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모토로라의 흥망성쇠

한때 휴대폰 거함, 이리듐 패착 내리막길

홈&모바일입력 :2015/07/24 09:33    수정: 2015/07/24 17:05

모토로라는 1990년대에 50% 이상의 휴대폰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의 최첨단 기업 중 하나였다.

과거 라디오로 시작해 반도체, TV, 휴대폰 등 업종을 바꾸고도 항상 기술의 최첨단을 달려온 모토로라. 하지만 모토로라 솔루션과 모토로라 모빌리티로 분할된 휴대 전화 부문이 구글에 인수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온 모토로라는 최근 크게 빛을 잃은 모습이다.

지난 23일 IT 전문지 기가진은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던 기업인 모토로라가 무엇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는지를 만화로 정리한 시카고비즈니스닷컴 게시물을 소개했다. 만화는 한 때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이었던 모토로라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굿바이 모토 만화 바로보기)

만화는 모토로라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 캐릭터가 위대한 업적을 쌓은 모토로라가 지난 10년간 점점 작아져 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시작된다. 이에 남자 직원은 과거 모토로라가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거대한 기술 기업이었던 점을 강조하며 몇 번이나 혁신을 거듭해온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반면 대화 말미에는 미래를 상상하는 빛을 잃고 있다는 아쉬움도 토로한다.

모토로라의 역사는 1928년 폴과 조셉의 갈빈 형제가 휴대용 라디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시작됐다. 이 형제는 기업가이자 발명가이며, 또한 시장을 개척하는 재치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 브랜드로 자동차 라디오를 개발했으며, 1930년에는 경찰용 무전기 판매도 했다.

모토로라에 온 제2의 물결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군수품 시장이다. 당시 전쟁에서는 휴대 가능한 사이즈로 이동하면서 대화가 가능한 트랜시버(데이터의 송수신이 가능한 단말 장치)가 필수품이었다. 이 시장에서 모토로라는 단번에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메이저로 발돋움 했다.

1944년에는 폴의 아들의 밥 갈빈도 합류했다. 1950년대에 텔레비전이 붐이 되면서 모토로라는 빠르게 거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때 반도체 및 음성 기록의 선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1956년에는 아버지 폴에서 아들 밥으로 자연스러운 세습이 이뤄졌다. 1969년에 달에 착륙 한 닐 암스트롱의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한 걸음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는 모토로라 라디오를 통해 지구에 도착됐다. 모토로라는 이 역사적인 라디오 사업을 나중에 매각했다.

이후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에 진출, 10년 후 1994년에는 무려 60%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4년 만에 휴대 전화의 점유율은 35 %까지 급락했고 이 때부터 회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모토로라의 전성기는 1997년으로, 당시 종업원 수는 15만 명이었다. 다양한 업종의 참여를 내세운 당시 3대째 크리스 갈빈 대표였지만, 그에게는 비전과 운이 부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다. 당시 애플은 모토로라에서 반도체를 구매하는 비즈니스 파트너였지만, 이 후 오랜 시간에 걸쳐 라이벌 관계가 됐다.

모토로라의 실수는 휴대폰의 디지털화 타이밍을 놓친 것. 1998년 모토로라는 휴대폰 시장 점유율 선두를 노키아에게 양보하지만 당시는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도 부흥의 조짐이 보였다. 모토로라는 통신 위성을 사용해 전 세계적으로 통화를 할 수 꿈의 휴대폰 프로젝트 ‘이리듐’에 심취했다. 하지만 이리듐은 큰 실패로 끝났고, 모토로라에 값비싼 상처를 남겼다.

이리듐의 실패와 함께 즉시 닷컴 버블이 붕괴되고, 9.11 테러 사건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모토로라의 경영은 더욱 악화됐다. 모토로라는 휴대 전화와 TV의 셋톱박스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경영을 살리고자 실적이 괜찮았던 방위 산업을 매각했다.

2003년 경영 재건의 한가운데에 선 크리스 갈빈 대표는 “이사회와 나는 같은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이 물러나야할 때”라는 말을 남기고 사임했다. 3대째 이어진 창업가에 의한 경영이 이 때 끝이 났다.

뒤이어 취임한 에드워드 잰더 신임 대표가 얇은 휴대폰 ‘레이저(Razr)’를 2004년 발매 하자 마자 엄청난 인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대 기록은 모토로라의 마지막 히트가 됐다.

또한 3년간 판매 대수 1위 자리를 유지한 레이저를 넘버원 자리에서 끌어 내린 것은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의 아이폰3G다. 이로써 레이저는 기능폰 시대의 종언을 장식한 역사적인 모델이 됐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주가도 급락했다. 애플과의 관계가 냉각되고 있던 모토로라의 주식을 11%나 보유하고 있던 거물 투자자 칼 아이 칸이 움직였고, 애플과 본격적인 스마트폰 전쟁을 시작한 구글에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이 매각 되는 결과를 낳았다.

휴대폰 부문을 구글에 매각한 후 모토로라는 퀄컴에서 산 제이 자 씨를 대표로 초빙했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부진의 늪을 탈출하진 못했다.

모토로라는 버라이즌과 공동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판매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앞서 나간 애플과 삼성에 전혀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또한 차세대 고속 회선 시장에서의 실수도 겹쳐 스마트폰 사업에서 완전히 소외됐다.

구글은 인수한 모토로라의 휴대폰 부문(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재건을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결국 특허를 제외하고 방출하는 것을 결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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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휴대 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35%를 자랑하던 모토로라는 이 무렵 2% 미만으로 몰락했다. 결국 중국 제조사인 '레노보' 산하에 편입됐다.

밥 갤빈 모토로라 대표는 “모토로라는 연간 2천억 달러의 매출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현재 2천억 달러의 매출을 자랑하는 것은 애플이다. 반면 모토로라의 매출은 60억 달러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