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만 바뀐다고 데이터 강국 되지 않아"

서울대 고학수 교수 "관행·문화·노하우 쌓여야"

컴퓨팅입력 :2018/07/25 17:41    수정: 2018/07/26 09:25

“법 한 줄 바뀐다고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법, 기술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한 실무자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사회 관행과 문화,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서울대 고학수 교수는 2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는 단순히 법 개정만으로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지난 6월 정부는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 쓰는 나라’를 목표로 ‘마이데이터’ 시범 사업 등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도 데이터 활용도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개인정보보호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서울대 고학수 교수.

고 교수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현재 한국법경제학회장과 서울대 법과경제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 자문위원과 방송통신위원회 법령해석위원, 신용정보원 자문위원, 금융보안원 자문위원, 비식별조치 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개인정보 관련 규제 제도 혁신해커톤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 교수를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연료는 빅데이터다. 한국의 데이터 환경이 어떻다고 보나.

"데이터 생성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은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 어려운 편이다."

-어떤 환경이 그런가. 정부 추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가명 정보 개념을 명시화하고, 개인정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정도로는 불충분한가.

"법 자체가 뚜렷하지 않아 법 개정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법만 고쳐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로 생각하는 건 아주 잘못됐다. 데이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면 현장에서 DB만 만지는 실무자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정보 영역에 대해서 이해를 갖춘 전문가도 적을뿐더러 데이터를 하루종일 만지고 이해도를 갖춘 실무자도 극소수다. 실제 현장을 가보면 데이터를 만져 본 경험이 얼마나 있는지,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에 관련된 고민을 많이 해봤는지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편차가 심하다."

-실무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나.

"다른 나라도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데이터를 해봐야 밥벌이가 안 되니 더 없다. 현장에서 데이터를 하는 분들은 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법이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불분명하니 현장에서 데이터 분석을 열심히 안 한다. 거꾸로 반대되는 입장에서는 괜히 법 바꿨다가는 사고만 나지, 가시적 성과가 잘 나오지도 않으면서 법만 탓한다고 한다. 양쪽 입장이 모두 있는데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제도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현장에서 데이터 이용을 잘하려면 어때야 하는가.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우리나라는 문, 이과를 구분한다는 거다. 컴퓨터 공학을 했거나 데이터마이닝을 한 분들은 공학적, 통계학적 기준을 적용해 그 기준만 만족하면 모두 다 이용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역은 공학적인 기술만 적용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과적 고려를 같이해야 한다. 한국은 문과생적인 마인드와 이과생적인 마인드가 전혀 다르게 분리돼 있어 같이 고민하고 같이 답을 찾는 부분이 필요하다."

-분리된 문, 이과 교육이 문제라는 건가.

"그렇다. 결국 법 한 줄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국가적인 방향 설정도 필요하다. 국가적으로 데이터사이언스 영역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관련 공학자들을 키워낸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그와 관련된 사회 규범, 법적인 절차를 어떻게 맞춰갈지,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관련 문제는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는지 등의 고민을 할 수 있는 융합적 능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실질적 융합이 잘 안되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이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라고 보는가.

"제일 잠재적 활용도가 많은데는 일반적으로 의료, 금융 분야다. 건강보험공단에는 많은 데이터가 축적돼 있고, 여기는 일정 수준 활용 가능한 메커니즘을 구축해 놓고 있다. 다른 영역에 비하면 잘하고 있는 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건보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개별 병원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동네 의료병원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내용의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많이 난다.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 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보 주체가 정보를 제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려면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리는 저신뢰 사회다. 나에 관한 정보가 흘러가 나한테 부메랑이 돼 불이익이 될까 하는 불안감이 형성돼있다. 자신의 정보가 활용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 제도도 잘 갖추고, 공학적인 기준만 가져가서는 안 되고 그 기준과 함께 사람들의 불신감을 없앨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고민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데이터도 잘 활용하는 해외 사례가 있나.

"영국에 참조할 만한 사례가 있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홍채 사진을 받아 인공지능 트레이닝을 통해 당뇨성 망막증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프라이버시 상의 문제가 안 생길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사회적 고민의 수준과 관행, 문화에 따른 결과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고민은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고민하고 있는데, 헤매는 중이다.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렵기 때문에 회피하면 나라는 망하는 길로 간다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고민을 직면해서 풀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푼다 안 푼다, 몇 년 안에 데이터 성과를 낸다 안 낸다 이런 문제로 접근하면 망한다. 안전하게 데이터를 활용하는 문제는 계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지 수학 문제 풀듯이 한 줄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다. 흔히 가지는 생각 중 하나가 특정 정보가 있으면 개인정보가 맞다, 아니다 결정해 개인정보가 아니면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개인정보가 아닌데, 내일은 개인정보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정보랑 결합하면 개인정보가 될 수도 있는 등 개인정보인지 아닌지는 바뀔 가능성이 있다. 계속 고민해야 하고, 오늘 회의에서 결론 냈더라도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 한다. 관행이나 노하우가 계속 축적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관련기사

-사회적 관행, 노하우가 축적돼 한국이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 이용하는 나라’로 가는데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나.

"시간이 걸린다. 하루아침에 새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은 맞는데 법이 바뀐다고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의 관행, 문화,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많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