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자급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균성 칼럼] 탁상공론의 한계

데스크 칼럼입력 :2017/09/20 16:34    수정: 2018/11/16 11:27

최종 도입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어찌됐건 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완전자급제 지지자였다. 불법 보조금으로 시장이 늘 혼탁하고 소비자 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급성장하던 때 이 이슈는 수없이 반복됐고 정부가 끊임없이 규제하고 처벌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완전자급제만이 해결책으로 보였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완전자급제를 주장하던 때로부터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완전자급제 찬성론자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이 제도가 시장 문제를 해결할 완벽한 대안일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해 관계자가 대립하는 사안의 경우 만병통치약이란 없다는 단순한 이치 때문에라도 그렇다. 사안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해법은 난해하다.

자급제폰 이미지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는 우선 그 취지와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그래야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이해 관계자에 따라 취지와 목적이 다르다면 시뮬레이션이 제각각일 것이고 서로 딴 이야기만 하게 된다. 김성태 의원의 법안 발의로 진행되는 현재의 완전자급제 논의가 그 꼴이다. 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중구난방이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완전자급제를 지지할 때 이동통신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화두는 불법 보조금과 소비자 차별이었다. 이 두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가 서비스와 단말기를 함께 팔면서 새 가입자 유치 작전으로 특정 소비자에게만 고액의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시장 환경과 유통구조였다. 이 문제는 유통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정부의 감시와 처벌로만은 풀리지 않는다고 봤던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화두가 달라져버렸다. 그때는 시장이 성장기였고 지금은 정체기다. 그때는 소비자 차별이 극심했지만 지금은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 그때는 불법 보조금이 판을 쳤지만 지금은 뜸하다. 시장이 이렇게 바뀐 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즉 단통법 때문이다. 보조금을 공시토록 한 이 제도가 소비자 차별을 크게 줄여주었다는 뜻이다.

지금 화두는 소비자 차별이나 불법 보조금이 아니라 과연 가계통신비가 적정하느냐의 문제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다른 말로 하면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 영업이익이 적정하느냐의 문제와 같다. 논리를 조금 더 확대하면 ‘공공재 성격이 어느 정도 있는 민간 서비스의 가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느냐’의 문제다. 결국 ‘공공’에 포인트를 주느냐 ‘민간’에 주느냐의 문제와 같은 것이다.

크게 대별하면 소비자는 공공에 포인트를 주자는 것이고 기업은 민간에 주자는 것이다. 이게 지금 논란의 근본 문제다. 정부는 이 논란에서 약간 소비자 쪽에 기울어 있다. 정책의 기본 방향성이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공약을 실현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가격을 사회적으로 통제해 민간 기업의 영업이익을 줄이고 그걸 소비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법제도를 만드는 곳이 국회와 정부이고 국회와 정부는 소비자이기도 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니 어떤 제도이든 결국 국민의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다는 게 형식논리다. 우리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민이 원한다면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적인 경제 정책 펼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동전화 요금을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그게 궁극의 지향점이라면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민영화한 기업을 국영화하거나 과거처럼 공기업으로 전환하면 된다. 적자가 나더라도 얼마든지 저렴한 요금을 받고 보편적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세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원하는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데 법이든 헌법이든 못 고칠 이유가 뭐 있겠나.

다시 문제는 누구도 그 확실한 방법을 주장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법리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현행법을 줄타기 하며 선택약정할인율을 25%로 올리는가 하면 기업을 더 옥죌 수 있는 다른 법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이 발의한 완전자급제 법안은 이런 혼란한 상황에 돌출된 정략적인 속수(俗手)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얕은 포퓰리즘일 수 있다는 뜻과 같다.

김성태 법안을 속수라고 하는 까닭은 입법 취지에서 전문성과 대의를 발견하기 어렵고, 모순되는 구석이 적잖으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입법 취지가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점에서 전문성과 대의를 발견하기 어렵다. 김 의원이 ICT 전문가 출신 비례 대표 의원이라면 더 큰 그림을 고민했어야 한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같은.

