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 귀하는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호 이용층 애매…현행 알뜰폰이 더 유리

방송/통신입력 :2017/07/26 18:11    수정: 2017/08/02 09:42

정부가 이동통신서비스 요금 인하와 데이터 소량 이용자에 대한 혜택을 강화할 목적으로 내년에 ‘보편요금제’를 내놓도록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연말까지 관련 법률 개정 작업을 끝내고 내년에는 통신사들이 보편요금제를 출시토록 하겠다는 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구 미래창조과학부)의 계획입니다.

보편요금제에서는 월 2만원에 음성은 150~210분, 데이터는 900MB~1.2GB가 제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일반 이용자의 음성 및 데이터의 평균 이용량인 300분과 1.8GB를 기준으로 적용한 수치입니다.

보편요금제의 음성 및 데이터 제공량은 일반인 평균 이용량의 50~70%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요금도 2만원은 아닙니다. 평균 이용량에서 1분당 음성요금과 1MB당 데이터요금을 계산해 전년도 시장평균 요금 대비 비율이 100/100~200/100 이하에서 결정됩니다.

다소 복잡한 계산식을 거쳐야 하지만 현재 평균 이용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월 2만원 정도가 될 것이란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 보편요금제 왜 만드나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만든 이유는 저소득층의 통신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고, 이통사들이 고가 가입자 위주의 경쟁만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 가구의 통신비 지출액 비중이 5.06%로 교육비와 의류·신발보다 높은 지출순위 7위를 기록했다”며 “10분위 가구의 통신비가 2012년 20만5천원에서 지난해 19만1천원으로 감소한 것과 달리 같은 기간 1분위 가구는 6만2천원에서 6만4천원으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고가요금제 가입비중이 2014년 33.9%에서 2015년 6.3%로 감소했다가 올해 5월에는 13.1%로 급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통신비 인하를 위해 정부가 직접 소매요금 규제를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취약계층의 높은 통신비 부담이 문제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뜰폰을 정부가 지원해 사용하도록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굳이 정부가 인위적으로 이통사의 요금제에 개입해 보편요금제를 출시토록 한다는 비판을 받고,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자명한 알뜰폰의 전파사용료 면제, 도매대가 인하 등을 하는 번거로움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또 수백억원에 이르는 전파사용료 면제도 결국 국민들의 세금입니다.

오히려 저소득층이 알뜰폰을 사용할 때 정부가 지원할 경우 알뜰폰 활성화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대부분 통신사의 주파수 경매 대금으로 만들어지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이나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활용할 경우 사용처 논란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영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약 3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습니다.

통신이 필수재란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취약계층을 위한 통신비 감면은 민간에 보편요금제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하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특히, 민간사업자인 통신사가 저가요금제에서 알뜰폰과 경쟁하지 않고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고가요금제 위주의 경쟁만 한다고 정부가 나무랄 일도 아닙니다.

변정욱 국방대 교수는 “최근 통신이용량 증가의 주 원인은 동영상 트래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과거 음성 중심의 통신서비스는 필수재적 성격이 있었지만 동영상이 주요 트래픽 증가 원인이 되는 되고 있는 시점에 통신을 필수재로 봐야 하는 지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웹툰을 읽는 데이터 트래픽 사용을 필수재라고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도매규제→소매규제 회귀, 사실상 경쟁정책 실패

이는 지난 몇 년간 과학기술정통부가 소매요금 규제에서 벗어나 도매규제를 하겠다고 말한 것과도 모순되는 결정입니다.

도매규제의 시초이자 알뜰폰의 모태인 2010년 9월 이동통신재판매사업법(MVNO법)이 시행된 지 약 7년 만에 사실상 이를 무력화 시키는 보편요금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를 내놓게 된 배경으로 “현행 요금인가제도 만으로는 통신비 부담 증가와 소량 이용자에 대한 경쟁 혜택 소외 현상 등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존재했다”며 “인가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제도 개선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다시 소매규제로의 회귀를 의미하고, 더 강력한 소매규제를 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알뜰폰 정책의 도입취지를 고려하면 도매규제, 경쟁 활성화 정책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알뜰폰 사업에 이동통신 3사의 자회사를 진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통사들은 자회사들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저가요금제 가입자는 알뜰폰 자회사로, 고가요금제는 직접 유치하는 투트랙 전략을 펴왔습니다.

