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 극사실적CG 영상…사람만은 예외"

시각효과 전문회사 무빙픽처스컴퍼니 임원 인터뷰

컴퓨팅입력 :2016/08/29 08:00

올 상반기 개봉한 '정글북'은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지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디즈니가 만든 이 영화는 원작의 등장 캐릭터와 작중 배경인 인도 중부의 밀림을 사실적인 컴퓨터그래픽스(CG)로 스크린에 담아냈다.

100여분에 달하는 정글북 러닝타임 내내 화면엔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정글 그리고 그 속을 종횡무진하는 수십종의 동물 캐릭터가 한가득 등장하지만 그건 전부 디지털로 구현됐다. 즉 엄밀히 따지면 '실사'가 아니다.

■풀CG 자랑하는 '영화' 정글북

존 파브로 감독을 비롯해 이 영화 제작진들은 온갖 동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인도의 정글을 배경으로 삼는 이 창작물을 시각화하기 위해, 모든 촬영을 '실외 촬영 없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실내 촬영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을 잘못 쓴 게 아니다.) 이들은 영화 본 제작 단계에 정말로 모든 걸 '실내에서' 해결했다. 물이 흐르고 불에 타는 밀림 공간을 디자인하고 70여종의 동물 배우도 만들어냈다.

2016년 6월 한국에 개봉했던 디즈니 영화 '정글북' 한 장면. 주인공 소년 모글리를 제외한 모든 것,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모든 동물과 습기를 머금은 공기 사이로 빛이 내려쪼이는 날씨 전부 디지털 기법으로 연출된 CG다.

예외가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늑대소년 '모글리' 얘기다. 2003년 출생 인도계 미국인 소년 배우 닐 세티(Neel Sethi)가 모글리를 연기했다. 그는 CG로 채워진 디즈니 정글북에서 홀로 '살아 있는' 피사체였다. 정글과 상대 배역 동물이 실재하지 않는 촬영장 안에서 상상만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내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모글리 배역도 인간 배우 대신 CG 캐릭터에 맡길 수는 없었을까?

마침 답을 들려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최근 한국에 들렀다. 디즈니영화 정글북 제작에 참여한 영국 시각효과 전문회사 '무빙픽처스컴퍼니(MPC)'의 기술부문 임원 2명이 얼마 전 방한했다. MPC에서 모델링, 텍스처, 룩데브 등 '에셋(Assets)' 부문을 담당하는 CG 및 애니메이션 업계 경력 10년의 프라샨트 나이르 대표와, '로토스코프/프렙' 부문을 담당하는 비주얼이펙트(VFX) 경력 14년의 파얄 다니 대표다.

MPC는 영국 런던 소호에 본사를 둔 업력 25년의 시각효과 전문회사로 현재 유럽서 손꼽히는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제작사다. 정글북 외에도 해리포터시리즈, 엑스맨, 프로메테우스, 라이프오브파이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영화 제작에 여러 번 참여했다. 캐나다 밴쿠버와 몬트리올,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인도 방갈로, 중국 상하이 등에 지사를 뒀다.

■ 시각효과 전문회사 MPC

최근 지디넷코리아는 MPC 임원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토데스크의 크리스 브래드쇼 최고마케팅책임자 겸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M&E) 부문 수석부사장이 MPC 임원들과 함께 배석했다. MPC와 오토데스크 임원들을 통해 정글북 제작 과정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과, 주인공 모글리가 유일하게 살아 있는 배우를 필요로 했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MPC 임원들에 따르면 디즈니는 정글북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를 뛰어넘는' 영상을 선보이길 원했고, 이를 위해 본 제작 준비 단계에서 참조할 수 있는 현실의 공간, 사물, 생명체의 디지털 표본을 만드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투입했다. 실제보다 더 사실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설명을 통해, 정교한 표현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만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 일상에서 낯선 사물이나 동물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서로 보고 인식하고 교류하는 '인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인간 캐릭터는 아무리 실사처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라도 사람들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람 역할의 CG 캐릭터가 화면에 노출되는 영화는 아무래도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왼쪽부터) 프라샨트 나이르 MPC 에셋부문 대표, 파얄 다니 MPC 로토스코프/프렙부문 대표, 크리스 브래드쇼 오토데스크 CMO 겸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문 수석부사장.

MPC 및 오토데스크 임원 3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아래 1문 1답으로 재구성했다.

■"극사실적 표현에 집중했다"

- 디즈니 정글북 제작 과정에서 MPC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 과정은 어땠는지 들려 달라

나이르 : MPC는 디지털 에셋을 준비하는 단계,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본 촬영 전 영상에 담아야 할 요소들을 준비하는 단계) 과정에 관여했다. 사진 촬영 팀이 정글로 가서, (디지털로 표현할) 대상의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단순한 나무 한 그루도 360도 전방위에서 바라본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디지털 에셋을 확보했다.

