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2차소송 승부, 왜 뒤집혔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법적 세계 vs 현실세계

데스크 칼럼입력 :2016/10/08 18:55    수정: 2016/10/10 08:0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왜 그랬을까요? 불과 8개월 만에 왜 판결을 뒤집은 것일까요?

외신들에 따르면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는 7일(현지 시각) 삼성이 밀어서 잠금해제를 비롯한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엔 완벽한 삼성 승소 판결을 한 적 있습니다. 이번 판결을 이해하려면 2월로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나온 소송은 삼성과 애플 간 2차 특허소송입니다. 2014년 5월 1심 판결이 나온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데이터 태핑(647)▲단어 자동완성(172)▲밀어서 잠금 해제(721) 등 애플 특허권 세 개입니다. 1심 재판부는 삼성의 특허 침해를 인정하면서 배상금 1억1천900만 달러를 부과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항소법원. 특허소송 항소심 전담 법원이다. (사진=위키피디아)

■ 2월 역전승했던 삼성, 또 다시 승부 뒤집힌 이유는

그런데 이게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핵심 쟁점이던 647 특허에 대해선 삼성과 애플 기술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면서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밀어서 잠금해제와 단어 자동완성 등 두 개 특허권은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반면 1심 법원이 애플에 부과했던 15만8천 달러 배상금은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삼성 입장에선 완벽한 역전승이었던 겁니다.

이 판결에 대해 애플은 곧바로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원합의체에 재심리 요구를 했습니다. 3인 재판부 판결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경우 항소법원 판사 전원이 다시 심리해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전원합의체 재심리라고 합니다. 이번 판결은 애플 요청에 따라 재심리한 결과입니다.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소송을 비교적 관심 있게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 이번 판결은 솔직히 좀 당혹스럽습니다. 제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온 때문입니다.

전 지난 2월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삼성 승리를 점친 적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애플의 데이터 태핑 특허권 개념도. (사진=미국 특허청)

첫째. 핵심 쟁점인 데이터 태핑 특허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 데이터 태핑을 다룬 모토로라와 애플 간의 또 다른 소송에선 애플에 불리한 판결이 나온 적 있습니다.

둘째. 밀어서 잠금해제와 단어자동완성 특허의 불안정한 지위. 두 특허권 모두 여기저기서 무효 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회사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데이터 태핑 특허입니다. 데이터 태핑이란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바로 연결 동작을 지원해주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웹 페이지를 누르면 바로 관련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면 곧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이지요. 이 특허 기술이 ‘퀵링크’로도 불리는 건 그 때문입니다.

1심 때 데이터 태핑 특허 침해 때문에 삼성이 부과받은 배상금이 9천869만625달러였습니다. 전체 배상금의 80%를 웃도는 금액입니다.

(☞ 삼성, 애플 2차 소송 역전비결 '퀵링크')

■ 철학적 질문 제기했던 애플의 '퀵링크' 특허

따라서 두 회사 특허 소송은 사실상 데이터태핑 특허 침해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삼성과 애플의 기술은 작동 방식이 다르다고 판단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애플 측은 삼성 폰에 있는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이 브라우저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과 별도로 구동된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성적인 배심원들이라면 삼성 폰들에 감지한 데이터를 연결하는 행위를 해주는 분석 서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면서 647 특허를 침해했다는 1심 판결을 기각했습니다.

별도 분석 서버가 있는 애플 기술과 달리 삼성은 단말기에서 별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토대로 항소심 재판부는 ‘서로 다른 기술’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항소심이 열리는 연방항소법원. (사진=연방항소법원)

개인적으론 이 판결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마트폰 같은 영역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특허권을 인정할 경우엔 후속 혁신을 말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애플이 모토로라와 벌인 또 다른 특허 소송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나온 적 있습니다.

그런데 항소법원 전원 합의체는 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제가 당혹스러웠다는 건 그 때문입니다.

