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불여우' 파이어폭스의 처절한 10년

2004년 11월9일 탄생한 파이어폭스 브라우저, 10돌맞아

데스크 칼럼입력 :2014/11/11 13:38    수정: 2014/11/21 15:2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4년 11월 9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배하던 브라우저 시장에 한 이단아가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바로 파이어폭스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겐 생소했던 모질라란 비영리재단이 만든 브라우저였습니다.

그 무렵 브라우저 세상은 'MS천하'였습니다. 윈도란 당대 최고 플랫폼의 힘을 바탕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유럽에선 반독점 소송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기였던 만큼 파이어폭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정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작지만 강했던 파이어폭스

하지만 파이어폭스 열풍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당시 파이어폭스는 '작지만 강한 브라우저'를 표방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브라우저. 그리고 보안에도 강한 브라우저. 그 무렵 시장 지배자였던 익스플로러가 느려 터진 실행 속도와 각종 보안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의 포인트를 잘 잡았던 거지요.

파이어폭스는 한 때 시장 점유율 20% 선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익스플로러 아성을 조금씩 위협하면서 의미 있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그 무렵 전 후배기자와 함께 파이어폭스 개발자였던 10대 천재 '블레이크 로스'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탠퍼드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블레이크 로스와 저희 질문지에 성실하게 답변해줬습니다. (이후 블레이크 로스는 페이스북에도 잠시 몸을 담았습니다. 지금은 모질라 쪽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당시 블레이크 로스 답변 중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아랫 부분입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오래된 신화 중 하나는, (이것은 내가 지속적으로 없애고 싶은 것이기도 한데) 바로 이론상으로 경쟁 애플리케이션을 이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소비자 시장에서 성공하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경쟁하는 소프트웨어보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더 잘 맞추는 데 힘써야 한다. 그게 관건이다.

기술 뿐 아니라 사업적인 감각도 갖고 있는 인물 아닌가요? 제가 그 무렵 파이어폭스에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썼던 것은 '시장 지배자'인 익스플로러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쓰기 쉽고 안전한 브라우저를 만들겠다는 블레이크 로스의 소박한 꿈에 깊은 감명을 받은 때문이었습니다.

■ 10년 전엔 MS, 이젠 애플-구글과 경쟁

씨넷은 10일(현지 시각) 안드레아스 겔 모질라 최고기술책임자(CTO) 인터뷰와 함께 파이어폭스 탄생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 논조가 흥미롭습니다. 10년 전 MS와 싸웠던 파이어폭스는 이번엔 애플, 구글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파이어폭스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수치를 한번 볼까요? 넷 애플리케이션즈 자료에 따르면 익스플로러가 PC 브라우저 시장의 5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때 80%를 웃돌던 때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구글 크롬이 21%를 기록하고 있네요. 반면 파이어폭스는 14%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용자 수 대신 페이지 뷰를 기준으로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스탯카운터 자료가 바로 그 기준으로 작성된 겁니다. 여기선 크롬이 42%, 익스플로러가 13%, 그리고 파이어폭스가 12%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기록의 차이는 뭘까요? 그렇죠. 바로 모바일 이용자 입니다. 스탯카운터는 모바일 이용자까지 포함한 수치입니다. '탄생 10돌'을 맞는 파이어폭스의 고민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모바일 플랫폼 양대 강자인 구글과 애플 사이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것. 이게 요즘 모질라재단이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접하는 우리가 당연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왜 모질라재단의 고민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할까?란 질문입니다.

씨넷 기사늘 안드레아스 갤 CTO의 입을 빌어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갤 CTO 얘길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iOS와 안드로이드의 공통점은, 그들이 감옥이란 점이다. 그들은 화려하다. 하지만 일단 그들의 생태계에 참여하게 되면, 그 속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를테면 아이튠스에서 어떤 앱을 다운받게 되면 애플 기기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iOS용 앵그리버드를 갖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애플 기기만 써야하는 겁니다.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질라재단이 브라우저 기반 모바일 플랫폼인 파이어폭스 OS로 하려는 건 바로 그 감옥을 허무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PC 시대 MS와의 싸움보다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르지요.

또 다시 갤 CTO가 씨넷 기자에게 털어놓은 고민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긴 여행이었다. MS를 무너뜨리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10주년을 맞이했다. 안드로이드와 iOS를 무너뜨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잘 모르겠다.

■ 개방된 생태계란 원대한 꿈을 향하여

그들은 지금 멀고도 험난한 여행 길을 막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결실도 눈에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파이어폭스 OS를 탑재한 휴대폰이 24개국에서 팔리고 있다고 하네요. 첫 제품은 지난 해 7월 등장했지요. 한국의 LG전자를 비롯해 알카텔, ZTE 등이 파이어폭스 OS 폰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파이어폭스 탄생 10주년’을 맞는 모질라재단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거대한 기업 틈새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글과 애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개방된 생태계'란 소중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꿈의 가치를 믿기에, 그들이 내딛는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냅니다. 박노해 시인의 표현을 빌어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힘차게 전진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