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되는 ‘보이스 퍼스트’ 세상 열릴까

10년 '터치시대' 계승…사생활 침해 등 우려도

인터넷입력 :2017/10/18 17:36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7’에선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LG전자, 필립스, 보쉬, 밀레 등 대형 부스에선 “오케이 구글”, “알렉사”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그리곤 곧바로 여러 가전제품들이 목소리에 반응하는 장면이 시연됐다.

비슷한 장면으로, 지난 17일 막을 내린 네이버 개발자 컨퍼런스 ‘데뷰 2017’에서 전시장 한켠에 조그맣게 꾸려진 한 부스가 유독 많은 관심을 모았다.

LG전자가 IFA 2017에서 공개한 자율주행 로봇.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와 같은 인공지능 음성비서 시스템과 연동된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네이버가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입힌 인공지능(AI) 스피커 ‘프렌즈’를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참관객들은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가 탑재된 프렌즈 스피커에 다양한 명령어를 내리는가 하면, “귀엽다”는 말과 함께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두 장면은 최근 기술의 흐름이 어느 쪽을 향해 가고 있는 지 잘 보여줬다. 터치 시대의 뒤를 이어 '보이스 퍼스트' 이용자 인터페이스(UI)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 인터페이스의 진화…‘터치’에서 ‘보이스’로

10년 전인 2007년 애플은 ‘아이폰’으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터치 인터페이스 기반의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 때 이후 PC가 담당했던 기능 대부분이 모바일 영역으로 넘어왔다. 타이핑(키보드)과 클릭(마우스)이 차지하고 있던 중심 UI 역할도 터치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업무와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또 다시 UI 혁명의 불씨가 조금씩 타오르고 있다. 터치에서 보이스(음성)로 인터페이스의 혁명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IFA 2017과 같은 가전전시회뿐 아니라, 모터쇼와 개발자 행사에서 이런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일상에서의 변화도 이미 시작됐다.

네이버가 공개한 라인 프렌즈 스피커. 내장된 클로바 AI 플랫폼을 통해 로봇(사진 오른쪽)과 같은 다른 기기들도 제어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슈퍼플랫폼을 선점하라’에선 이런 변화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지난 70년 간 사람이 컴퓨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향후 70년은 컴퓨터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시대가 될 것이다.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그 변곡점이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아마존은 음성인식 등 AI 기술 알렉사를 품은 음성 비서 ‘에코’를 출시했고, 구글 역시 유사한 기능을 지닌 ‘구글 홈’을 선보이며 방대한 음성 데이터 수집에 나섰다. 이에 앞서 애플은 아이폰에 음성비서 ‘시리’를 탑재, 사용자의 말을 알아듣고 간단한 답변을 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AI 스피커를 선보이며 시장 선점에 뛰어든 상태다.

각사 AI스피커 제품. 카카오미니(상), 웨이브(하), 누구 미니(우).

특히 국내 양대 포털사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쟁은 제품 출시 시점도 맞닿아 있어 불꽃이 튈 정도다. 네이버가 AI 스피커 ‘웨이브’를 내놓자, 카카오가 카톡 캐릭터를 입힌 ‘카카오 미니’로 반격에 곧 나선다. 이에 네이버는 라인프렌즈 캐릭터 디자인을 입힌 ‘프렌즈’를 공개, 의도와 상관없이 두 회사 간 AI 스피커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삼성전자 역시 음성비서 ‘빅스비’를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하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음성으로 앱을 실행시키고, 피자를 배달하는가 하면, 전등과 TV를 켜고 끄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됐다.

■보이스 인터페이스, 아마존의 진격

아마존이 새롭게 출시한 에코(왼쪽)와 에코 플러스.(사진=씨넷)

음성 인터페이스는 아마존이 주도하고 있다. 2014년 AI 스피커 ‘에코’를 출시했고, 저가형 제품인 ‘에코 닷’, 화면이 달린 ‘에코 쇼’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최근에는 3년 만에 초대 모델보다 저렴한 에코와, 사운드 개선과 스마트홈 허브를 내장한 ‘에코 플러스’ 등을 공개했다.

