

장영석 대표 "중고폰 수거 딜러에게 하루 2시간 여유를"

인터넷입력 :2018/08/17 18:20    수정: 2018/08/17 19:15

휴대폰 판매점이 하루 장사를 마무리 할 무렵인 오후 5시, 중고폰을 수거하는 ‘수거 딜러’들은 이 때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휴대폰 판매점과 대리점 수십 곳을 돌며 하루 2만~3만보를 걷는다.

수거딜러는 휴대폰 판매점, 대리점에 찾아다니며 중고폰을 수합한다. 복대처럼 찬 일수 지갑에서 수백만원어치 현금 뭉치를 내주고 중고폰 수 대에서 수십 대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받는다. 중고폰 시세는 새로운 휴대폰 출시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받은 즉시 수출업체에 넘기는 게 좋다.

바삐 가는 동안 가슴팍 주머니에 넣어둔 볼펜 자국이 무성한 거래일지는 점차 꾸깃꾸깃 해진다. 중고폰 유통 시장은 음성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술의 손도 닿지 않았다. 수거딜러는 수출업자에게 휴대폰 자루를 건네고 차익으로 10~20만원을 가져간다. 밤 11~12시가 다 돼 귀가한 딜러들은 피곤을 무릅쓰고 엑셀에 하루치 장부를 기록하거나 그냥 잠에 든다.

이런 수거 딜러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미 한차례 성공적으로 스타트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나섰다. 스타트업 업스테어스의 공동창업자 장영석 대표와 박일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2월 중고폰 가격 비교 서비스 ‘중가비’를 출시하고, 4월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가방에 중고폰을 가득 싣고 신도림 테크노마트 내에서 이동 중인 수거 딜러. 휴대폰 판매점에서 중고폰을 검수하고 있다.(사진 제공=업스테어스)
중고폰 수거 딜러가 보는 거래 장부(왼쪽)와 수출업체 매입가격표

중가비를 이용하면 수거 딜러들은 이동 중에 간편하게 거래량과 거래액을 기입할 수 있다. 수출업체들이 제시한 매입단가도 확인할 수 있다. 중가비는 딜러들 사이에서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플랫폼 개시 약 4개월 만에 수거 딜러 4명 중 한 명은 중가비를 사용한다고 회사는 추산하고 있다.

■네이버에 인수된 '번개장터' 성공시킨 주역들, 중고폰 시장에 나서다

14일 지디넷코리아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업스테어스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장영석 대표와 박일 CTO를 만났다.

장영석 대표와 박일 CTO는 중고 거래 사이트 ‘번개장터’에서 만났고, 재직 기간 번개장터를 네이버에 인수 합병시키며 투자 회수에 성공했다. 번개장터를 운영하는 동안 수많은 중고 아이템을 접했고 그중 이들의 눈에 띈 건 어떤 기업 하나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있는 중고폰 영역이었다. 중고폰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거대 휴대폰 제조사가 출시하는 새 휴대폰 회전율은 줄어든다.

업스테어스 장영석 대표(왼쪽), 박일 CTO

장 대표는 “새 휴대폰이 1년에 1천만대 정도 개통되는데, 시간이 흐르면 중고폰도 1년에 1천만대가 나오게 된다”며 “중고폰의 80~90%은 휴대폰 대리점과 판매점에서 수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거된 중고폰은 수출업체로 넘겨져 B2B의 성격을 띠게 된다”며 “보통 중고나라 같은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거래되는 중고폰은 10%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업자들이 숨어 있다”고 덧붙였다.

박일 CTO는 “국내 개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중고폰들이 중고나라에서 거래되는 것 같지만 휴대폰 판매점이나 대리점에서 수거되면서 사실상 대기업이 수합하게 된다”며 “수거 딜러가 사간 중고폰들은 가격이 맞는 수출업체에 되판매 된다”고 말했다.

중고폰 관련 업체 착한텔레콤과 유피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중고폰 거래량은 약 1천만 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7천억원에 달한다. 이중 삼성전자 휴대폰은 654만 대, LG전자 휴대폰은 238만 대, 애플 휴대폰 145만 대 수준이다. 여기에서 개별 소비자가 아닌 수출업체와 이뤄지는 거래는 800만 대 가량, 1조4천억원에 달한다.

국내 중고폰 시장은 양성화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때문에 중고폰은 주로 메나(MENA)지역으로 수출된다. 메나는 중동(Middle East)과 북아프리카(North Africa)의 합성어다. 1차적으로 홍콩에 먼저 수출된 뒤 메나지역 국가로 빠지는 식이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휴대폰은 침수에 강해 베트남, 캄보디아 등 비가 많이 오는 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중고폰 중에는 본체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제품이 많지만 국내 휴대폰 제조사가 만든 기기가 중고가 되면 합법적으로 수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심각하게 파손된 중고폰이 아니라면 망가진 휴대폰도 어렵지 않게 수출된다.

장 대표는 “애플은 합법적인 사설 수리점이 많이 있어 수리가 쉽지만 삼성은 중고폰을 수리할 수 없다”며 “삼성의 경우 망가진 휴대폰을 그대로 수출하거나 사설 수리 업체가 중국 공장에서 부품을 몰래 빼와 음성적으로 수리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중가비는 수거 딜러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

업스테어스 장영석 대표, 박일 CTO

통신사도 수거딜러처럼 휴대폰 판매점과 대리점에서 중고폰을 사간다. 하지만 통신사의 중고폰 매입가는 수거딜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스마트초이스에서는 중고폰 시세가 조회된다. 하지만 시세 업데이트가 자주 되지 않는 편이다.

장영석 대표는 “통신사도 수거딜러처럼 휴대폰 판매점이나 대리점에서 중고폰을 사가는데, 그 금액이 수거딜러가 제시하는 가격의 50%도 못미친다”며 “가령 KT가 한 대당 10만원을 주고 산다면 수거딜러는 20만원을 주고 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스마트초이스에서는 한 달이 지나도 중고폰 가격이 같지만 수거딜러들은 매일 매일 경쟁을 해가며 자기만의 생존방식으로 중고폰 시세를 업데이트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중고폰 시장은 정말 자영업자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가비를 이용하면 수거 딜러들이 휴대폰 대리점, 판매점, 수출업체 등을 오가면서 장부를 입력할 수 있다. 수거 딜러들은 수출업체에 하나씩 방문해 시세를 알아볼 필요 없이 중가비에서 각 업체들이 제시한 매입가를 확인할 수도 있다. 업스테어스가 매일 수출업체들로부터 매입가 서류를 받아 입력한다.

중가비

분실된 중고폰이 들어올 경우 장물로 취급되나, 중가비에는 분실폰을 간편하게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졌다. 분실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국제모바일기기 식별코드(IMEI)를 문자인식기술(OCR)로 스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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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는 “분실폰 조회도 손쉽게 되니까 장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며 “중가비를 이용하면 수거 딜러들이 하루를 더 편하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가비는 현재 모바일에서 웹버전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20일 앱으로도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