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IT업계를 뒤흔드는 UX 혁명의 비밀

[연중기획]① UX가 경쟁력이다

일반입력 :2010/01/10 17:37    수정: 2010/01/21 10:50

황치규 기자

IT기업들마다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가 점점 힘들어진 탓이다. 신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업체가 금방 따라오고 텔레비전에 광고를 해봐도 효과는 예전같지 않다. '그 나물에 그밥'의 코드가 지배하는 '과열 경쟁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과열 경쟁은 디지털 기기와 SW를 넘어 인터넷 서비스 분야까지 덮쳤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꺼낼 카드는 가격 뿐이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우울해지는 순간이다. 수렁에서 나오려면 차별화를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될듯 하면서도 잘 안되는게 차별화다. '지속 가능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순간, 차별화는 많은 기업들에게 오르지 못할 나무와 같은 존재로 변신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비용 구조를 최소화하고 식스시그마를 통해 불량을 줄인 뒤 '규모의 경제'로 밀어부치면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시장에서 일정 점유율을 확보한 뒤 후발주자들을 힘으로 눌러버리는 전술은 거대 기업들이 즐겨쓴 필승카드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규모만으로 기업이 경쟁우위를 유지하기에는 중량감이 떨어진다. 규모의 경제와 관련한 무용담은 한물간 스토리텔링으로 비춰진다.

노키아와 델은 한때 각각 휴대폰과 PC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들어 성장이 답보상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키아는 아이폰을 내세운 애플에, 델은 '맞수' HP에 고전하는 양상이다.

애플 아이폰을 써본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뭔가 다르다.

과거에 쓰던 휴대폰과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뜻일 게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앞세워 키보드가 가진 위상을 흔들었고 애플리케이션 마켓플레이스인 앱스토어를 통해 휴대폰을 이용하는 방식에도 일대혁명을 몰고왔다. 아이폰은 지금도 전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향후 전망도 핑크빛이다. 아이폰 열풍은 '규모의 경제'만 갖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규모의 경제를 잣대로 들이대면 노키아는 애플을 눌러야 했지만 결과는 거꾸로다. 기술력 때문이란 평가로도 아이폰 돌풍에 담긴 의미 전체를 포함하기는 역부족이다.

기업 입장에서 과거에 먹혀들었던 전술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규모의 경제'를 밀어내고 IT시장에서 룰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등장했다는 얘기다.

변화를 이끄는 힘의 실체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을 요약하면 사용자 경험(UX)으로 좁혀지는 것 같다. 기술과 기능에 집중하는 패러다임을 넘어 사용자를 정확하게 분석한 뒤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흐름이, IT업계의 '필승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UX기반 경험경제학 뜬다

UX는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최종 사용자가 소비하는 과정(상호작용)과 그로 인해 형성된 경험을 의미한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지만 핵심은 사용자들이 제품에 담긴 기능과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한마디로 '기술 플러스 감성'이다.

UX관점에서 보면 예전처럼 단순히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사용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다. 쓰지도 않는 기능을 마구마구 집어넣는 것은 반경험적이다. 아이폰이 뜬 것도 기술보다는 경험 때문이란 분석이다.

서울여대 산업디자인학과 이지현 교수는 아이팟터치나 아이폰은 기능은 줄었지만 과거에는 없었던 수준높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면서 아이폰 돌풍은 사용자들의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기능은 많아도 복잡한 것보다는 기능을 줄이는 대신 확실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IT시장에서 명품으로 불릴만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서울대학교 디지털정보융합학과 이중식 교수도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과 크기나 쓰이는 부품이 매우 비슷하지만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보면 달라도 아주 다르다면서 이를 구멍가게와 편의점과의 차이에 비유했다.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 편의점이 누리는 부가가치를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관련 업계도 UX를 바라보는 시각에 중량감이 느껴진다. NHN의 권승조 UX 센터장은 UX는 최신 화두라기보다는 고도화되어야할 상시업무이며 자동차, 휴대폰, 신용카드 등 다양한 서비스 및 제품 광고에서까지 실제 사용법들을 광고 스토리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UX는 기업과 제품 브랜드 경쟁력과 이미지를 높이는데 있어 핵심역량이라고 강조했다.

UX는 몇년전부터 IT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왔지만 아이폰 열풍을 등에 업고 국내외에서 메가트렌드로 떠올랐다. UX로 확실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기업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양상이다.