아마존 에코의 강점은 다른 회사에 알렉사를 개방해 에코와 연동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앱처럼 에코를 통해 사용 가능한 스킬은 1만5천개가 넘는다. 게임, 뉴스, 교육 등의 콘텐츠도 다양하고 조명이나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스킬도 풍부하다.

이에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처럼 알렉사 에코 생태계가 비교적 잘 구축되고 있다는 평가다.

아마존 알렉사가 다양한 생활 가전에 탑재되거나 연결되고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OS로서 지위가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 IT매체 리코드는 최근 시장정보업체 팩트세트의 자료를 인용해 다른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영감을 얻는 기업 1위에 아마존이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작년에 1위를 차지했던 구글을 제치고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분야뿐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 미디어, 오프라인 식료품, 그리고 AI 스피커 시장에서도 급부상했다는 평가다.

■ “아마존 게 섰거라”…구글, 네이버, 삼성 등 참전

2017년 8월 30일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각자의 인공지능 음성비서(AI) 알렉사와 코타나를 연동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아마존, MS, PIxabay 이미지 편집]

아마존이 기존 전자상거래 영역을 넘어 오프라인 유통까지 발을 넓히고, AI 기술과 플랫폼을 앞세워 일상 곳곳에 파고들려는 노력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기업 간 신경전도 치열하다.

구글이 아마존의 에코쇼에 유튜브 접근을 차단한 것이 대표적이다. 외신들은 구글이 사전 예고도 없이 에코쇼에서 유튜브를 차단한 이유 중 하나가 구글의 AI 스피커 구글홈과 아마존 에코 스피커의 경쟁 구도 때문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반대로 적과의 동침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 클라우드 시장에서 경쟁자 관계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이스 인공지능 통합을 선언했다. 아마존 알렉사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 캘린더와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아마존, 구글, 애플, 삼성전자, SK텔레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외 기업들이 AI 스피커 경쟁에 열을 올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이스 퍼스트 시대, 음성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PC나 스마트폰을 넘어 자동차, 거실, 안방, 부엌 등에서 사용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사용자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고, 이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는 말처럼 기업들은 편리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대신,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가공함으로써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는 데 열을 올린다. 이를 위한 첫 도구가 AI 스피커인 셈이다.

■보이스 퍼스트 시대 명과 암

아마존에코(왼쪽), 구글홈(사진=씨넷)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에도 이런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다. 저자들은 주변 환경이 스스로 지성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해 사람이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면서 그 출구가 바로 ‘보이스’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음성으로 궁금증을 바로 해결하고, 원하는 것을 그 즉시 주문하고 받는 편리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게 되면서 PC 앞에 앉아있던 시간이 줄고, 키보드나 디스플레이 위에 놓였던 두 손도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물론 '보이스 퍼스트 시대'에 핑크빛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역시 사생활 침해다. 주변 사물들로부터 끊임없이 일거수일투족 관찰당하며 자신의 데이터가 수집될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

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는 아예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경고했다. 개인정보와 정보보호라는 개념들이 재 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밝혔다.

보이스 퍼스트 시대가 되면 수집되는 개인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에 사생활 침해와 보안 이슈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기업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막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정보 인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마존 등 특정 기업에 지배당하는 데이터 독점 문제도 보이스 퍼스트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부정적인 현상으로 거론했다.

그럼에도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센터 겸임교수는 보이스가 지배적인 인터페이스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강한 확신을 보였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가 저물고 보이스 퍼스트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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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보이스 인터페이스의 대중화로 기회와 편리함만큼 위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도 암시했다.

강정수 교수는 “앞으로 다가올 30년, 10년은 전문가도 이를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확실한 것은 보이스가 지배적인 인터페이스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에게는 기회를, 개인에게는 편리함도 주지만 여러 가지 위험도 존재할 것”이라는 말로 보이스 퍼스트 시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