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레이팅 규제해야” vs "아직 지켜볼 때“

제로레이팅 지적에 정부 ‘신중론’

인터넷입력 :2017/09/07 18:44    수정: 2017/09/07 20:04

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인터넷 업계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정부는 제로레이팅과 관련해 아직 이용자 후생이 저하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시장 내 불공정행위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망중립성이란 SK텔레콤이나 KT와 같은 통신망 제공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제로레이팅이란 인터넷(특히 데이터 상한이 있는 모바일의 경우) 이용자에 대해 특정 콘텐츠 사용 시 유발되는 데이터의 대가를 부과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 제로레이팅 규제 필요성에 “일관적 사전 규제 무리”

유승희 의원, 오픈넷 주최 망중립성 토론회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오픈넷은 7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우리나라 망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오늘 토론회에서는 SK텔레콤의 11번가 데이터 이용료 면제 혜택과, KT의 지니 전용데이터 무료 서비스 등 제로레이팅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다뤄졌다.

고려대학교 박경신 교수는 SK텔레콤과 KT의 사례를 들어 “제로레이팅은 금전적 차별에 해당되고, 이는 망중립성 원칙 훼손으로 볼 수 있다”며 “계열사에 대한 제로레이팅 제공은 심각한 문제기 때문에 이를 공정거래법으로 문제가 없는지 정부 당국이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고시를 보면 통신사들의 제로레이팅을 독려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서 “이는 자칫 공정거래법 위반을 독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송재성 과장은 “제로레이팅 서비스로 이용자의 데이터 비용 부담이 경감 된다는 찬성 논거도 있고, 제로레이팅 부담 여력이 없는 중소 콘텐츠 제공자의 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반대 논거도 있다”며 “이에 사전에 일관 되고 구체적인 허용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지금처럼 허용하되, 시장 내 불공정행위 발생 가능성이 없는지 상시 모니터링 하고 (문제가 있다면) 사후규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자료집에 나온 제로레이팅 사례.

방송통신위원회 김종영 과장은 “현재 방통위 고시를 통해서도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이용자 후생을 저하했을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다”면서도 “SK텔레콤이나 KT의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이용자 후생에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고, 제로레이팅 서비스 개념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경신 교수는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이 바로 현재 통신사들의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들여다보고 따져봐야 하는 것”이라며 반박을, 송재성 과장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 무조건 사전규제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냐”고 맞섰다.

한편 제로레이팅 규제와 관련해 통신사들은 모든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동등한 조건으로 제로레이팅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계열사나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에게만 차별적인 혜택을 주거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 제로레이팅은 통신비 인하에 기여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에 미국이나 유럽처럼 규제 관점이 아닌 이용자 편익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망중립성 완화 반대” vs “통신 경쟁 환경 잘못된 인식 탓”

고려대학교 박경신 교수.

오늘 토론회는 주요 패널들이 인터넷 업계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탓에 망중립성 원칙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통신사들을 대표하는 협회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토론회 성격상 인터넷 기업들에게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패널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제자인 박경신 교수는 망중립성에 대한 개념과 논의된 흐름 등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뒤, 인터넷의 물리적 차별을 금지하는 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콘텐츠 사업자에 따라 데이터 비용이나 속도를 차별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일종의 거래거절 또는 사업방해에 해당된다는 논리”라면서 “망중립성을 완화하면 콘텐츠 생산이 축소되고, 콘텐츠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아질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 차별로 인한 소비 증대 효과도 없다”고 강조했다.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는 “망중립성을 완화하자는 말은 통신사의 자의적 차별을 허용해 달라, 타 시장으로의 시장지배력 전이를 인정해 달라는 얘기와 같다”며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를 전면 허용할 경우 트래픽 증가를 우려하더니, 제로레이팅 요금제로 인한 트래픽 폭증은 괜찮다는 논리는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총장은 “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든 산업의 근간인 만큼 망중립성은 공공성 원칙으로 지켜져야 한다”면서 “통신사 논리대로 망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니 이를 인터넷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면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종영 과장.

또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큰 인터넷 기업부터 작은 인터넷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비용을 얼마나 내는지 알 수 없다. 이들이 내는 네트워크 비용의 적정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무료 또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해외 인터넷 사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터넷 업계 시각에 국내 통신사들은 국내통신시장 경쟁 환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또 데이터 사용이 많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향상된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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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이통 업계 관계자는 “통신시장 경쟁이 부족해 통신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자의적으로 서비스 품질 등을 저하 시키므로 망중립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주장”이라며 “향후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최적화된 네트워크 기술이 필요한 만큼, 일반적인 네트워크 서비스와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하에 ‘망중립 가이드라인’과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이 제정돼 현재까지 준수되고 있다”면서 “또 이통망에 대한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이 중요해 여러 규제 기관이 이를 예의주시하는 상황인 만큼 더 이상의 규제는 불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