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을 휘날리는 개발자가 나오기위한 조건

일반입력 :2010/10/10 19:48    수정: 2010/11/25 18:30

황치규 기자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를 통해 낙후된 국내 SW산업 구조에 직격탄을 날렸던 김익환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IT강국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 그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일으켰다. '속시원한 문제제기였다'며 박수를 치는 이들도 많았고 현업 담당자들 사이에선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자의 거룩한 얘기일 뿐이란 까칠한 시선도 쏟아졌다. 당시 그의 문제 제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SW업계에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문제라고 생각하던 것들이었다. 결론은 주먹구구식 SW개발을 그만하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마나한, 당연하고 지당한 얘기들이었다.

그럼에도 파장은 컸다.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외부에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부르는 결과는 급이 다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벌써 7년전의 일이다. 김익환씨가 꼬집었던 한국SW산업의 치부(?)는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 치료가 많이 된 분야도 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많다. 7년전 우리나라는 과연 IT강국인가?라고 했던 저자의 회의적인 물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런 가운데 김익환씨가 최근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꿈꾸다'를 내놔 주목된다. ABC테크란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며 느낀 점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번에는 SW기업문화를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닸다.

그는 책을 통해 개발자 수준만 놓고보면 전세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회사 차원의 문화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SW기업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다면 스마트폰발 모바일 혁명도 한국에겐 기회라기 보다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인을 넘어 조직 차원의 환골탈태를 요구한 셈이다.

프로세스에 기반한 SW 기업 문화가 없는 상황에선 백발을 휘날리는 개발자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그가 강조한 포인트. 아르바이트생도 할 수 있는 코딩만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개발자들은 '조로를 피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담겼다.

김익환씨는 '글로벌SW를 꿈꾸다'를 통해 문화를 강조했다. 개발 문화를 갖춰야만 글로벌 SW를 내놓는 꿈이라도 꿔볼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문화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인터뷰를 통해 저자에게 직접 물었다.

-'글로벌SW를 꿈꾸다'에선 문화를 키워드로 내걸었는데, SW문화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SW문화는 좁은 의미로 보면 개발 문화가 있고, 산업적으로 보면 계약이나 발주과 같은 관행까지 포함한다. 상생도 문화의 일부다. 이번 책에선 개발자 문화에만 초점을 맞췄다. 개발자 문화는 개인, 그룹, 회사로 나눌 수 있고, 규모가 커질수록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협업, 공유, 개방이란 본질적인 가치일 뿐이다. 개발 문화는개인이 아닌 팀플레이란 얘기다.팀플레이가 개인들에게 익숙한 프로세스로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의 차이는 극과극이다. 미국 회사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70%를 제공한다. 사람이 아무리 망쳐도 기본적으로 70점은 먹고들어간다는 얘기다. 그위에서 사람이 잘하면 80점도 얻고, 90점도 얻는다. 반면 한국은 회사가 20점 정도만 제공한다. 개발자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핵심 개발자가 나가면 공황상태에 빠지는 회사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만큼 경영자들에게 이 책이 호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경영진의 의지없이 개발자 문화의 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발 문화가 SW기업의 경쟁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경영능력과 SW에 대한 통찰력은 전혀 다른 얘기다. SW 개발 문화가 좋다고 해서 그 회사가 꼭 성공한다고 볼수는 없다. 영업과 마케팅도 잘해야 한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개발 문화는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7년전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를 내놓을때와 지금의 SW 개발 관행을 비교한다면?

기술적으로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발자 수준에서 한국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러나 그건 개인적인 수준일 뿐이다. 팀이나 회사 차원의 문화 수준은 7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물론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슈 및 소스관리 시스템 도입이 늘어나는 등 조직 차원의 개선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개발 조직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5년뒤에도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겠나.