항소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구해 읽어보진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결 내용은 모릅니다. 다만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들은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이 “특허 기술 자체보다는 절차상의 문제에 주목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블룸버그 보도를 보니 전원합의체는 “(3인 재판부가) 항소심에서 제기된 적 없거나 1심 재판 기록 외에 있는 정보에 의존했다”면서 2심 판결을 뒤집었다고 합니다. 전원합의체는 또 “배심원 평결은 기록에 있는 실제 증거를 토대로 이뤄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2차 특허 소송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인 공방입니다. 데이터태핑 특허를 둘러싼 공방은 ‘특허란 과연 무엇인가’란 철학적 고민을 건드렸습니다.

(☞ 특허란?…삼성-애플이 던진 심각한 질문)

■ "항소심 때 제기된 적 없는 정보 의존해 판결"

그런데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결 역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보입니다. 이를 위해선 미국 사법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1심은 사실심입니다. 법정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해서 공방을 벌입니다. 판사가 최종 판결을 하지만, 사실상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 평결이 결정적입니다. 판사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배심원 평결을 그대로 준용합니다.

그런데 항소심부터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배심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선 추가 증거를 갖고 다투지 않습니다. 1심 법원이 주어진 증거로 법률을 제대로 적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항소심부터는 법률심이라고 합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대두됩니다.

제가 보기엔 삼성의 손을 들어준 지난 2월 항소심 판결은 큰 문제가 없어보였습니다. 데이터 태핑 특허는 위에서 설명한 공방 때문에 삼성이 이길 가능성이 많다고 봤습니다. 또 밀어서 잠금해제는 여기 저기서 무효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상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은 특허입니다. 단어자동완성은 애플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기술입니다.

미국 내 11개 연방항소법원의 관할 구역. 지역별로 나눠진 다른 항소법원과 달리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소송을 전담한다. (사진=위키피디아)

쟁점 특허 세 개 중 확실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원합의체가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월 판결을 한 항소법원 3인 재판부가 ‘항소심 때 제기된 적 없거나, 1심 재판 기록에 없는 정보에 의존해서 판결했다’는 겁니다.

그 부분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될 순 있습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제기된 증거나 주장만을 근거로 판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귀중품을 하나 훔쳐갔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도난당한 사람이 친구를 주거 침입죄로 고소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당연히 무죄입니다. 그 친구는 정당한 방법으로 친구 집에 갔기 때문입니다. 주거 침입을 한 적은 없는 거죠. 물건을 훔친 죄를 지은 건 분명하지만, 판사가 독단적으로 절도죄로 유죄 판결을 할 순 없습니다.

■ 절차상의 문제 제기한 전원합의체 판결, 어떻게 봐야 하나

다시 삼성과 애플간 특허 소송으로 돌아와봅시다. 결국 전원합의체는 3인 재판부가 법정에서 거론되지 않은 다른 근거로 판결을 내렸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거론되지 않았던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2월 판결에 참여했던 티모시 다이크 판사는 그런 논거를 토대로 전원합의체 판결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 전원합의체가 별도 법적 논쟁 없이 판결을 뒤집은 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판결의 근본 취지가 뒤바뀔 중대 사안인데 법적 논쟁을 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둘째. 절차상 하자를 감안하더라도 판결이 뒤집히진 않을 거란 겁니다. 다이트 판사는 소수 의견에서 “전원합의체가 반대하는 증거 자료를 기꺼이 제외할 의향이 있다”면서 “그렇게 하더라도 원 판결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이번 판결을 한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소송을 전담하는 항소법원입니다. 지역에 따라 관할 구역이 정해져 있는 다른 순회항소법원과 달리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소송 전담입니다. 절차 문제를 거론한 이번 판결이 앞으로 있는 특허소송 항소심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래저래 삼성과 애플의 2차 특허소송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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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는 다음 주부터 대법원에서 디자인 특허를 다룰 1차 소송 상고심 공판을 할 예정입니다. 이 상황에서 느닷없이 2차 특허소송 전원합의체가 항소심 판결을 뒤집어버리면서 사안이 굉장히 복잡하게 흘러가게 됐습니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전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현실세계와 법률속 세계는 상당히 다르다구요. 현실 세계와 법률 속 세계의 괴리 때문에 패소 판결문을 받아든 삼성으로선 상당히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