알뜰폰 가입자가 700만명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도 이통사들이 저가 시장에서의 경쟁은 회피하면서 자회사들이 대응토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통 3사 자회사의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 3월말 기준으로 152만명으로 약 21%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이통사들이 고가요금제 위주의 경쟁을 해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 보편요금제 출시로 어려움에 처한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내놓은 처방도 매년 똑같은 지원책에 불과한 전파사용료 면제와 도매대가 인하, 보편요금제 재판매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동통신 자회사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MVNO법이 제정된 이후 도매대가 산정방식 등을 놓고 갈등을 겪으면서 MVNO사업이 지연되자 정부에서 자회사들이 MVNO 사업에 참여해 달라고 이통사에 협조 요청을 했다”며 “이통사가 알뜰폰 시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자회사들을 진출시킨 것이 아니라 정부에 협조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매년 손실폭이 줄어들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총 317억원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고 매출 대비 영업손실이 4%에 이릅니다.

정부가 내년 9월까지 전파사용료 면제를 연장하고 도매대가 인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내년에는 보편요금제로 인해 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음성 150~210분, 데이터 900MB~1.2GB 만족 하시겠습니까

보편요금제의 대상은 소량이용자, 취약계층입니다. 따라서 보편요금제에서 제공되는 음성과 데이터 제공량은 일반 이용자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당 트래픽은 5045MB에 이릅니다. 특히 4G LTE 이용자는 6천689MB에 달합니다. 또 이통사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음성통화 무제한 서비스는 보편화되는 추세입니다.

이 때문에 데이터 소모량은 많지 않고 음성 무제한이 필요한 이용자들은 300MB의 데이터가 제공되는 3만원대 요금제를 사용합니다. 또 음성도 데이터도 많이 이용하지 않는 소량 이용자들은 기본료가 저렴한 알뜰폰을 선호합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알뜰폰이 확산된 이유입니다.

따라서 2만원에 음성 150~210분, 데이터 900MB~1.2GB가 제공되는 보편요금제는 타깃층이 애매합니다. 기본료가 적지도 않고 음성 및 데이터 제공량이 많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알뜰폰 유심 요금제 중에는 비슷한 요금을 내면서도 더 많은 혜택을 받거나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CJ헬로비전의 '착한 페이백 데이터 유심 1GB'는 월 2만6900원에 음성 무제한, 데이터 1GB가 제공되고 남은 데이터는 1MB당 10원씩 돌려줍니다. 또 ‘약정 유심 LTE 1GB'는 기본료가 월 1만890원이지만 2년 약정을 하면 기본료가 8천690원으로 줄어들고 음성 50분, 데이터는 1GB가 제공됩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음성및 데이터가 한정된 요금제를 굳이 2만원에 이용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저소득층에게도 보편요금제보다 알뜰폰을 더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단, 과기정통부는 이용량에 대한 불만 해소를 위해 2년 마다 한 번씩 보편요금제에서 제공되는 음성 및 데이터 이용량을 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오히려 이는 이통사의 요금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이동통신 3사는 물론, 알뜰폰 사업자들과 학계에서조차 보편요금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정부가 이처럼 직접 민간 사업자들의 요금정책에 계속 개입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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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변정욱 국방대 교수는 “2014년 3월 1인당 데이터 트래픽이 1천451MB였는데 올 3월에는 4572MB로 약 3배 증가했다”며 “5G가 상용화되면 트래픽이 계속 늘어날 텐데 보편요금제 만으로 통신비를 해결할 수 있는 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필수재라고 가늠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 수준을 보편요금제의 출발점으로 적용하고 통신비 정책 중심도 그렇게 가면 된다”며 “하지만 비필수재적 셩격이 강한 트래픽의 요금 정책은 시장에 맡기는 이분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