변화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개발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소신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균형잡힌 소신이어야 한다. 과거 경험에만 의존해 한쪽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소신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과 다른 변화에는 거부감을 드러낸다.비단, SW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아닌가. 소신에 집착하는 개발자들에게 더 넓은 것을 보여주면서 변화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자들이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발자 문화를 바꾸는데 있어 경영진의 의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한국은 지휘자 아키텍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휘자 아키텍트는 어떤 일을 하는가?

코딩에 들어가기 전단계인 기획과 분석 그리그 설계 작업을 총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코딩이 어려운 일이 되지 않도록 앞에서 기획 분석, 설계에 대한 준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개발 문화를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지휘자 아키텍트가 있다는 것은 그 회사가 나름 개발 문화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날 갑자기 외부에서 지휘자 아키텍트를 데려온다고 해서 없던 문화가 뚝딱 만들어질 수는 없다. 제임스 고슬링이 한국 회사에 들어온다면 없던 문화가 바로 생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환경의 문제인 듯 하다.지금 상황에선 한국에서 제임스 고슬링과 같은 개발자가 나오기는 요원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발자들이 나이들어서도 원하면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 우선 관리직을 선호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과장이나 차장 정도가 기업에서 가장 전문성이 있는 직책이다. 그위는 대부분 관리직이다. 기술에만 신경써야 하는 CTO도 관리 업무를 할때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 개발자가 백발을 휘날릴때까지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변화를 위해서는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개발자들의 자기 혁신도 강조해왔고, 이 때문에 여러차례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코딩은 아르바이트생도 한다고 하면 반발하는 개발자들이 적지 않다.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코딩은 개발은 아니다. 개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SW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지식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백발이 되어서도 개발자로 일하기 위해서는 기획과 분석 그리고 설계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코딩이 아니라 코딩 전단계에서 놀아야 한다. 그러려면 팀플레이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일각에선 한국 사람은 유전자가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황당할 뿐이다. 유전자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적 상황때문에 못바꾸는 거다. 국내 개발자들도 미국 회사에 가면 잘 적응하고 있지 않은가. 나 스스로도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국식 문화는 바람직한 SW개발 문화 정립에 있어 걸림돌로만 봐야하는가? 나름 긍정적인 요소도 있을 것 같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은 것은 장점이다. 미국식 문화없이도 버티는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집단적이며 인간관계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장점으로 만들려면 결국 경영진들의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미국에서 6개월 걸리면 우리는 3개월만에 해치우자'고 외치는 경영자들이 있는 SW회사를 긍정적으로 봐야할까? 해답은 개발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SW기업에서 통찰력있는 경영자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영업보다 개발자 출신이 유리한 것인가?

영업이나 하드웨어 출신 경영진들은 SW에 대해 통찰력을 갖기가 쉽지 않다. 빌 게이츠나 에릭 슈미트(구글 CEO)도 CTO 출신이다. 자기가 잘 알다보니, 대화를 많이 안하고도 원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거꾸로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경영자가 잘못된 소신을 갖고 있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스마트폰과 SW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위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은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시작해야 한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마켓과 같은 곳을 통해 자신의 SW를 팔 수 있으니, 시장 규모와 접근성 측면에서 기회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회란게 특정 개발자나 기업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다. 결국 수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기회가 크지만 위기도 그만큼 크다.

-한국SW 생태계가 스마트폰 열풍을 활용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보는가? 또 그러기위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전세계 개발자 및 기업과 싸워야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아직도 과거의 관행을 벗어던지지 못한 것 같다. 전세계가 아니라 국내 시장만을 보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용역 비즈니스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조하지만 용역을 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글로벌을 겨냥하지 않은 파티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이 SW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스마트폰이란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해서는 체질 개선을 할 수 없다. 글로벌로 가야하고, 그러려면 프로세스나 문화 혁명이 담보되어야 한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분명 시간을 요구한다. SW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지식산업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만큼, 문화가 제도와 규칙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오랜 경험의 산물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