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기술로만 3번"…배석훈 대표 창업스토리

미국 기업 대상으로 2번 엑시트하고 다시 창업

인터넷입력 :2017/06/14 18:12    수정: 2017/06/15 08:05

손경호 기자

3차원(3D) 영상처리기술 한 우물만 파서 짭짤한 성과를 낸 창업자가 있다. 그는 창업한 2개 스타트업을 미국 유명 3D프린터 제조사인 3D시스템즈에 매각하고, 또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을 차려 2년째 운영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클라우드 기반 3D 가상투어 전문 스타트업 큐픽스를 이끌고 있는 배석훈 대표다.

13일 서울 종로구 소재 직방 사옥에서 만난 배 대표는 "기술기반 스타트업이라면 (핵심 기술을) 잘 파고들어서 조금만 수준을 높여 놓으면 가능성이 많다"고 강조했다.

말은 쉽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엑시트(Exit)'를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2번이나 성공하고, 세번째 도전에 나선 그의 비결은 뭘까?

배석훈 큐픽스 대표.

■사진 몇 장으로 3D 가상공간 만들어…프롭테크 시장이 타깃

그가 2년째 운영 중인 큐픽스는 클라우드 기반 3D 가상투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웹애플리케이션을 공개 베타 서비스 중이다.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용자는 건물 안에서 360도 카메라를 사용하거나 일반 DSLR 카메라에 파노라마 전용 삼각대(DSLR panorama tripod)를 설치한 뒤 이동하면서 촬영한 여러 장의 실내 사진을 이 회사가 운영하는 클라우드 서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 뒤에는 큐픽스가 자체 개발한 사진측량기술(photogrammetry)과 3D 영상처리 기술 등을 활용해 업로드된 사진 데이터들을 분석해 실제 촬영한 공간과 거의 같은 가상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생성된 가상공간은 다른 사람들이 그 공간을 실제로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면서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는 3D 가상투어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 큐픽스는 부동산 정보 플랫폼을 운영 중인 직방으로부터 전략적인 투자를 받으면서 협업하게 됐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는 사용자들이 직방 앱 내 부동산 매물에 대한 3D 가상투어를 경험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두 회사는 부동산(property)와 기술(technology)의 합친 '프롭테크(proptech)'에 주목한다.

배 대표는 "미국을 예로 들면 이미 유통시장은 아마존으로 넘어갔고, 검색은 무조건 구글을 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서비스 중 그나마 남은 것 중 하나가 부동산이라고 본다"며 "당장 내년부터 한번도 (오프라인에서) 매물을 안 보고 온라인에서 거래를 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이런 시장까지 온라인 서비스가 가까이 온 것 같다"고 전망했다. 프롭테크 시장에서 3D 가상투어로 오프라인 못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이다.

큐픽스는 고가 3D 스캐너 없이도 시중에 판매하는 360도 카메라, DSLR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만으로 3D 가상투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큐픽스, 손쉽고 빠른 3D 가상투어 콘텐츠 만들기에 '올인'

배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인수 혹은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기 위한 조건으로 핵심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큐픽스가 가진 핵심 기술은 뭘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문적인 고가 장비나 별도 소프트웨어 설치 없이도 시중에 파는 저가형 360도 카메라나 DSLR 카메라 등만 있어도 사용해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3D 가상투어 분야에서 큐픽스의 주요 경쟁사로는 메타포트(Matterport)라는 실리콘밸리 기업이 꼽힌다. 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최소 4천500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전용 3D 스캐너를 구매해야한다. 화질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장을 촬영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1분30초가 소요된다. 일반 360도카메라나 DSLR카메라를 사용할 때에 비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3D 가상투어 콘텐츠의 품질은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싸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큐픽스는 3D 스캐너를 쓰는 대신 자체 개발한 사진측량기술을 활용해 품질을 높이면서 시간과 비용문제를 해결했다. 큐픽스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된 사진들 사이 위치나 관계를 알고리즘으로 계산해 3D 공간에 무수히 많은 점들을 만들어 낸다. 그 뒤 이를 그물망 형태의 매쉬 구조로 만들고, 여기에 실제 촬영한 이미지 조각을 덧씌우는 방법으로 3D 가상투어가 생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사용자가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공간에 입구 높이 등을 실제로 측정한 수치(참조치수)를 입력해 놓으면 이에 맞춰 가상공간 내에서 특정 사물들에 대한 실측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각종 치수는 물론 사용자가 임의로 가상공간에 상자, 액자, 텍스트, 메모 등을 삽입하는 작업도 웹애플리케이션 상에서 손쉽게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메타포트는 현재 미국에서 부동산 전문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되는 중이다. 수많은 부동산 매물이 거래되는 이 나라에서는 온라인으로 매물을 보고 결제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전문 사진사들이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메타포트 서비스를 활용한다.

