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황창규 연임,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자수첩입력 :2017/01/26 15:24    수정: 2017/01/26 18:31

예년보다 늦긴 했지만 KT가 2017년도 조직개편, 임원인사를 단행한 지 열흘이 지나면서 조직이 안정을 찾는 모양새다.

이사장 3명, 부사장 2명, 전무 12명, 상무 21명, 상무보 45명 등 대규모 승진인사가 있었다. 하지만 들뜬 분위기도, 어수선한 분위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통상 승진 인사가 이뤄지면 보직 변경이나 전보가 뒤따랐지만 이번엔 자리가 바뀐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설된 ‘AI테크센터’, ‘글로벌사업개발단’, ‘유무선사업본부’ 등도 기존 조직을 없애거나 바꾼 것이 아니라 기존 조직 강화를 위해 덧붙인 형태로 개편한 것이어서 움직임이 크지 않다.

한 KT 임원은 “과거에는 사장이나 전무 승진을 하면 자회사로 내려 보내거나 보직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말 그대로 승진으로 끝났다”면서 “조용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계열사의 한 관계자도 “통상 KT 본사에서 임원인사가 있고 나면 누가 내려올 것이라는 얘기가 돌곤 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KT가 큰 폭의 인사를 했음에도 ‘안정 속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임 회장 시절 외부에서 영입된 소위 ‘올레KT’와 ‘원래KT’ 임직원 간 갈등이나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것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KT의 한 전직 임원은 “전임 회장 시절에는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짐을 싼 임원들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상무보가 포함되기도 했다”며 “이번 인사 이후 현직에 있는 이들로부터 불만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특이할 점은 지난 4일 구성된 KT CEO추천위원회가 황창규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후보추천 심사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승진인사가 이뤄지던 16일부터 CEO추천위가 심사에 착수했으니 똑같이 열흘이 지났다.

과거에는 CEO 임기가 끝나는 해에 이뤄지는 임원 인사 이후에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이른바 ‘물 먹은’ 임원들이 연임 반대를 위한 각종 소문들을 양산한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황창규 KT 회장

더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대기업인 KT 역시 인사 청탁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잠잠한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다.

일부 야당 인사들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부분을 언급하며 ‘연임 자진 철회’를 요구하는 논평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그만큼 황 회장이 취임하면서 내세운 ‘1등 KT, 싱글 KT'에 기여한 임직원들에게 수긍한 만한 인사를 했다고 구성원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KT가 ‘국민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표출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민영화 이후에도 KT CEO를 포함한 주요 인사는 소위 ‘높은 곳에서’ 점찍은 이들이 내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오히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향후 KT를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KT의 한 전직 임원은 “전임 이석채 CEO는 사장 체제를 회장으로 격상시키고 부회장 직급을 신설하고 넘쳐나는 게 사장이었다”며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에는 다시 사장 체제로 복원하고 새롭게 KT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황창규 회장은 취임 이후 급여를 일부 반납하고 부회장과 사장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차가 돼서 첫 사장을 선임했으며, 3년 차에 들어선 올해에서야 ‘1등 KT’에 기여한 인물들을 사장으로 등용했다.

그만큼 전임 회장의 전횡으로 인해 헝클어진 KT를 정상화 시키는데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는 이석채 회장 이후 지난 6년간의 경영실적과 대외신임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T는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5G 상용화, AI(인공지능)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진 동력이 CEO 연임 여부와 연계돼 정치적 이유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관련기사

강압에 못 이긴 최순실 인사 청탁이란 이유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정치 공학적 주장보다는, ‘장맛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현재의 KT에는 더욱 어울린다.

늘 정권의 휘둘려 ‘CEO 리스크’를 안고 온 KT에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