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업계 대변인을 향한 아주 잔인한 질문…오경수 한국SW산업협회장

[김경묵의 인물탐구-13]

일반입력 :2010/04/11 14:58    수정: 2010/04/13 13:47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황치규기자

다들 한국SW산업의 위기를 말한다. 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SW위기론을 계속해서 얘기한다. 위기론의 본질은 SW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국내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로 요약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쯤되면 지겨워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만날 특단의 대책이란 노래만 부를 것이냐고 따져묻고 싶어질 것이다. SW위기론이 나온게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몇년 전, 아니 그 전부터 위기론은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위기를 돌파할 해법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 와중에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던 휴대폰 시장의 무게 중심은 HW에서 SW로 넘어갔고 구글과 애플로 대표되는 뉴페이스들이 대권을 잡는 역전극이 펼쳐졌다.

격변의 시기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한국판 SW위기론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시간이 흘러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묻게 된다. SW위기론은 과연 해법이 나올만한 화두인가? 또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특단의 대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나는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가 있다면 현실적인 관점에선 권력욕구가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SW위기론 앞에선 가급적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게 안전하다. '특단의 대책', '이대로는 안 된다'식의 뜬구름 잡는 듯한 대안론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SW위기론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내놓으라 하는 것은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안 되는 걸 왜 안 되느냐고 윽박지르면 서로가 민망해질 수밖에 없다.

오경수 한국SW산업협회장과 인물탐구를 위한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SW업계의 대변인이자 조타수인 그에게 SW위기론을 묻지 않을 수 없고, 맡은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에게 답이 안나오는 질문을 던지는 게 미안해서였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경수 회장에게 SW위기론과 해법에 대해 잔인하게(?) 물었다.

■고민만 할 순 없다 오경수의 3개월 프로젝트

스마트폰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한국SW산업에게 기회라기보다는 위기에요. 한국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강합니다. SW 등 안 보이는 것에는 약해요. 투자도 별로 없고 인재들도 외면합니다. 대학생들을 보세요. SW개발보다는 연예나 스포츠 마케팅 등 다른 분야를 선호해요.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SW는 지금 위기입니다. 오경수 회장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 확산 등 새로운 IT패러다임의 등장이 한국SW산업에게 기회보다는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나온 위기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식이다. 그러나 체감도에선 외부 시선과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 오 회장은 좀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식의 인식은 넘어섰다.

당연한 반응이다. 오 회장에게 SW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대할 사안이 아니다. 그는 SW업계 대변인의 위치다. 남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위기극복 시나리오도 다르지 않을까? 정부는 명분에도 신경을 쓰지만 SW업계는 철저하게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거룩한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업계의 얘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오 회장의 위기극복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2월말 취임한 그에게 확실한 솔루션을 기대해선 안 되겠지만 방향성 정도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대목에서 오 회장의 표정은 '신중모드'로 전환된다.

업계 입장을 정리하는데 2~3개월은 걸릴 것 같아요. 정보는 수집했는데, 이걸 걸고 무엇을 기획하고 만들어낼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반기안에는 뭔가 내놔야 한다고 봐요.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으니까...

분명한 것은 뭉쳐야 산다는 것이다. 협회와 학계 그리고 SW업체들이 손을 잡는것이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인프라는 어느정도 됐다고 봐요. SW든 HW 인력이든 실력과 사명감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한곳으로 끌어모으는 구심점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대중소기업 상생이든 선단식 수출이든 협회와 학계 그리고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래야 뭔가 나올 겁니다. SW육성책은 마라톤으로 치면 구간 마라톤이에요. 서울역에서 신사동까지는 협회가 맡는다식의 역할 분담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오 회장은 3개월정도 시간을 가지면 전략적인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정부는 월드베스트 SW개발에 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디테일은 나온게 없고 SW변방 국가 입장에서 수출도 하고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현실적인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 회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화려한 목표보다는 과정을 정교하게 다듬는데 중점을 뒀다.

과거 전자교환기나 CDMA 프로젝트 같은 성공한 모델들이 있습니다.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였어요.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른 만큼, 과거 모델을 적용한다고 성공한다고 볼 수는 없죠. 그래도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갖고 밀고 나가는 것은 필요합니다. 물론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남는 것은 있을 겁니다. 협회와 학계가 손을 잡고 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출물은 실패한다고 해도 의미가 있어요. 공동 작업이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아이폰 떴다고 모바일SW만 바라보지 말자

요즘 SW 시장의 최대 화두는 모바일이다. 한국이 애플과 구글에 먼저 모바일SW 플랫폼 주도권을 넘겨줬지만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추격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경수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모바일만 너무 바라보지 말고 다른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모바일 앱스토어말고 융복합SW도 있습니다. 아이폰이 떴다고 모바일SW만 바라보면 임베디드SW가 종속될 수 있어요. 하드웨어 업체였던 HP와 시스코는 점점 서비스 모델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시스코를 보세요. 송도에 U시티 빌딩을 짓는데, 과거와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나왔습니다. 예전같으면 장비를 파는데 주력했겠지만 지금은 월정액을 받는 방식이에요. 클라우드 컴퓨팅이 뜨면 빌려 쓰는 IT도 확산될 겁니다. 이 부분도 앱스토어 못지 않게 중요해요. 다양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의료 기술은 우리나라가 노하우가 많아요. 이를 IT에 접목시키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SW와 연계된 시나리오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하우투(How to)'가 키워드다. 아직은 그게 없다. SW위기론을 풀 수 있는 논리를 갖추려면 협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가 선봉에 서는 산업 프로모션 정책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협회 활동이 질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다. 오경수 회장은 SW산업협회의 체질개선을 화두로 던졌다. 디테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회도 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회원사중 회비를 내는 비중이 50%정도 될까 말까에요. 전문 업체 등록도 50%가 안됐고요. 이를 감안해 SW카테고리를 나누고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분과도 만들었어요. 회원사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무국이 강해져야 합니다.