입출력 기술이 대표적이다.지난 20년간 IT기기 입출력 인터페이스의 대명사로 통했던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는 터치, 센서, 3D로 대표되는 신기술들이 밀려 주도권을 내줘야할 상황에 내몰렸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이중식 교수는 입출력 기술 발전으로 인간과 기계간 상호 작용이 재정의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SW기술도 UX 혁신에 주역으로 꼽힌다. 아이폰이 눈길을 사로잡는 UX를 제공한 것도 하드웨어와 SW 기술을 절묘하게 버무렸기 때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UX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SW란 얘기다. 하드웨어는 사용자들이 보다 나은 UX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인프라일 뿐이다.

사용자가 어떤 제품을 써보고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면 웬만해선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은 법이다. 이를 감안하면 UX는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실제 아이폰 사용자들의 재구매율은 90%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UX를 스쳐 지나가는 유행으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중식 교수도 사용자들은 기계는 바꿀 수 있어도 SW에 고착되면 달라진다면서 UX는 사용자들을 계속 묶어둘 수 있는 확률높은 승부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UX의 부상과 함께 경험경제라는 말도 화두다. 경험경제는 '대량맞춤'의 저자 조셉 파인이 9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경험경제로의 초대'란 글을 기고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UX 열풍 확산과 함께 최근들어 산업시대 이후를 이끌 패러다임 반열에 올라섰다.

경험경제 시대에는 품질 향상만으로는 차별화에 한계가 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경험을 줘야 한다. 조셉 파인은 어떤 기업이 디자인한 서비스가 특정한 사용자에게 딱 맞는 것이라면 하는 입이 딱 벌어질 경험을 줄 것이다면서 경험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UX는 경제구조가 공급자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사실상 전환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키워드다. 공급자 마인드와 UX는 어울릴 수 없는 사이다.

UX 대권경쟁 시작됐다

UX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는게 검증된 만큼,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는 기업들이 이를 그냥 두고볼리 없다. 이미 세계 IT시장은 UX 시대, 주도권을 잡기위한 업체간 쟁탈전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NHN, 야후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다음커뮤니케이션, 아이리버, 넥슨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UX전담 조직을 가동하는 것은 물론 투입하는 실탄도 늘리고 있다.

분야도 인터넷, 통신, 휴대폰, 웹서비스, IPTV, 온라인 게임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UX가 적용하는 업무도 확대일로다.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주력하는 것을 넘어 제품 기획부터 판매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UX가 전진배치되고 있다. UX를 적용하는 폭과 깊이 모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UX는 개인 사용자 시장만의 이슈는 아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도 UX 사정권에 들어섰다. 고객 만족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IT서비스 업체인 삼성SDS와 LG CNS가 UX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이유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도 UX에 대한 투자대비효과(ROI)는 크다고 한다. LG CNS가 진행했던 한 프로젝트의 경우 콜센터 시스템에서 하나의 업무처리를 위해 4개의 화면을 이동하고 25회의 클릭을 해야했는데, UX팀은 실사용자의 업무 흐름을 고려해 1개 화면으로 설계하고 18회의 클릭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콜센터 업무 시스템 동선을 28% 단축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이다. 케이블TV UX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에서도 VOD서비스 히트율이 30% 이상 증가했다.

LG CNS 송석례 UX팀장은 UX랩을 활용해 사용자 중심 UI와 디자인 구축을 비롯한 사용성 진단, UX컨설팅, 디자인 품질 검수 등 고도의 전문화된 서비스를 더욱 확대시켜나갈 것이라며 시스템외에 모바일을 비롯한 다양한 디바이스와 IT가 녹아드는 영상디자인, 공간디자인, 환경디자인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차원높은 IT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에게 UX는 세계 시장에서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유망 분야로 꼽힌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UX 수준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추격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온라인 게임이나 웹서비스 분야에선 국내 기업들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빠르다. 제대로된 UX를 맛보고 나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기업들에게 수준높은 UX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UX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2010년 IT시장의 메가트렌드다. 과열경쟁의 딜레마에 중독된 기업들에게 해독제와 같은 존재다.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UX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만큼 UX를 둘러싼 변화의 속도는 점점 가속화될 것이다. 그속에서 많은 혁신 사례들이 나오게될 것이다.

그래서다. 2010년 IT시장을 강타할 UX 혁명은 큰 그림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때그때 단타성 이슈로 다루기에는 UX가 쏟아내는 변화의 에너지는 너무 크다. 국내외 UX 전문가들이 가진 경험을 공유하고 질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열린 공간도 필요한 시점이다. 얼핏보면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게 바로 U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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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만큼, UX가 단순한 유행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업의 핵심 전략이 될 필요가 있다. 지디넷코리아가 'UX가 경쟁력이다'를 연중기획 시리즈로 내보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번 기획을 통해 UX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현장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나갈 것이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담아낼 것이다. UX 관점에서 바라본 다양한 혁신 사례들도 집중적으로 다뤄나갈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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