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지운 팀 쿡의 미래, 애플페이·워치에 달렸다

작년 4분기 사상 최대 실적 기록, '팀 쿡 체제' 구축 성공

일반입력 :2015/01/28 09:17

이재운 기자

사후 평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지만 고(故)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인물 반열에 속한다. 적어도 IT·전자 분야에서 그의 족적은 엄청난 것이었고, 사회 전체에 준 파급력도 어마어마했다.

애플은 잡스의 사후 그의 그림자를 지워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팀 쿡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감’이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의 후임 자리는 누구에게나 ‘독이 든 성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은 1986년부터 2013년까지 27년 동안 전설적인 지도자 알렉스 퍼거슨의 차지였다. 그의 은퇴 이후 자리를 이어 받은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전임 지도자의 그늘이 워낙 큰 탓이었다.

이와 달리 쿡 CEO는 잡스 시절 성과를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27일(현지시간) 애플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8% 증가한 180억달러(약 19조4천억원)에 달했다. 매출도 1년 전에 비해 30% 증가한 746억달러(약 80조4천억원)를 기록해 시장전망치를 상회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공은 4.7인치 아이폰6와 5.5인치 아이폰6 플러스의 판매 호조가 뒷받침된 결과로 풀이된다. 4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무려 7천450만대로 전년동기 대비 46% 증가했고, 증권가 전망치였던 6천만대 중반~7천만대 초반대를 뛰어넘었다.

‘팀 쿡 체제’의 성과는 창업자 잡스의 그림자를 지워나가는 데에서 시작됐다. 쿡 CEO는 잡스의 뜻을 거스르며 화면 크기를 늘렸고, 잡스와 달리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를 방문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물론 쿡 CEO가 모든 것을 바꾸려 든 것은 아니지만, 조직 내에 상당한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취임 이후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였던 스콧 포스톨을 내보내고 현재 아이폰과 사용자환경(UI) 디자인을 총괄한 것으로 유명한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 ‘아이브 스타일’ 디자인으로 UI를 개편한 새로운 iOS로 사용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혹자는 공급사슬망관리(SCM) 등 효율화의 달인으로 불리는 팀 쿡이 이익률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제대로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읽는 능력이 있었고, 이에 따라 화면 크기를 늘린 아이폰과 함께 근거리무선통신(NFC)을 도입하면서 간편결제서비스인 ‘애플페이’도 선보였다. 이 덕분에 애플의 주가는 지난해 70달러에서 110달러까지 가파르게 상승했고, 쿡 CEO는 지난해 100억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수령하게 됐다.

쿡 CEO는, 잡스가 펩시의 마케팅 책임자를 데려오며 ‘설탕물’ 발언을 했듯이, 버버리의 매장 디자인 책임자인 안젤라 아렌츠를 데려와 애플스토어 운영을 맡겼다. 그리고 잡스와 달리 그와 다투지 않고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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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팀 쿡 체제의 미래는 애플워치에 달렸다. 2015년 초라던 당초 예상보다는 다소 미뤄졌지만, 오는 4월이면 드디어 애플워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특히 잡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이 제품의 성패 여부야 말로 쿡 CEO의 미래 청사진에 대한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큰 폭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사파이어 글래스를 적용할 것으로 보이는 ‘애플식 손목시계’의 성과에 팀 쿡 체제의 명운이 달려 있는 셈이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팀 쿡은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을 배우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며 효율화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TV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아이디어가 풍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