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사이즈’는 왜 대세에서 밀려났나

[데스크칼럼] 폰은 커지고 태블릿은 작아진 이유

일반입력 :2014/04/09 15:50    수정: 2014/09/11 08:00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세상에 이끌어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고(故)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그 주역이다. 아이폰은 특히 첫 선을 보인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왕성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점유율에서는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 밀렸지만 매해 발표되는 신제품은 아직도 제품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아이폰보다 늦게 선보인 아이패드 또한 여전히 시장을 이끌어가는 제품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제품 크기다. ‘잡스 사이즈’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생전의 잡스는 출시 시점이 다르긴 했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동시에 구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같은 운영체제를 쓰지만 크기가 다른 ‘형제 제품’을 떠올린 셈이다. 크기 차이는 용도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었겠다. 이 치밀한 구상에서 제품 크기는 터치스크린과 앱이라는 최대 혁신가치 못지 않게 결정적인 요소였던 것 같다.

아이폰은 음성통화와 다양한 앱 사용에, 아이패드는 멀티미디어 영상을 보는 것에 특화시켰다고 뭉뚱그려서 말할 수 있다. 두 제품 다 팔아야 하고, 그러려면 두 제품 다 별도의 쓸 모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크기로 차별화한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폰은 스마트폰 크기여야 하고, 태블릿은 태블릿 크기여야 마땅하다는 게, 잡스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제품의 크기를 벗어나면 용도에 혼선이 생기기 때문이겠다.

잡스 생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크기는 그래서 일정했다. 그의 마지막 상품인 아이폰4S까지 스마트폰은 3.5인치였고 아이패드는 9.7인치였다. 아직 경쟁사 제품이 크게 힘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생각은 철칙에 가까웠다.

잡스는 실제로 막 성장하기 시작한 더 큰 스마트폰과 더 작은 태블릿을 가소롭게 봤다. 더 작은 태블릿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는데 부적절하고 더 큰 스마트폰은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7인치는 태블릿에서 고급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에 너무 작다고 비판했다. 아이폰4을 발표한 뒤에는 경쟁사 제품에 대해 “아무도 큰 휴대폰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잡스 사이즈’는 ‘神의 크기’였다.

'잡스 사이즈’는 그러나 신이 사라지자 조금씩 흔들린다. 스마트폰은 아이폰5부터 4인치로 조금 커졌고, 아이패드는 2인치 가량 줄어든 미니 제품이 별도로 나왔다. 잡스 생각과 달리 내부에서는 크기와 관련해 다양화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갤럭시를 중심으로 한 5인치 안팎 스마트폰과 7~8인치 태블릿이 쏟아지며 기존 시장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크기’가 영원한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상황은 최근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폰 차기작(아마도 아이폰6)은 4.7인치와 5.5인치 두 종류로 나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이 크기는 잡스가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조롱했던 사이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잡스 예측이 빗나갔다. 애플은 지금 아무도 사지 않을 사이즈의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6가 예상대로 나온다면 ‘잡스 사이즈’는 종가에서 종말을 고하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소비자와 이통사는 더 큰 사이즈의 스마트폰을 원한다’는 애플 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잡스 생전에 ‘신의 크기’였던 3.5인치가 이제 너무 왜소해 보인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는 최근 이를 잘 정리해주었다. 저가 5인치 스마트폰과 7~8인치 태블릿이 앞으로 모바일 기기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개당 25만엔짜리 고가 보고서를 내놨다.

그렇다면 ‘잡스 사이즈’는 왜 쇠퇴하기 시작했을까.

욕심 탓이라 볼 수 있다. 잡스는 인문학을 테크놀로지와 제대로 연결할 수 있는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다. 철저히 소비자의 사용 가치와 편의성을 중심에 두고 제품을 개발한다. 그러나 사이즈에 관한 한 아니었다. 제조사 욕심이 먼저였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구분한 뒤 둘 다 팔기 위해 크기를 고정시키려 했다. 이는 잡스 철학의 왜곡이고, 경쟁사는 그 빈틈을 파고들면서 역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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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의 왜곡이 나타난 건 애플의 사업 구조 탓이다. 애플은 생산 라인이 없다. 외부 협력 업체에 주문 생산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진다.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한 종류를 대량 생산하는 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애플은 이를 맞춰줄 수가 없다. 이 점이 삼성에 최대 기회요소가 됐고, ‘신의 크기’는 애플에서도 골칫거리로 변한 것이다.

한때의 혁신은 세월이 가면 오히려 반동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혁신의 덫’ 혹은 ‘승자의 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다. 모든 성공한 혁신은 이미 혁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