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극복 아닌 즐기는 것"

일반입력 :2011/12/23 09:42    수정: 2011/12/26 08:22

봉성창 기자

올해는 인텔에게 여러모로 뜻 깊은 해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 4004 CPU가 출시된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며, 노트북이 세상에 나온지 30년이 됐다. 지난 수십년간 인텔은 CPU 분야에서 한 번도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독점에 가까운 막강한 점유율을 자랑하며 IT업계의 거두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인텔도 그동안 적지않은 위기와 도전을 겪었다. 당장 올해만 해도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필두로 하는 스마트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직면했다. 이번에야말로 인텔이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은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다. 원래 늘 그래왔다. 지난 1992년 인텔에 입사해 사장이 되기 까지 단 한번도 CPU를 팔아본적이 없다는 그는 늘 인텔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몸담은 기업에게는 위기일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의 기회다.

■모바일 프로세서, 승부 시점은 ‘2013년’

인텔에게도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2000년대 초 ARM과 제휴해 ‘스트롱암’ 이라는 모바일 프로세서를 선보였다가 철수했다. 이어 2006년에는 마벨 테크놀러지에 커뮤니케이션 및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인텔은 6억달러라는 거금을 얻었지만 모바일 프로세서 사업의 성장동력을 잃었다. 이희성 사장도 이 결정이야말로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비즈니스에서 결과론은 무의미하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반성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이야기다. 이 사장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든 인텔에게는 어떻게 인텔만의 강점을 살려 의미있는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이 사장이 판단하고 있는 승부 시점은 2013년이다. 내년에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내 후년이면 충분히 경쟁이 가능할 정도가 된다는 것. 더 나아가 3년 후인 2014년에는 경쟁사를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이는 인텔의 막강한 자금력과 축적된 기술력을 감안한다면 결코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말처럼 인텔이 단기간에 경쟁력있는 제품을 내놓을 경우 인텔코리아와 그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전 세계 스마트폰 1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이 국내 대거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의 몫이자 책임이다.

“한국 지사의 대표지만 인텔코리아의 실적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텔의 시니어 리더 중 한사람으로서 인텔이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리더십을 가져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것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울트라북 점유율 40%? “쉽지 않지만 충분히 가능”

서두에서 인텔의 위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껄끄러운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이 사장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울트라북만해도 그렇다. 태블릿 PC가 빠르게 확산되며 노트북 중심의 PC시장을 위협하자 인텔은 재빨리 전장을 홈그라운드로 끌고 왔다. 보다 가볍고 오래쓸 수 있으면서도 높은 성능의 제품이 있다면 태블릿과도 충분한 경쟁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사장은 컨수머 노트북 시장에서 울트라북이 내년 말까지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인텔의 목표에 대해 쉽지 않지만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가격이다. 1천달러 이하로 내겠다고 했지만 이 사장이 맡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포함해 일부 PC 제조사들은 그보다 비싼 가격에 제품을 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가격에 대한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제조사의 몫”이라면서도 “갈수록 울트라북 제조 비용이 낮아지고 있고 시장 크기가 커지는 것을 감안하면 가격도 적정선을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장은 내년도 경영전략에 대해 내년 1분기까지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부족 현상이 심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반대급부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며 이로 인해 전반적인 수요는 감소하겠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의 대부분 울트라북이 SSD를 채택하고 있는데다가 2분기 이후부터는 인텔의 차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코드명 아이비브릿지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인텔에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얼마 전 상당히 괄목할만한 성과도 있었다. LG전자가 인텔의 무선 디스플레이 기술인 ‘와이다이’를 내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치열한 TV 업계의 경쟁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향후 와이다이가 와이파이만큼 보급된다면 향후 와이다이를 탑재해 출시될 울트라북은 물론 인텔 기반 모바일 기기 전반이 탄력을 받게 된다. 언젠가 “이 TV 와이다이 잘 터져요?”라고 묻게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위기는 도전기회의 또 다른 말

이희성 사장은 1004클럽 회원이다. 국내 대표적인 NGO 단체 중 하나인 희망제작소를 통해 1천만원을 기탁하기로 서약했다. 외부활동에 생긴 강의료를 고스란히 기부한다. 최근에는 업무가 바쁜 관계로 외부 강의활동이 많지 않아 아직 목표액에 미치지 못했지만 1천만원을 다 채우면 다시 또 한번 갱신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사장이 1004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던 시절 인텔이 아시아 NGO 포럼을 후원하면서 처음 만나게 됐다. 이후 이 사장은 희망제작소 내부 행사인 김치찌개 데이에 참석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가져나갔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이 사장의 활동에 대해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사장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누치다. NGO적인 가치를 나누는데는 좌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사회적 기업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예술, 문화, 교육 전반에 걸쳐 기부 및 후원 활동을 한다. 그중에서도 인텔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교육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벌어들인 돈 중 일부를 나눈다는 개념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CSV(Corporate Shared Velue, 기업의 가치 공유)가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CSV는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포터가 주창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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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텔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교육에 집중 투자하면 언젠가 그들은 PC를 사용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텔에게 보다 많은 시장이 열리는 효과를 낳는다. 일종의 장기적인 투자인 셈이다. 투자이기에 기업은 더욱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인텔이 지난 수십년간 확고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IT 선도기업으로써 행보 때문으로 여겨진다. 물론 몇 번 사업적 결단이 실패하거나 혹은 경쟁사에 뒤처진적도 없지 않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의 인텔의 위기를 말했다. 위기의 다른 말은 도전의 기회다. 그리고 도전은 이 사장의 전공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