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실적인 AI, '챗봇' 어디까지 왔나

챗봇 2.0 시대, 자연어 이해 수준이 관건

인터넷입력 :2016/12/14 09:35    수정: 2016/12/15 18:19

손경호 기자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서비스는 모바일메신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집에서 서로 다른 방에 누워 있는 부모와 자녀들이 방문을 여는 대신 카카오톡으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됐다.

그만큼 손에 익은 이 서비스가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나면서 '챗봇(chatbot)'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일상에서 가장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때로는 음식을 배달하고,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는가 하면, 보험에서 대출상담까지 채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면서 24시간 고객대응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콜센터, 텔레마케터 등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는 점점 더 지능화돼 가는 챗봇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챗봇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AI의 미래를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굳이 미국 유명 퀴즈쇼 제퍼디를 우승한 IBM왓슨, 이세돌 9단과 대결을 이겼던 알파고가 아니더라도 모바일 쇼핑, 여행예약, 금융상담과 각종 고객대응서비스를 통해서다.

■챗봇에 AI 이식하기...API 빗장 푼 글로벌 IT기업들

글로벌 IT기업들은 서둘러 AI 기반 챗봇 시대를 대비한 준비를 마쳤다. 외부 개발사들이 손쉽게 자사 모바일메신저를 활용한 챗봇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API를 공개하는 방법으로 빗장을 푸는가 하면 이미 AI 연구에 집중해 왔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존 연구도 동시에 진행하는 중이다. 이들의 고민은 뜬구름이 아니라 어떻게 AI 기반 챗봇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을 열어갈 수 있는가다.

지난 4월 페이스북은 F8 컨퍼런스에서 '페이스북 메신저봇'을 공개했다. 이미 각종 예약, 온라인 쇼핑, 결제, 자동상담, 날씨상담 등 분야에 3만4천개 챗봇이 만들어졌다고 페북은 발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메신저 플랫폼을 활용해 손쉽게 챗봇을 통해 고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보내기/받기 API를 지원한다. 글로벌 여행사이트 카약, 월스트리트저널, 날씨정보를 알려주는 판초 등이 대표적인 활용사례다.

구글도 지난 9월 출시한 자사 모바일메신저 '알로'에 챗봇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했다. 채팅창에 '@google'를 입력하고 말을 걸면 채팅창을 닫고 새로운 앱을 열지 않아도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며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질문에 최적의 답변을 알려주는 '스마트답장(Smart Reply)' 기능도 지원한다. API.AI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자연어 이해와 처리를 위한 기술 확보에도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중국에서 '샤오아이즈', 일본에서는 '민나'라는 이름의 챗봇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MS가 제공하는 봇 프레임 워크를 통해 전자상거래, 항공사, 방송사 등을 포함해 약 20여곳 파트너사들이 챗봇을 개발 중이다.

중국의 성장속도도 무섭다.

국내 알리바바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타오바오, 위챗 등은 이미 챗봇을 활용해 고객 대응 서비스를 마련했다.

국내서는 네이버가 개발자 컨퍼런스 '데뷰(DEVIEW) 2016'에서 자사 AI 연구 플랫폼인 '아미카(AMICA.ai)'를 공개했다. 아미카는 챗봇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에서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구축할 수 있는 엔진과 개발툴을 제공한다.

네이버 자회사인 일본 라인주식회사도 자사 모바일메신저에 외부 개발자들이 챗봇을 개발해 서비스를 붙일 수 있도록 라인 비즈니스 센터에서 메시징 API를 최근에 내놨다.

카카오는 2013년부터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자동응답 API를 제공해왔다. 이 API는 GS샵, CJ오쇼핑의 톡 주문 시스템에 활용됐다.