큐픽스는 최근 전략적 투자와 받아 협업하게 된 직방 내 부동산 매물에 대한 3D 가상투어 기술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데일리호텔 등에도 이런 서비스를 지원했다.

배 대표는 "이런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아직 메타포트와 미국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회사가 선점하지 못한 현지 건설시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매물, 호텔을 시작으로 건설현장의 시공과정을 기록하거나 추적하는 등 용도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한다는 생각이다.

■17년 창업 스토리 들어보니...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86학번인 배 대표는 같은 대학에서 CAD 석박사를 마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객원 연구원으로 3D 기술 한 우물만 파왔다.

그는 "당시 CAD가 막 서울대에도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하고 싶어 자연스레 3D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일본 리코 소프트웨어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대형 SW를 개발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쌓은 뒤 2000년에 아이너스기술이라는 3D 스캐너 솔루션 회사를 창업했다.

배 대표에 따르면 90년대에도 가상현실(VR)이라는 개념은 있었다. 다만 이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칩 가격이 비싸고, 3D 작업을 위해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시장을 노린 아이너스는 3D 스캐너용 솔루션인 래피드폼을 개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하드웨어 장비인 3D 스캐너를 만드는 회사들은 100곳에 달했다. 관련 논문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덕이 크다. 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100개의 경쟁사를 상대해야되는 셈이었다.

배 대표는 하드웨어는 있는데 이렇게 3D 스캐너로 입력 받은 데이터를 잘 처리해 줄 수 있는 SW회사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사 솔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경쟁사로 보였던 100곳이 파트너사가 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코니카미놀타 등 200여개 회사들과 대리점 계약을 맺고, 도요타, 혼다, GM, 포드, 록히드마틴, 나사 등 전 세계 2천여 고객사를 확보하게 됐다.

3D 스캐너용 솔루션을 만들던 회사는 아이너스와 함께 업계 1위인 미국 지오매직, 캐나다 폴리웍스가 있었다.

사업 초기 아이너스는 일본, 독일시장에서는 많은 고객사를 확보했으나 미국시장 진출은 녹록치 않았다. 가격도 경쟁사들보다 저렴하고, 기능도 경쟁사가 10개인 반면 우리는 100여개나 되는데 안 사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미국 현지에서 원인을 찾게 된다.

배 대표는 "기능의 개수가 가치라고 생각했으나 미국 엔지니어들은 내가 쓰는 10개 기능만 있으면 되지 나머지 90개 기능은 굳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더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더 어려워지고, 버튼 조작방법 등도 복잡해지더라는 것이다. 이런 현지 수요를 반영해 대폭 개선한 솔루션을 들고 나왔더니 미국에서도 통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회사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국 유명 3D 프린터 제조사인 3D시스템스라는 곳에 2012년 인수합병된다.

배 대표의 두번째 회사는 엔지니어를 위한 클라우드 기반 협업 솔루션을 만드는 비즈파워테크놀로지였다. 엔지니어들이 클라우드 상에서 각종 도면, 3D데이터 해석 작업 등을 웹브라우저만 있어도 협업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회사는 3D 프린터 탑재된 센서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 3D 프린터 유지보수에 필요한 작업을 자동으로 관리해 미리 필요한 물품들을 자동으로 발주하고, 에러코드를 수집해 가이드라인을 주는 등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구현하는데 주력했다.

이런 노력 끝에 두번째 회사도 3D시스템즈에 매각하게 된다.

■기술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

배 대표는 두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시켰지만 "(기술 스타트업들이) 엑시트를 목적으로 비즈니스를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자사만의 세계를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내서도 엑시트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현재 코스닥 상장의 경우 기업이 10년 이상을 바라봐야하고, 이로 인한 기업가치상승폭도 크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국내 대기업, 중견기업들이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인수합병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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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홈런을 치거나 1루타, 2루타로 단타를 치고 빠저나가야하는데 이런 생태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때문에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정도로 자사 핵심 기술의 수준을 올려놓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