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역사, 다음(DAUM)은 진화 중

일반입력 :2012/09/05 08:49    수정: 2012/09/05 14:46

전하나 기자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확산으로 오늘날 사람들은 조금 더 개인화된 가상 공간을 선호하게 됐다. 휴대폰 주소록 인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떠들 수 있는 카카오톡이나 지인들과 일상의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이 그런 장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광활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떠나지 못한다. 이들은 막대한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또 다시 정보를 만들어 낸다. 기꺼이 익명의 개인인 누리꾼이 돼 오늘도 열심히 ‘클릭질’을 하기 바쁘다.

카카오톡, 페이스북의 태동은 바로 인터넷이라는 사회적 소통 인프라가 먼저 있었던 덕분이다. 클릭질이 가져다준 인터넷상의 다양한 검색값과 이를 기반으로 한 여러 양식의 의사소통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촉발케 한 것이다.

90년대 말부터 본격 개화하기 시작한 인터넷 문화는 주로 포털 커뮤니티 등에 기인했다. 그리고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곧 ‘다음 카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99년 5월 선보인 이래 올해 13주년을 맞은 다음 카페는 현재 국내 3천800만명의 회원이 이용하고 있으며 1천만개의 카페가 개설돼 있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초, 다음 카페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말은 이제 제법 익숙한 용어가 되었지만, 다음 카페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사실 이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커뮤니티라는 단어 자체가 외국에서 들어온 데다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외국의 ‘꼬뮨(Commune)’과 같은 공동체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새로운 용어를 빠르게 전달하는 언론조차도 다음 카페에 대해 보도할 때, 커뮤니티라는 말보다 ‘동호회’라는 용어를 쓸 정도로 커뮤니티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사실 다음 카페의 초창기 형태도 PC통신 시절 유행하던 동호회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음 카페 개시 첫날 만들어진 카페들은 ‘스타크래프트 테란 유저 카페’, ‘이승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시사랑’과 같이 대체로 취미 혹은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PC통신보다 개설과 운영은 물론 참여 과정에서 보다 개방적인 구조를 취했던 다음 카페는 곧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호회라는 명칭으로는 다 포괄할 수 없을 만큼 가지각색의 카페들이 생겨나면서다.

■친목부터 정보 공유, 사회적 나눔의 장으로

인터넷 이전, 문화나 예술의 영역은 생산은 물론 소비를 결정짓는 평가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문가들의 몫이었다. 일반인들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다음 카페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줬다. 영화, 공연, 음악, 문학 등에 관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 카페로 모여들어 자신의 식견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페 게시판에 올라오는 개개인의 의견과 경험은 곧 문화 소비의 새로운 기준점이 됐다.

이는 평론가들의 권위도 해체시켰다. 대표적인 영화관련 카페 ‘영화시사회’는 영화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카페가 됐고, ‘메조의 재즈바’, ‘멜로딕피아’ 등은 어떤 음악 전문 웹진보다도 애호가들에게 신뢰도 높은 정보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다음 카페는 단순히 정보를 쌓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문화 상품을 생산하고 문화 코드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그놈은 멋졌다’, ‘늑대의 유혹’ 등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당대 선풍적 인기를 끈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파페포포’ 시리즈 모두 다음 카페를 통해 배출된 작품이다.

지금도 ‘인터넷 소설 닷컴’ ‘스토리라인’과 같은 다음 카페에선 수많은 이들이 제2의 귀여니, 제2의 파페포포를 향한 꿈을 실현해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13개 지회를 두고 있을 만큼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창작시나리오 카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소개된 ‘시인나라’ 등은 그동안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이뤄지던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취미나 관심분야를 매개로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경험을 시민성으로도 발현했다. 평소 다음 카페를 통해 익힌 솜씨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을 열어 화제가 된 무술 카페 ‘비화랑’, 마술 카페 ‘기독 마술사랑’ 등이 이러한 예다. 현재 다음에는 자원봉사 카페 수만 2천여개에 달한다.

■광장으로 가는 길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미순·효순 사망 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2008년 ‘광우병 사태’ 등은 다음 카페의 사회적 영향력을 크게 알린 계기가 됐다. 다음 카페에 결집돼 있던 시민들은 공공의 사안(Public Issue)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토론게시판 ‘아고라’는 여기에 시너지를 더했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다음 카페의 파급력을 고스란히 보여준 대목이다. 특정 시민단체가 아닌 다음의 패션 정보 카페 ‘새틴’과 ‘소울드레서’ 등의 회원이었던 10~40대 여성이 주축이 돼 새로운 양상의 시위문화를 만들었던 것.

이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관련한 의견 개진을 이어갔을 뿐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혹은 교복을 입거나 하이힐을 신고 직접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 현장에 나오지 못한 이들은 또 카페 게시판을 통해 소식을 전파하며 동참하는 진풍경을 펼치기도 했다.

누리꾼들이 의식있는 유권자로 모습을 드러내자, 정치권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정치인들은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를 여론 수렴의 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쓰기에 이르렀다.

■모바일로 옮겨간 커뮤니티 패러다임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변혁을 일으킨 다음 카페는 지난 13년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축적해왔다.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카페의 연대기는 곧 우리 국민들의 생활, 트렌드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20~30대 가입자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다음 카페가 빠르게 변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좌표 역할까지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가운데 다음은 13년간 공고히 구축해온 광장 패러다임과 사용자풀을 모바일로 옮기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모바일 커뮤니티 ‘캠프’가 그 것.

캠프는 다음이 카페를 성공시킨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5월 첫 선을 보였다. 다음 카페의 기능과 외형을 가져오되, 온라인에서 구성된 커뮤니티를 단순히 모바일로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상의 모임을 조직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서비스라는 차별성을 뒀다.

또 온라인 카페의 개설 과정과 달리 가입 권한 설정, 등급 단계를 최소화해 모바일 기기에서의 이용 편의와 접근성을 높였다. 위치기반서비스(LBS)에 기반해 특정 장소, 행사장, 지역 등에 개설된 캠프를 검색한 뒤 가입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모임의 성격에 맞게 캠프의 공개 여부도 선택할 수 있다.

서비스 시작 이후 실제 개설된 캠프들은 친목·모임, 스터디·팀플, 취미, 스타, IT, 반려동물, 스포츠·레저, 게임, 유머·재미, 여행, 패션·뷰티, 사회·정치 등 12개의 카테고리 중 ‘친목·모임’에 해당하는 캠프가 전체의 25%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초기 다음 카페의 개설 양상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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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마트폰으로 담은 세상’, ‘지금 듣는 그 노래’와 같이 사진이나 음악을 공유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의 캠프는 모바일 환경의 실시간성을 새롭게 반영했다.

10여년동안 다채로운 인터넷 문화를 주도해온 다음은 한번 더 진화를 꿈꾼다. 모바일 세상에서 또 다시 커뮤니티 트렌드를 이끌기 위한 다음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