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겨냥한 소송, 美-EU 디지털 패권전쟁으로

아일랜드서 시작…CJEU 판결로 비즈니스 관행 흔들어

홈&모바일입력 :2015/10/07 14:56    수정: 2015/10/07 15:0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페이스북을 겨냥했던 소송이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비즈니스 관행까지 뒤흔들고 있다. 양측간 고객 데이터 공유 관행의 근거가 된 ‘안전 피난처(Safe Harbor)’ 협정 무효 판결로 이어진 때문이다.

유럽 최고 재판부인 유럽사법재판(CJEU)는 6일(현지 시각) “안전 피난처 협정을 허용할 경우 미국 정부가 EU의 온라인 정보에 수시로 접속할 수 있게 된다”면서 적절한 규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지난 2000년 체결된 ‘안전 피난처’ 협정은 구글과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인터넷 기업들에겐 유럽 영업의 존립 기반이나 다름 없었다. 그 규정에 힘입어 유럽 고객 정보를 활용한 영업을 해 왔다.

이번 판결로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페이스북이다. 소송의 출발 자체가 페이스북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페이스북 더블린)

■ 페이스북 "미국 정부에 백도어 제공한 적 없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4년 전 페이스북 유럽 본부가 있는 아일랜드에서 처음 시작됐다. 오스트리아의 법대생 막스 슈렘스가 지난 2011년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방의 불꽃이 피어 올랐다.

슈렘스는 영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 수집 관행이 지나치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소송 도중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사찰 활동을 폭로하면서 미국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경계 움직임이 한층 강해졌다.

슈렘스는 소송 과정에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유럽 지역에서 수집한 뒤 미국 정부 기관들에 ‘백도어 경로’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소송은 유럽 최고 재판부인 ECJ로 이관되면서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결국 이날 CJEU가 슈렘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4년 여에 걸친 정보 전쟁은 유럽 이용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유럽 최고 재판소인 유럽사법재판소. (사진=씨넷)

이번 소송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페이스북이다. 애초 시발점 자체가 자신들의 정보 수집 때문에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판결 직후 페이스북은 유럽에서 수집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제공한 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은 절대로 ‘백도어’를 제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씨넷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또 ECJ 판결 직후 “EU와 미국 정부가 합법적인 데이터 이관을 위해 신뢰할만한 방법을 계속 제공해야만 한다”면서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슈들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구글-애플 등도 진퇴양난…실마리 찾을 수 있을까

물론 타격을 받은 것은 페이스북 뿐만은 아니다. 구글, 애플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 다른 인터넷 기업들도 똑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이번 판결로 유럽에서 영업하는 미국 기업들은 개별 국가와 또 다시 데이터 공유의 합법성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 기업들 역시 똑 같은 부담을 안게 된다.

이와 관련 로펌인 모리슨 포어스터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CJEU의 이번 판결로 유럽에서 영업하는 기업들은 해결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됐다는 것. 이를테면 미국 기업들이 유럽 쪽 개인정보를 공유할 경우 EU의 데이터 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며, 공유하지 않을 경우엔 미국 정부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글 캠퍼스. (사진=씨넷)

미국과 EU는 ‘안전 피난처’ 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2년 여 동안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양측이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인 때문이다.

관련기사

EU 쪽에선 미국으로 건너간 개인 정보가 잘못 사용될 경우 유럽인들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쪽이 이 문제에 탐탁찮은 반응을 보이면서 난항을 거듭했다.

씨넷에 따르면 미국 쪽 협상단은 수용 의지를 보였지만 정치인들이 유럽인들에게 소송권한을 주는 문제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