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단상] "여성 CIO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수첩입력 :2018/03/14 09:37    수정: 2018/03/14 12:21

수습기자 한달째인 얼마전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 CIO포럼 조찬모임'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넥타이를 맨 중년의 기업 IT임원(CIO)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CIO가 되려면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 남성 리더들의 프로의식이랄까, 아니면 힘이랄까, 그들에게서 풍기는 아우라에 압도됐다.

꽉 찬 조찬장에 감탄하며 홀 안을 둘러보니 참석자들이 족히 100여 명은 넘은 듯 했다. 그런데 전부 남자였다. 문득, 국내에 그 많은 CIO 가운데 여성 CIO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에서 리더가 남자인 풍경은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이자 여성인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아직도 신문에는 ‘여성리더 3인’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기사를 쓴다. 그만큼 ‘여성리더’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인기를 끄는 아이템이다. 그들이 아직 소수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남성리더 3인’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대부분 리더는 남성이었으니 당연한 현상에 굳이 성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여성리더가 이토록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자리에서 다시금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여성리더가 없는 이유는 하나 하나 꼬집자면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기자는 여성이 스스로 리더가 되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를 말하고 싶다. 바로 ‘자기 혐오’를 심어주는 사회와 ‘사회가 그리는 여성 리더상’이다.

여성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조직 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는 말, 여성은 조직을 위해 희생(어떤 희생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지만)할 줄 모른다는 말, 여성은 나약하다는 말, 그 모든 말은 나에게 세뇌처럼 다가온다.

너는 여성이니까 조직 생활 잘 못해, 너는 여성이니까 희생할 줄 몰라, 너는 여성이니까 나약해, 그렇게 나에게 사회편견에 부응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만일 여성이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나약하고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그 모든 강요되어 온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느새 사실로 굳어져 버린다.

이런 것들은 여성인 내가 다음 생에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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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하는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온다. 리더가 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독하다. 하나같이 사랑을 믿지 않으며, 하나같이 웃지 않으며, 하나같이 동성 사이에서 차갑고 인정없는 '년'으로 불리며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왜 여성리더는 늘 그런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웃고, 따뜻하고, 여유롭고, 젠틀한 그런 여성 리더는 상상 할 수 없을까. 우리 상상력은 너무 빈곤하다.

미투운동과 펜스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많은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성’과 ‘권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침 CIO포럼이 있던 날은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이었다. 강연을 한 어느 회사 전무의 마무리 인사가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여성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여성 CIO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