리깅과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작업에 '마야', 촬영 사진을 디지털로 옮기기 위해 '리캡' 등을 썼고 그 뒤 우리 소속 아티스트들이 정밀한 보정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동물 애니메이션을 구현할 땐 과장되지 않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웃음이라든지 그런 표정이,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과도하지 않게 세밀한 부분을 신경썼다. 그외에 동작에서 꼬리 부분을 비롯한 신체 움직임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다니 : 본 제작 단계에 활용하기 위한 시연용 영상도 만들었다. 로토스코프(rotoscope, 실사를 1대1 비율로 대응하는 애니메이션 화면으로 표현하는 연출 기법)와, 블루스크린을 두고 배우가 배경과 상황을 상상해 연기하는 장면을 찍었다. 주연 배우 닐 세티가 그 상대역 동물을 대신하는 인형의 조종수와 눈을 맞추면서 연기하는 모습 같은 것.

가급적 사실적으로 표현되게 촬영하는 데 애썼다.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부분이 제한되면 제한되는 채로. 불필요하게 자세한 표현은 가짜같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화면 속의 안개, 이끼의 질감이나 모글리가 지나간 길에 떨어진 잎사귀의 움직임도 사실적으로 표현되도록 했다.

어려웠던 점을 꼽는다면, 만화적인 게 아니라 '극사실적'으로 보여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간 많은 시각효과 작업을 해 왔지만, 이번엔 특히 만화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진'같은 느낌, 사실적인 것에 주안점을 둔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CG로 된 사람, 알아차리기 쉽다"

디즈니 영화 '정글북' 한 장면. 주연 배우 닐 세티(왼쪽)가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 모글리는 전체 영화를 통틀어 유일하게 최종 상영 작품에서 실사 촬영한 분량으로 등장한 피사체다.

- 최종 제작된 영화에선 등장 동물이나 배경 모두 디지털로 표현됐다면, 주인공도 꼭 사람 배우를 쓸 필요는 없었지 않나

다니 : 사실 모글리가 영화 내내 실사로 표현된 건 아니다. 스턴트를 위한 대역, 그림자 처리, 그리고 일부 동물과 상호작용하는 장면에 디지털 이미지가 활용되긴 했다. 다만 영화가 전달해야 하는 감성적인(감정이입 또는 몰입하는) 부분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글리의 배역을 표현하려면 사람을 필요로 한 것이라 생각한다.

브래드쇼 : 정글북에 한한 얘긴 아니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같은 사람의 이미지에 대해) 디지털화한 결과물인지 아닌지를 동물이나 다른 사물보다 훨씬 더 잘 가려낸다. CG로 만든 동물 캐릭터는 사실감을 강조해 그런 느낌을 들도록 할 수 있지만, 같은 식으로 모글리를 만들었다면 사람들은 그게 CG라는 점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 전체에 걸쳐 CG로 만든 사람을 넣어 표현하는 일에는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다니 대표가 언급한) '이입'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예로 들면, 작중 호랑이가 CG로 등장한다. 관객들은 (호랑이가 아니라) 실제 인간인 주인공 남자 배우에게, 그 소년에게 이입을 한다. 정글북에서도 그처럼 사람 쪽에 이입돼 감동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사-CG캐릭터 결합 영화, 계속 늘 것"

- 많은 애니메이션에선 인간으로 표현되지만 실제 인간은 아닌 인물들밖에 나오지 않는데도 관객들이 '이입'을 하지 않나

브래드쇼 : 기존 다른 영화, 톰 행크스가 목소리 출연한 '폴라익스프레스'같은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도 풀CG로 제작된 건데… 이런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왜 사람들(등장인물)이 다 죽어 있냐, 차가워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런 것(사람으로 표현된 걸 알지만 실제가 아니란 느낌)을 분간할 수 있다.

실사와 CG를 혼합한 또 다른 영화 '아바타'를 생각해 보자. 실제 인간 배우 시고니 위버가 나오고, 동시에 몸에 비늘이 덮여 있고 꼬리가 달려 있으며 키가 9피트에 달하는 외계 종족 '나비'도 나온다. 둘이 화면에 섞여 나와도 괜찮았던 이유가 있다. 나비족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비족은 우리에게 '그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는 관념으로 굳어진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CG로 만들어져도 괜찮아 보였던 거다.

실사와 CG캐릭터가 결합된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다. 유명 배우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영화 '그래비티'도 그랬다. 영화의 전체 장면 중 99%가 CG였다. 1%는 두 배우 얼굴이다. 배우의 (나머지 신체를 제외한) 얼굴만 '실사'였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이미 그 두 배우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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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르 : 사람은 우리가 매일 만나고 접하는 존재다. 용모의 세밀한 요소들을 낱낱이 다 포착해 CG로 재구성하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이전부터 어떤 표정을 짓는 경우에도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는지 하는 부분들을 일일이 구현하는 시도가 있긴 한데. 미묘한 느낌까지 다 잡아내진 못하고 있다.

다니 : 그런 노력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결과물을 본 사람들에겐 결국 다 구별이 되고 있다. 영화 (분노의 질주) 패스트&퓨리어스 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 폴 워커의 사례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편집자 주: 폴 워커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촬영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제작진은 나머지 분량을 대역 배우 및 CG로 마무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