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구글과 아마존이 보는 미래

전문가 칼럼입력 :2013/12/09 09:02    수정: 2013/12/09 18:17

임백준
임백준

영화 그래비티(Gravity)의 장점은 흡인력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극장을 벗어나 넓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집에 두고 온 자잘한 고민을 잊고 산드라 블록의 아슬아슬한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킨다.

이 정도의 흡인력은 쥬라기 공원에서 처음으로 공룡을 보았을 때나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두 동강 나면서 물에 가라앉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경이에 비견될 만하다. 비주얼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줄거리나 스토리는 어떤 식이라도 상관없다.

시시콜콜한 일에 치이며 살아가는 우리의 머리 위에 저렇게 차갑고, 무심하고, 고독하고, 거대한 우주공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러한 느낌은 우리를 철학적 사색의 길로 안내한다.

영화를 본 사람은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크루니가 연기하는 실감나는 무중력 상태가 어떻게 연출된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것은 배우가 등에 와이어를 달고 둥둥 떠다니면서 허우적거리는 식으로 만들어진 연출과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그래비티의 연출은 배우들이 정말로 무중력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너무나 실감나기 때문에 혹시 나사(NASA)가 우주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개발한 무중력 발생장치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구 위에서 무중력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나사가 사용하는 방법은 제트비행기를 급강하시켜서 순간적으로 중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중력 상태가 아니라 관성의 힘을 이용해서 중력을 잠시 마비시키는 임시방편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던 '아폴로 13호'는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서 무중력 상태를 연출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무중력을 발생시키는데 따르는 비용이 적지 않고, 무중력을 체험하는 시간도 턱없이 짧다. 제트비행기가 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그래비티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럽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중력 상태를 연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비티를 만든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은 이러한 한계와 어려움 때문에 실제와 거의 흡사한 무중력 상태를 영화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봇앤달리(Bot & Dolly)라는 회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봇앤달리는 로봇공학 기술을 이용해서 영화의 특수효과를 제공하는 회사다. 10명도 되지 않는 적은 인원으로 2010년에 출범했다. 스카우트(Scout)와 아이리스(Iris)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팔모양의 로봇을 이용해서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현란하고 정교한 카메라워크로 특수효과를 만들어낸다.

자동차나 항공기 제작과정에서 사용되는 로봇과 흡사한 스카우트와 아이리스를 조종하기 위한 3D 소프트웨어는 봇앤달리가 유명한 3D 소프트웨어인 마야(Maya)를 이용해서 직접 제작했다.

봇앤달리가 특수효과를 연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법은 보통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이라고 알려진 방법이다. 이미 수 년 전부터 광고나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봇앤달리의 강점은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로봇의 카메라워크를 통해서 성취하는 가상세계와 실재세계의 대통합이다.

비메오(Vimeo)라는 사이트에 ‘박스(Box)’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5분 분량의 짧은 비디오 클립을 보면 스카우트와 아이리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프로젝션 맵핑 기법이 제공하는 놀라운 흡인력을 잘 보여주는 다른 비디오를 유투브에서 찾아 볼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본 비디오 클립 중에 “Most Insane Immersive Movie Experience EVER”라는 것이 있는데, 그 자체로 뛰어난 실재감을 맛보게 해주는 이 비디오와 봇앤달리의 ‘박스’가 갖는 차이점은 영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가상의 실재와 수행하는 상호작용의 수준에 놓여있다.

유투브의 비디오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계속 변화하는 주변 환경의 모습을 보며 놀라는데 그치고 있지만, 봇앤달리의 ‘박스’에 등장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천변만화하는 사이버 세계 속에서 투사(project)된 객체들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너무나 부드럽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가상세계와 실재세계의 경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지경으로 나아가게 된다.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이와 같이 두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상상을 우선 애니메이션으로 마음껏 그려내고, 애니메이션의 영상과 동작을 입력 데이터로 삼은 스카우트와 아이리스가 현란한 카메라워크를 통해서 가상세계의 영상을 실재세계로 투사하고, 그렇게 투사된 가상의 세계 속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는 사실은 기술적인 디테일에 불과하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속도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 영화 안에만 갇혀 있을 리는 없다. 로봇이 찍어서 현실에 투사하는 가상의 객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실재 세상의 객체와 구별되지 않거나 굳이 구별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세상이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하늘을 떠다니는 작은 로봇은 만화에서나 등장하는 상상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국방부는 드론이라는 무시무시한 살상무기를 통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즈가 “드론(Drone)에서 딜리버리(Delivery)로”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드론의 평화적(혹은 상업적) 활용계획을 발표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이렇게 비트와 바이트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를 크고 작은 로봇을 이용해서 원자로 이루어진 실재 세계와 통합하려는 노력은 아마존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풍경은 조만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나 등장하던 모습으로 변할 것이며, 굴뚝을 타고 내려오는 산타 할아버지의 전설은 마침내 굴뚝을 타고 내려오는 드론으로 현실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베조즈가 드론을 활용하는 '아마존 프라임 에어'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얼마 뒤에 구글은 이에 질세라 자기들이 최근에 사들인 로봇관련 회사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봇앤달리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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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봇앤달리의 스카우트와 아이리스를 데리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영화의 특수효과가 아닐 거라는 정도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상세계와 실재세계의 통합이다.

통합은 로봇을 통해서, 컴퓨터 장비를 통해서, 알고리즘을 통해서 숨 가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이러한 통합을 위한 경쟁에 전력을 다해서 참여하고 있다. 로‘봇’의 활용이 트위터에 댓글을 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레이스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지, 앞으로 어떤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백준 IT컬럼니스트

한빛미디어에서 『폴리글랏 프로그래밍』(2014),『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삼성SDS, 루슨트 테크놀로지스, 도이치은행, 바클리스, 모건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맨해튼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분산처리,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관계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