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분쟁 "요란한 시작 조용한 결말"

초반엔 '시장퇴출' 기세…피로감 쌓이면서 타협

홈&모바일입력 :2018/06/28 09:41    수정: 2018/06/28 15: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애플은 서류상으론 승리했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쥔 건 별로 없다.”

뉴욕타임스는 27일(이하 현지시간)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 합의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요약했다. 2011년 스티브 잡스의 '핵전쟁 선포'로 시작됐던 두 회사간 특허소송이 조금은 싱겁게 마무리됐다는 평가인 셈이다.

세계 IT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삼성과 애플 간의 디자인 특허 소송이 마무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이날 삼성과 애플이 7년 간의 특허소송을 합의로 끝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2007년 맥월드 기조연설을 통해 아이폰을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 이후 잡스는 '안드로이드는 절대악'이라면서 전면 특허전쟁을 선포했다.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시장 상황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조건인 것으로 추정된다.

씨넷에 따르면 두 회사는 ‘같은 조건으로 다시는 제소할 수 없는(dismiss with prejudice)’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 사실상 전쟁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 2012년 완패했던 삼성, 2016년 대법원 소송선 오히려 승리

2011년 스티브 잡스는 ‘안드로이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이폰 특허를 무단 도용했다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시장에서 쫓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애플에게 안드로이드 특허전쟁은 ‘돈 이상의 문제’였다. ’안드로이드와의 성전’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삼성에게 애플은 ‘한 발 먼저 길목을 차지한 뒤 후발주자를 막아서는 횡포’를 자행하는 업체였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에게 쓴 맛을 보여주라”는 잡스의 명령에 애플은 전방위 폭격을 가했다.

초반엔 애플의 이런 전략이 먹혀드는 듯했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배심원들은 10억 달러를 웃도는 거액의 배상금 선물을 안겼다. 삼성이 ‘고의로’ 애플 특허를 도용했다는 평결까지 함께 내놨다.

삼성 측 존 퀸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어떤 삼성 폰이 애플 특허를 침해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씨넷)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애플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 애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디자인 특허의 위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주요 특허권들이 무효 판결을 받았다.

전열을 정비한 삼성의 반격도 매서웠다. 항소법원에선 제품 특유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2016년 열린 연방대법원 상고심은 더 극적이었다.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줄곧 뒤지던 경기를 8회말 역전 홈런으로 뒤집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게 9회말은 아니었다. 올 들어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속개된 파기 환송심에서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일반인인 배심원들이 ‘애플의 UI 디자인 특허는 제품 전체나 다름 없다’는 취지의 평결을 내놓은 것.

결국 삼성 배상금은 5억3천900만 달러로 또 다시 늘어났다. 물론 삼성은 즉각 항소했다.

■ 7년 전쟁이 삼성과 애플에게 남긴 건 뭘까

이쯤되면 두 회사 특허전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질 모양새였다. 미국 기업인 애플에겐 ‘베트남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삼성 역시 끝없이 계속된 특허전쟁으로 인한 피로감이 적지 않을 수 있었다.

두 회사가 법정 밖 화해로 승부를 끝낸 건 이런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모양새 좋게 철수할 명분’이 필요했던 애플에겐 지금이 명예롭게 싸움을 끝낼 최적기일 수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려로 시작했던 7년 특허 전쟁.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애플이 얻은 것은 많지 않다.

물론 삼성에게 10억 달러 가까운 배상금을 받긴 했다. 하지만 통장에 2천670억 달러를 쌓아놓고 있는 애플에겐 그다지 큰 돈이 아니다.

애플 특허전쟁의 핵심 무기였던 둥근 모서리 특허권 개념도. 하지만 이 특허권은 미국 특허청에서 무효 판결을 받았다. (사진=미국 특허청)

그 사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업체로 성장한 삼성 역시 배상금이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특허 전쟁 덕분에 삼성의 글로벌 인지도는 훨씬 더 올라갔다.

시장 점유율도 특허전쟁 시작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IDC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5%에 이른다. 반면 애플 아이폰은 15% 남짓한 점유율만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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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서류상으론 애플이 이겼다. 하지만 삼성에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또 “애플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이익만 얻고 철수했다”고 혹평했다.

특허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는 “애플은 지적재산권을 강화할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줬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삼성은 무서운 방어자란 사실을 입증했다”고 진단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