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개발자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전문가 칼럼입력 :2015/04/20 08:01

임백준
임백준

여성 개발자 모임터의 전수현 운영자를 모시고 팟캐스트 방송을 했다. 성비가 크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여성 개발자로서 경험했던 차별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에서 다루었으니 생략하겠지만,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억울한 사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자를 채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여자 개발자는 야근을 하지 않는다. 여자 개발자는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 여자 개발자는 힘들면 회사를 떠난다. 전수현 운영자는 여자 개발자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선입견이 강해서 개별적인 여성이 편견을 뚫기가 쉽지 않다고 대답해 주었다.

간추려보면 야근과 주말출근, 그리고 회사조직에 대한 충성이라는 측면에서 남자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개발자의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는 것은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데 이유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에는 야근과 주말출근,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성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라도 가사노동을 똑같이 분담하지 않고 여성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은 확실히 야근과 주말출근 등에서 남자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어째서 개발자를 채용할 때 이런 것들을 판단의 척도로 삼는 것일까.

개발자의 코딩실력과 열정과 문화적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야근과 주말출근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야 옳다. 해주면 고맙고, 못해도 상관없는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출퇴근 문화를 상식적인 수준에서 구현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회사는 야근과 주말출근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로봇인 안드로이드는 공감능력이 없는 존재다. 동물이 멸종된 세계에서 사는 인간들은 가상의 전기 양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잠을 자면서 실제 양을 꿈꾼다. 그럼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는 꿈을 꿀 때 전기 양을 보는 것일까. 확실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로 보이는 모양이다. 일주일에 168시간을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잠과 휴식에 몹시 민감한 편이다. 정상적인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난 날의 생산성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날의 생산성을 비교해보면, 거의 100배의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과장이 아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머릿속에 펼쳐지는 코드의 추상수준이 끈 풀린 풍선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깔끔하고 명쾌하게 연결되는 코드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잠을 망친 다음날에는 코드를 짤 수 없다. 멍하게 컴퓨터 앞에 앉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하면서 책이나 블로그를 읽는다. 생산성이 0으로 수렴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야근과 주말출근을 스택오버플로우(StackOverflowError)나 아웃오브메모리에러(OutOfMemoryError)보다 혐오한다. 개인적인 시간을 빼앗기는 것 자체가 싫지만, 무엇보다도 생산성이 바닥을 기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팀 내부의 직원이 저녁에 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에 일을 해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가 100%의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 주중 40시간의 질에 악영향을 미칠까 싶어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말릴 수는 없지만 “어째서” 업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회사 일을 하는지 물으면서 눈치를 준다. 순도 높은 40시간의 노동이 공갈빵 같은 60시간, 80시간의 노동보다 생산성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 집중하는 시간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코딩하는 것을 선호할 수는 있지만, 하루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일정 시간을 넘길 수 없다는 점은 모든 사람이 똑같다. 컴퓨터가 리부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인간의 두뇌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리셋 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여성 개발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야근과 주말출근과 회사조직에 대한 충성이라는 ‘비정상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여성개발자들이 남성개발자들에 비해서 어떤 식으로 차별을 받을지 궁금하다. 차별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얼마든지 다른 이유를 만들어 내겠지만 전체적인 차별의 정도는 약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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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녀차별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착각하는 업계의 풍토 일반이다. 여성 개발자는 차별받는 요소를 추가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억울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 전체는 남녀를 떠나서 모두 안드로이드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한 주에 168시간을 일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에 비하면 사력을 다해서 80시간을 일하는 당신조차, 여전히 부족하다.

블레이드러너에서 생명연장을 바라는 안드로이드 일당의 대장인 로이 배티는 자신들을 만든 타이렐 박사를 찾아간다. 그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생략하지만,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자신의 매니저, PM, CEO, 혹은 프로젝트 물주에게 이렇게 말해야 옳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전기 양의 꿈을 꾸지 않는다. 의사결정권을 손에 쥔 타이렐 박사들도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순정한 40시간은 공갈빵 80시간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백준 IT컬럼니스트

한빛미디어에서 『폴리글랏 프로그래밍』(2014),『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삼성SDS, 루슨트 테크놀로지스, 도이치은행, 바클리스, 모건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맨해튼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분산처리,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관계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