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x86서버시장 '포털에 울고 또 울고'

일반입력 :2012/08/14 22:50

하락세를 보여온 한국HP가 지난 2분기 국내 X86서버 시장 예비집계에서 9개월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델코리아와 한국IBM 등은 동반 하락했다.

한국HP가 살아났다고 하기엔 섣부른 판단으로 보인다. 일부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따라 달라지는 단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포털업체에 좌우되는 분기성적표에 국내 x86서버 업계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IDC의 2분기 국내 서버시장 예비실적 자료에서 국내 x86서버 시장은 2만9천여대 규모로 전년동기대비 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에 비하면 6.5% 줄었다. 이 가운데 한국HP는 2분기 동안 1만3천700여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47%를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1분기 대비 20% 가량 늘었다.

델코리아는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난 6천300여대 서버를 판매해 2위를 기록했다. 1분기에 비해선 8% 가량 줄었다. 델코리아는 22%대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다. 한국IBM은 같은 기간 4천300여대를 판매해 전년동기대비 16.8%, 1분기 대비 39% 줄었다. 시장점유율은 약 15%로 예상된다.

■2분기 포털은 한국HP, 다음은 누가?

예비실적이지만 한국HP는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온 판매량 감소에서 벗어나 전년수준을 회복했다. 한국HP 역시 2분기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 예상했다.

김영채 한국HP 엔터프라이즈그룹(EG) 인더스트리스탠더드시스템(ISS) 사업부 상무는 지난달 인터뷰에서 “작년부터 진행해온 딜 중 고객 측 일정에 따라 2분기로 미뤄진 경우가 많았고, 몇몇 고객에 대해서 조금 더 공격적으로 커버했기 때문에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밝혔었다.

한국HP x86제품의 지난 1분기까지 판매대수는 1만1천400여대로 시장점유율은 36.2%였다. 2, 3위 업체와 격차는 14%내로 줄었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HP는 2분기 1만3천700여대 판매는 놀라운 상승이다.

업계는 한국HP의 이같은 실적상승에 대해 지난 2분기 중 NHN 등 대형 포털업체의 대량 구매 프로젝트를 한국HP가 따냈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국내 x86서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분야는 통신사와 인터넷 포털이다. 사업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프로젝트 당 물량이 수백~수천대에 이른다.

지난 1분기 한국IBM은 KT의 LTE 워프(WARP) 사업에 2천대 블레이드 서버를 공급하며 단숨에 시장점유율 2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통신사나 포털업체의 프로젝트 하나를 따내느냐 마느냐에 따라 분기 판매량이 좌우되는 것이다.

■치열한 가격경쟁 일단 많이 팔고 보자

이런 가운데 x86서버 시장은 가격경쟁이 만연해 있다. 특히 대형 고객사 프로젝트의 경우 가격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서버업계 관계자는 “지난 1년동안 델코리아가 시장점유율 확대에 집중하면서 서버업체 간 가격경쟁이 유례없이 치열하다”라며 “판매량은 늘어도, 수익은 마이너스인 대형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판매대수가 아니라 매출과 수익이다. 한국 x86서버시장은 ‘원가 90% 할인’이란 터무니없는 가격이 존재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시장이다. 통신사와 대형 포털사들이 최저가입찰제를 통해 서버구매단가 인하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NHN 같은 경우는 국내 최대 고객으로 서버업체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라며 “NHN을 놓치면 점유율이 하락하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따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대형 고객의 경우 공급물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시장조사업체의 분기 실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서버업체가 달려들고, 계약 수주를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서버업체가 프로젝트 때마다 손해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체 1년 간 목표 실적을 기준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조정작업이 이어진다.

NHN의 이전 프로젝트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계약을 따냈다면, 다음번 NHN 프로젝트에선 파격제안을 삼가게 된다. 결국 업체별로 돌아가면서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1년 전체 프로젝트를 업체마다 순서대로 나눠 갖는 형태가 된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1분기까지 한국HP는 가격경쟁에 나서지 않고 마진 유지에 주력했다”라며 “이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가격을 앞세워 치고 나갔고, 2분기엔 한국HP도 마진을 포기하고 공격적인 영업을 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혈경쟁에 멍드는 건 국내 유통업체

업체 간 가격경쟁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은 서버 시장 규모의 축소다. 판매대수는 전보다 늘었지만 시장수요가 몇몇 분야, 특정 기업에 집중돼 있다.

과거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x86서버 시장수요는 현재 특정 몇몇에 집중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놓치면 서버 판매회사의 실적에 타격이 크다. 서버업체 실적이 나빠지면 유통업체에 돌아가는 마진은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서버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시장구조가 대형프로젝트 위주로 바뀌면서 전체 프로젝트 수가 줄어들었다”라며 “이 때문에 과거 쳐다보지도 않던 소규모 프로젝트에도 모든 서버업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모습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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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지나친 가격경쟁은 서버업계를 멍들게 하고 있다. 한국HP, 델코리아, 한국IBM 등 글로벌IT업체는 물론, 각 회사들의 유통 파트너들이 낮은 마진에 수익성 악화를 겪는 상황이다. 중견급 서버유통업체의부도설마저 나돈다.

서버유통업체의 또다른 관계자는 “x86서버 시장은 대형, 중견, 중소 유통업체들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다”라며 “전체 서버시장 환경이 나빠지면 외국계기업의 실적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국내의 영세한 유통업체들이 힘들어진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