가계통신비를 인하하자면서도 과대하게 팽창돼 있어 불필요한 비용구조를 갖기 때문에 소비자가 싫어하는 판매점을 온존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은 모순이다. 가계통신비를 낮추려면 이동통신 회사의 이익을 줄이거나 유통과정에서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를 손대지 않는다. 왜? 표 때문?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

요금과 출고가 인하도 장담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 제도는 기존 법인 단통법 철폐를 전제로 한다. 단통법이 철폐되고 보조금이 없어지면 이에 근거해 정부가 고시한 선택약정할인율 25%도 당연히 없어진다. 사용자 월 평균 요금을 대충 4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1만원에 해당한다. 당장 그만큼 요금이 오르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이 정도 요금이 다시 내려오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기다린다고 과연 내려오기나 할까. 아니 그나마 무기(보조금)마저 사라졌는데 사업자들이 경쟁하려고나 할까. 경쟁을 안 한다고 소비자가 선택할 다른 대안이 있기는 한가. 고작해야 선택약정할인보다 약한 약정할인 경쟁 정도겠지. 그래봐야 비슷비슷한. 이게 달갑지 않다면 이 제도 도입 전에 선택약정할인율 25%에 해당하는 1만원을 일괄 인하하고 시작하자고 해야 한다. 기업이야 망하든 말든.

단말기 출고가 인하도 마찬가지다. TV 가격이 쭉쭉 내려가는가. 출고가 인하를 장담하려면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 완전자급제로 구현하려는 유통구조가 지금 TV 시장과 같기 때문이다. 아이폰X는 또 어떤가. 완전자급제가 아니어서 사상 최고가가 나온 건가. 완전자급제를 하든 안 하든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있고 소비자 위주 시장이 있다. 그걸 결정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다.

결국 이동전화 서비스는 서비스끼리 단말기는 단말기끼리 본원적 경쟁을 하게 해 소비자한테 이득을 취하게 하겠다는 논리는 충분히 그럴 듯하나 현실은 이동전화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단말기는 단말기대로 이미 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공정위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의 암묵적 담합을 통해 공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되레 소비자보다 사업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사업자는 그렇다면 더 유리할 수도 있는데 왜 반기지 않는가. 불확실성 때문이다. 기업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것은 혁신과는 무관한 외생적 불확실성이다. 사드가 대표적이다. 정치인의 섣부른 결정이 현대차와 롯데 같은 국내 대표 기업을 얼마나 큰 곤궁에 빠뜨리고 있는 지 지금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이것도 실효성은 없으면서 불확실성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가계통신비와 관련해 지금 정부가 제시한 각종 정책안들만으로도 벅차다. 특히 선택약정할인율 25%만 가지고도 완전자급제가 노리는 효과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보조금 안 받는 사람이 큰 폭으로 늘고 있지 않은가. 왜 그런가. 보조금보다 요금 할인 받는 것이 확연하게 유리하기 때문 아닌가. 이는 이통사가 단말기를 공급하든 안 하든 앞으로 자급제 폰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또 자급제 폰이 늘어난다는 건 제조사간 경쟁이 촉진된다는 뜻 아닌가. 그러면 출고가가 내려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다 소비자는 원스톱 서비스의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또 저가 요금에 가입하고 요금할인을 받는 대신 구형 폰이나 저가 폰을 구입하면서 보조금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법률로 규정한 완전자급제보다 현행 제도가 소비자에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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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완전자급제 도입론자들의 생각과 달리, 가계통신비 인하가 오직 유일한 정책 목표라면, 앞에서 밝힌 재(再) 공기업화를 제외할 경우, 어쩌면 지금 제도가 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위의 논거들이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괜히 부산하게 소란 떨며 기업은 기업대로 힘들게 하면서도 소비자는 더 비싼 요금과 스마트폰을 써야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휴대폰 시장을 혁신한 건 애플과 스티브 잡스지 그 어떤 정부 정책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