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TML5 논쟁에 대한 관전평

전문가 칼럼입력 :2010/02/04 09:28

김국현

애플의 제품군에 플래시가 거부되면서 불거진 HTML5 논쟁. 구글은 적시에 유튜브의 HTML5 버전을 내놓으면서 자신의 적의 선택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HTML5 대세론을 꿀꺽 삼키기 전에 잠깐, 플랫폼 벤더들의 복마전에는 나름의 독해법이 있었음을 기억해보자.

이 바닥에는 오랜 경험칙이 있다. "시장 선두주자에게 1대 1이 불가능하다면 표준을 만들어 싸워라." 플랫폼 벤더의 전략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잠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혁신은 태어나는 순간 비표준이다. 표준이란 다른 종류의 혁신이 수차례 겹치면서 형성되는 교집합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혁신이 만들어 내는 격차를 존중하며, 그로 인한 선행자 이득의 인센티브가 사회 전체의 건강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믿는다. 그런데 이 격차가 가끔은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선두주자에게 타격을 입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게임의 룰을 바꿔 버리는 것이다. 교집합 크기의 후발제품들을 모아서 표준을 선언하면 그 곳은 홈그라운드가 되고 모두 같은 수준으로 하향 평준 재정렬된다. 여기에 선발주자에게 불리한 교집합으로 표준을 교섭해 낼 수 있다면 이는 매우 효과적인 덫이 된다. 합의된 진리이기에 모두 똑같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밀어 붙이며 모든 선행자 이득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번 HTML5의 옥신각신도 결국은 이 잠언이 되새김질 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독특한 변종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후발주자의 선두주자 공략이 아닌 선두주자의 장애물 응징이라는 점에서.

잡스의 말대로 정말 플래시는 게으를까? 글쎄 게을렀던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버라이트와의 경쟁 구도 형성 후 지난 2년간은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의 시너지란 이런 것이다라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던 차였다.

실버라이트와 플래시는 공히 개발과 디자인 체험을 브라우저를 넘어서 모바일과 클라우드로 연계하려는, 바꿔 말하면, 웹을 둘러싼 모든 벽을 넘나드는 플랫폼으로 발전중이다. 즉 브라우저를 위한 표준안인 HTML5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꽤 다른 방향성의 물건이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어도비도 HTML5에는 우호적이다.

그런데 애플과 구글은 왜 이 HTML5을 무리하게 지지하고 그 것만이 미래라고 선언하는 것일까? 실버라이트나 플래시와 같이 모바일-브라우저-PC-클라우드로 연계되는 통일된 개발/디자인 체험은 그들만의 행복한 왕국을 관통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조차 HTML5가 모든 것의 미래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브라우저 밖의 개발/디자인 체험은 앱스토어에서 통제되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다만 검색되지 않는 플래시 덩어리들은 검색 사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HTML5가 미래다라고 말한 배경에는 '자신들만의 즐거운 한 때'를 방해 받기 싫은 심리가 녹아 있다. 그들의 의견 표출 시점이, 그들의 영향력을 볼 때 향후 HTML5의 표준 동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무리수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카드를 이렇게 일찍 쓸 줄 은 몰랐다.

그러한 무리수를 둘 수 있는 배경으로, 이 둘 모두 파트너십에 큰 관심이 없는, 바꿔 말해 자기 완결적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고 정말 스스로 믿는 기업 성향을 들 수 있다. 장애물을 응징하고, 자기 완결적 비즈니스 모델의 수성이 가능하다면 HTML5는 훌륭히 임무를 다했다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간단한 논의가 아니다. 모든 기업은 혁신을 시도하고 그 격차만큼의 수익을 얻는다. 이 혁신의 폭주를 교정하기 위한 시장의 얼개로 유용되었던 표준이 다른 식으로 쓰여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패션쇼의 런웨이 옆에서 흥분하고 있지만, 미래를 바꾸기 위해 중요한 것은 누가 혁신의 진정한 양산화를 가능하게 할지에 있다. 그것은 능력이기도 하고 의지이기도 하다. 표준만이 이 일을 하리라 믿는 것이 무모하다는 교훈은 CORBA 이후 수도 없다.

현장에서 수많은 기업들과의 파트너쉽을 맺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을 지니는 일,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영업대표와 지원조직을 갖추는 일은 표준 위원회를 여는 것보다 훨씬 귀찮고 번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믿거나,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에게는 좀처럼 맞지 않는 일이다. 허나 물론 자신의 영토에서 자신만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도 훌륭한 기업의 한가지 선택지다.

그런데 미래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섹시해지는 일은 혼자 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유용해지는 것은 모두의 참여와 의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지닌 제 각자 생활의 선택지는 단일 기업의 수비 범위를 넘어 선다. 여기에 과거 PC 산업이나 웹 산업이 보여준 광범위한 가치의 네트워크가 필요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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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발자취를 정리하는 표준은 매우 중요하지만,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첫발자국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HTML5 이상으로 플래시나 실버라이트와 같은 자유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고, HTML5는 발전하겠지만 이 사이에 넘기 힘든 격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가끔 우리는 배후의 논리를 간과한 채 현상에 흥분하여 스스로 프로파겐다 머신이 되어 가곤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한번쯤은 곱씹어야 할 사항들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