LG전자는 홈챗이라는 플러스친구를 등록해 가전제품을 원격으로 조정하는 챗봇을 선보였으며 엠넷도 플러스친구를 통해 슈퍼스타K 참가신청을 받기도 했다. 다만 챗봇에 적용할 AI 기반 알고리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 관계자는 "내년 1분기 정식 오픈할 새로운 플러스친구에서는 구매, 예약 등 기능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챗봇 내에서 카카오페이를 통한 결제가 지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챗봇 2.0 시대, 자연어 이해가 관건

이전까지 챗봇은 단순한 질문을 분석해 문장으로 대답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AI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챗봇이 사람과 대화에서 등장하는 문장을 쪼개서 분석해 이해하고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도로까지 진화하는 중이다.

'자연어 이해(NLU)'라 불리는 기술 덕분이다.

국내 스타트업인 머니브레인은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북 메신저 등과 연동한 챗봇 서비스를 내놨다. 현재 NH농협은행이 서비스 중인 금융봇도 머니브레인의 기술이 기반이 됐다.

장세영 머니브레인 대표에 따르면 AI 기반 챗봇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기술은 사용자들이 채팅창에 입력하는 문장을 잘 분석하고 이해한 뒤 필요한 업무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사 서비스에 4단계 방법이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먼저 문장을 최소 단위의 형태소로 쪼개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오늘 서울 날씨를 알려줘'라는 문장이 있으면 오늘, 서울, 날씨, 알려, 줘 등으로 나눈다. 다음으로는 시멘틱 분석을 통해 문장에 포함된 형태소들과 같은 말이나 반대 말을 파악한다. 엔터티 분석에서는 문장 속 단어들을 파악해 실제 뜻을 파악한다. 최종적으로 자연어 이해 단계에서는 사용자가 요청한 사안을 확인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존 인공지능 비서라 불리는 애플 시리나 MS 코타나 등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장 대표는 "시리, 코타나 등만으로는 콜센터 상담서비스를 대응하는 대응하는 챗봇도 만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단순 검색이나 일정관리, 날씨 등 정보를 확인해 알려줄 수는 있지만 콜센터와 같이 보다 복잡한 고객 대응이 필요한 곳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그는 "AI 기반 챗봇은 앞으로 모든 영역을 다루는 대신 필요한 특정 영역에 쓰이도록 세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테면 머니브레인이 서비스 중인 배달봇 '얌얌'이 그렇다. 이 서비스는 채팅을 통해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에 먹은 거 배달해줘"를 채팅창에 입력하면 이에 대응해 대신 주문을 해준다. 지역, 나이, 성별, 이전 주문 내역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메뉴를 추천해주는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바일쇼핑, 티케팅, 여행, 금융 등 분야에서 챗봇을 둘러싼 영역별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자연어 이해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라도 고객들이 보다 유용한 챗봇 서비스를 쓰려면 전문분야가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AI 둘러싼 주도권 싸움, 챗봇 플랫폼이냐 서비스냐

챗봇은 글로벌 IT 기업들 간 AI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국내서도 네이버가 이러한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방향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모바일메신저라는 플랫폼을 쥔 상태로 외부 챗봇 개발사들을 API를 통해 끌어와서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게 첫번째라면 아예 AI 기술을 챗봇에 직접 녹여내려는 시도를 하면서 자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두번째 방식이다.

양 대표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전자에 속한다. F8 컨퍼런스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총괄인 데이비드 마커스는 "페이스북의 봇 엔진인 'wit.ai'를 활용해 외부 개발사들에게 보내기/받기 API를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연어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기술회사들이 이러한 API를 활용해 페이스북 메신저 봇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메시징 API를 공개한 라인이나 자동응답 API를 제공하고 있는 카카오톡도 여기에 속한다. 자사 모바일메신저를 챗봇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외부 개발사들이 늘어날수록 이들의 입지도 커지게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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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자체적으로 자연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기술을 확보하려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곳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다. 이들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체 개발한 자연어 이해/처리 알고리즘을 일반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서는 네이버가 내놓은 아미카가 이러한 역할을 맡는다. 네이버는 특히 한국어로 된 자연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데 자사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BI인텔리전스가 낸 통계에 따르면 올해 메시지앱 이용 시간은 이미 SNS앱 이용시간을 넘어섰다. 그만큼 AI 기반 챗봇 시장의 활동무대는 앞으로 더욱 넓어져 비즈니스 영역 곳곳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