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에 비친 대한민국 UX 현실

일반입력 :2010/03/14 16:05    수정: 2010/03/15 15:12

황치규 기자

"경영진 차원에서 UX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때문에 기대가 너무 높아졌어요. 아이폰같은 UX 왜 못만드냐고 하는데, 그게 어디쉽습니까? 그리고 통신 업체 입장에선 UX는 너무 추상적이에요. 하드웨어나 SW 플랫폼을 하는게 아니다보니 UX가 뜬구름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 플랫폼없이 서비스만으로 차별화된 UX를 보여주기가 쉽지는 않은거죠."

지난 10일 저녁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가 개최한 'UX 패러다임 변화와 대응전략' 세미나 현장.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패널토의를 통해 IT업계 화두로 떠오른 사용자 경험(UX)과 관련해 우리나라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또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가능성도 확인했지만 플랫폼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한계를 우려하는 지적도 쏟아졌다. 분명한 것은 UX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도 매우 높아졌다는 것. 업체별로 차별화된 UX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게 숙제로 던져졌다.

UX의 가치는 계속 확대될 것인가?

국내에서 UX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아이폰 때문이다.  아이폰이 과거와는 다른 휴대폰 사용 환경을 제공하면서 '아이폰=인상적인 UX'란 공식도 만들어졌다. 아이폰 열풍에 자극받은 다른 업체들이 UX를 전진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만큼, 국내외에서 UX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삼성전자 김준환 책임 연구원은 "UX 대한 정의가 정말 많이 달라진것 같다. 생태계에서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회사내에서도 UX 디자인에 대한 위상은 높다"고 말했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UX 담당자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같은 UX 열풍이 앞으로도 이어질지가 첫번째 주제로 던져졌다.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것인지 아니면 계속 전략적 요충지로 남을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UX 업무 성격은 바뀔 수 있지만 본질적 가치는 약해지지 않을 것이란데 의견이 모아졌다.

SK텔레콤 이동석 매니저는 "UX 업무가 점점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조직으로 올라가고 있다"면서 "번짐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과는 모습을 달리하면서 UX 담당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일을 하거나 비즈니스와 좀더 가까운쪽에 투입될 것이란 설명이다. KT 김성우 연구원도 "다른 분야에서 UX를 교양이나 전공 필수로 배우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누구가 UI를 해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면서 UX 역할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 UX 가치는 점점 높아지는 양상이다.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높아져 아이폰 정도의 UX는 보여줘야 한다는 요구도 늘었다. 그러나 기대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삼성전자 김준환 연구원은 "기대가 큰 만큼, 구체적인 성과를 내줘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통신 업체들 사이에서 UX는 다소 추상적인 존재다.  잡힐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을때가 많다는 것이다. KT 김성우 연구원은 "구체적인 UI를 만드는 제조업체들과 달리 통신 업체들은 UX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아이폰은 기능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도 나올때부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체험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체험이 정확하게 뭐냐는 거죠. 소비자들은 그냥 써보니까 좋다고 해요.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 밖에 없죠."

결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은 UX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SKT 이동석 매니저는 "사람 자체가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사람을 알아가면 알수록 더 좋은 UX를 만들 수 있는데, 쉽지는 않다"면서 "이같은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UX발 스마트폰 무한경쟁 시작됐다

스마트폰 시장은 지금 IT업계 최대 격전지다. 애플과 구글로 대표되는 거물급 업체간 플랫폼 전쟁이 숨가쁘게 진행중이다. 플랫폼을 잡으면 스마트폰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관측도 대세로 떠올랐다. 그만큼 플랫폼은 모바일 시장의 전략적 요충지다.

플랫폼 없는 업체로선 UX 전략에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와 관련한 얘기들도 많이 나왔다. KT 김성우 연구원은 플랫폼 업체가 UX를 통제하고 플랫폼이 없는 업체는 깡통이나 만들어야 한다면, 동일한 플랫폼에서 UX 경쟁 우위는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를 화두로 던졌다. 플랫폼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통신 업체 입장에선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성우 연구원은 "UX가 어느정도 결정된 단말기에서 승부를 걸지 말고 이걸 뛰어넘는 끊김없는(심리스) 생태계를 만들고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말기에 의존하지 않은 경험을 독자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SKT 이동석 매니저도 "요즘 구글 경험, 애플 경험, SK텔레콤 경험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는 사용자들이 특정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바꾸기 어렵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UX를 회사 정체성과 연결시킨다는 것인데, 콘텐츠 제공업체(CP)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장면이다.

이동석 매니저는  "안드로이드 관련 CP들의 경우 삼성만나면 삼성처럼 하라고 하고 SKT 만나면 SKT처럼 만들라고 하고 안드로이드 표준은 그것대로 지켜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플랫폼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면서 "플랫폼이 없는 회사들은 플랫폼을 이용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최근들어 애플과 구글은 모바일 플랫폼을 넘어 광고, 지도, 검색 서비스까지 잡아먹을 태세다. 수익이 나오는 모바일 서비스는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업체들의 세력이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지현 서울여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삼성전자가 플랫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생태계는 크지 않다"면서 "이게 활성화되어야 주도권을 갖고 수익도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왜 플랫폼과 UX 주도권을 잡지 못했나

이날 세미나에선 국내 모바일 플랫폼 및 UX 경쟁력이 미국에 밀리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스마트폰이 상징하는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하는게 너무 늦었다는 반성도 나왔다. 세상이 이렇게 확 변할지 몰랐던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고 경영진들의 마인드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한번에 여러개 제품을 내놓고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구사해왔다. 좋은 제품 하나에 집중, 시장을 뒤흔드는 애플식 접근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여대 이지현 교수는 "애플은 스티브 잡스 CEO가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에 UX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다"면서 "이것은 UX 실무자들이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기업 문화가 UX를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김준환 연구원은 "애플이 UX를 잘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에 집중할줄 알기 때문"이라며 "무엇을 위래 기술을 쓸 것인지가 우선인데, 우리나라는 기술을 갖고 무엇을 할지 관점에서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토의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도 국내 기업들이 UX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경영진 차원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석 매니저는 "구글의 UX 책임자는 두다리 건너면 사장한테 바로 갈 수 있고, 애플은 CEO 스스로가 UX 디자이너"라며 "우수한 UX 담당자들이 경영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다"고 말했다. 김성우 연구원도 "UX 담당자들과 개발자의 역량 때문에 애플이 UX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UX는 기업 전반에 걸쳐 확산될 필요가 있고, 높은 사람이 위에 있는게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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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단계에서부터 UX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지현 교수는 "구글은 옵션 하나만들때도 사용자들이 어떤 것을 많이 선호하는지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제품이나 SW를 만들때 초기 기획단계부터 UX를 어떻게 셋업할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