정부는 최근 SW발전 대책을 내놓는 등 산업 경쟁력 강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협회를 쳐다보는 눈들도 늘었다. 회원사든 정부든 협회가 뭔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협회가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협회가 총대를 매기는 어렵다는 입장. 싱크탱크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 회장이 된 뒤 김영태 회장, 김택호 회장, 정병철 회장 등 역대 SW산업협회장들에게 의견을 구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프로젝트도 생각중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왜 3D 업종인지를 실증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겠다는 것. 이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왜 둘인지를 증명하겠다는 돈키오테식 접근으로도 비춰진다.

왜 3D 업종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더라고요. 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봉급이 작아서인지, 꿈이 없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머슴 취급 받아서인지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짐작은 가능하다. 오 회장 말대로, 힘들고, 봉급이 적고, 꿈이 없고, 머슴취급받고가 맞물려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일자리가 됐다는 근거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꿈이 없고(Dreamless)를 합치게 되면 SW산업은 3D가 아니라 4D라는 분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뉴스 마니아, SW르네상스에 기여하고 싶다

오 회장이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조사에 나선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어설픈 문제 인식은 엉뚱한 결과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문제 인식은 리더가 갖춰야할 핵심 경쟁력이다.

롯데정보통신 대표이기도 한 그는 많은 정보를 수집한 뒤 그 속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다. 또 자타가 공인하는 뉴스읽기 마니아다. 신문 스크랩을 해온지만 23년째로 웬만한 기사는 빼놓지 않고 다 읽는다. 강산이 두번 바뀔 기간 동안 그는 꾸준히 뉴스를 읽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뉴스읽기 마니아를 리더로 둔 직원들은 긴장해야할 때도 많다. 대표가 워낙 많은 정보를 섭렵하다보니 체크를 제대로 못해 지적을 당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쯤 되면 오 회장의 정보 수집은 가히 편집증 수준이다. 스스로도 읽는 것만큼은 편집증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특정 이슈가 있으면 관련 자료를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단다.

그냥 읽고 끝내는 게 아니다. 그저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머릿속만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오 회장은 읽는 것을 가공해 새로운 메시지로 만드는데, 나름 노하우가 있다.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다.

주로 분석 기사를 많이 보는데 본 것을 가공하고 해석하는 게 중요해요. 시작은 기록입니다. 배운 것을 계속해서 리마인드하고 외워나가는 거죠. 남들은 한번 보고 마는 것을 저는 반복해서 볼 때가 많아요. 23년간 해오다보니 개인적인 노하우가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

정보 수집과의 인연은 그가 삼성에서 근무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삼성 내부 그룹웨어인 싱글을 기획했던 프로젝트 매니저(PM)였고 86년부터 93년까지는 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뉴스 읽기는 비서실 시절에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는 위에다 올릴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이런 걸 왜 하나하는 생각이 들더니 하면 할 수록 요령이 붙었고, 가급적 다르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요령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오경수식 정보 활용론으로 발전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외친 공자의 학이지지(學而知之)도 본질은 지식은 공유하면 공유할수록 좋다는 의미를 지닌다는게 오 회장 설명이다.

56년생인 오경수 회장은 바람많이 부는 제주도 출신이다. 오랫동안 많은 얘기를 주고받아온 입장에서 오 회장에게는 평균치를 약간 상회하는 '인정욕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하면 몰라도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잘했다는 평가를 듣기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인정욕구를 튀려고 그런다 식으로 볼 필요는 없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심리며,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도 꼽힌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구가 열심히 하게 만들고,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 회장은 자신이 이끄는 롯데정보통신 직원들에게 회사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대표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단계 레벨업 시킨 CEO로 남고 싶은 것이다.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대외 사업에 적극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협회장으로서도 마찬가지다. SW산업 발전에 기여한 사람으로 추억되기를 기대한다. 있는 둥 없는 둥 앉아있다가 임기를 마친 협회장이란 이미지는 사절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협회를 떠나기 전에 뭔가 하나는 남겨놓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SW위기론을 타파할 수 있는 속시원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결과물 하나 정도는 해놓고 협회를 떠나야 그는 SW업계 종사자들의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묻는 것은 지금으로선 오버액션이다. 맡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솔루션이 없다고 몰아부칠 수는 없는 법이다. 그에게도 시간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책을 꼬치꼬치 캐물은 것은 그가 자신이 했던 얘기에 책임을 지려고 부지런히 노력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말을 해놨으니 어느정도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인정욕구를 자극하고 싶었던 것이다. 협회장으로서 그의 인정욕구가 강해질수록 SW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다. 몇개월 뒤 오 회장을 만나면 SW위기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뭐냐?는 잔인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야겠다. SW산업협회장으로서 그의 인정욕구는 좀 더 자극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