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발상전환 새피 수혈, KT 관전법

통신업계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던 파격적 외부 인재 영입이다. 기대반 우려반의...

일반입력 :2009/06/18 10:38    수정: 2009/06/18 13:15

이택 기자

기대반 우려반 이지만 화끈하다. 파격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혁명 수준이다. 과거의 잣대로만 본다면 '도저히 불가능'이었다. 그래도 현실이 됐다. KT의 외부 임원 영입과 인사개편이 통합과 함께 일단락 됐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함과 직진성이 트레이트 마크인 이석채 회장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난다.

10년만에 '왕의 귀환'을 실현한 그였다. 후속 작품들은 더욱 충격적이다. KTF 합병을 초고속으로 이뤄 냈다. 여기까지는 '놀라움'이었다. 그의 능력과 KT그룹의 역량이 합쳐진 결과로 '해석 가능'이다. 진짜 숨겨진 코드는 인사였다. 가늠할 수 없는 '쇼크'였다.

예측 가능했던 경영진의 전면 물갈이는 눈길을 끌 지 못했다. CEO 교체 때마다 고위임원들은 냉온탕을 오갔다. 임원 개개인의 부침이 심한 조직이 KT였다. 당연히 남중수 체제와는 또다른 실세그룹이 등장했다. 혁명은 외부 인재 수혈의 폭과 깊이에서 비롯됐다. 정통관료에 대표적 정책 전략가인 석호익 부회장, 검사 출신 정성복 윤리경영실 사장이 등장한 것은 조직 역량 강화 차원의 선택이다.

C-레벨의 실무 책임급으로 넘어가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표삼수 기술전략실 사장으로 시작한 글로벌기업 출신 외부 영입은 김일영 그룹전략CFT장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표실장은 오라클, 김 CFT장은 BT맨 이었다.

KT 사상 첫 기록도 나왔다. 양현미 개인고객전략본부장이다. 신한은행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최초의 여성 전무 영입으로 남게 됐다. 홈고객부문 전략담당 임원도 여성이 영입됐다. LG생활건강에서 '오휘' 등 화장품 명품브랜드를 마케팅한 송영희 전무이다.

상황이 이쯤되면 KT에게는 변신 혹은 체질개선이 아니다. KT의 재탄생이라 해야 옳다. 경영진 교체는 상시적 관행이다.그럼에도 외부 수혈에 웬 호들갑이냐는 냉소를 보낸다면 KT를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사람이다.

KT는 100년 통신기업이다. 업의 특성상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패밀리 의식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만큼 안정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안정은 곧 신뢰성과 연결된다.

통신시장 역시 대정부 관계가 먼저이다. 일선 현장에선 전술적 탄력성 보다는 경쟁사 직원들간 '백병전'이 다반사이다. 덕분에 '통신 순혈주의' 가 뚜렷한 곳이다.

KT뿐 아니라 국내 및 해외기업들도 비슷하다. 여타 기간통신사업자들도 이처럼 '엄청난' 인사는 없었다. 하물며 아직도 공기업으로 오인되고 있는 KT이다. 더욱이 영입 인사 가운데는 외국 국적자도 있다. 여성 임원들도 생색내기와는 거리가 멀다.

KT의 양대 사업부문인 유선과 이동전화의 마케팅 책임을 이들 영입파 여성들의 몫으로 돌렸다. 능력을 앞세워 새로운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마케팅 기법을 만들어 내라는 이 회장의 당부가 어린 '야전형 모드'인 셈이다.

물론 각계에서 탁월한 인재를 '모신'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영입과 동시에 주요보직을 맡기는 것은 이례적이다. 영입된 새피는 적응기를 거치는 것이 상례였다. 조직과 업의 분위기를 익히는 일종의 세탁기간을 보낸 후 요직에 발탁됐다.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차선 변경 없는 직진이다. 세탁이 오히려 '털어내야 할 부정적 KT화'의 과정이 됐다는 반성이 앞섰을 수 있다. 바꾸려 영입했는데 되레 기존 질서에 동화되는 역작용이 수반 됐다는 것이다.

KT에 앞서 인사로 화제를 모은 기업은 삼성과 LG였다. 삼성전자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S-급 인재를 끌어 모았다. LG전자는 남용 체체 출범과 함게 사상 초유의 인재 수혈을 단행했다. 본사의 부문별 책임자 가운데 CFO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외국인으로 채웠다. 심지어 인사부문도 포함됐다.

회의는 영어로 진행하고 문서도 영어와 한국어를 교차해 사용한다.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지만 C-레벨의 대다수를 다국적 연합군으로 충원한 회사는 보기 드물다. 기존 임직원들과의 마찰, 조직 부적응, 커뮤니케이션 충돌 등 다양한 지적사안이 제기됐지만 감행됐다. 삼성과 LG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중이다.

이석채 회장 역시 유사한 케이스를 갖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 이석채 정통부장관은 '체신부'를 경제부처 '정통부'로 거듭나게 한다. 그는 내부 혁신 뿐 아니라 경제기획원의 관료들을 정통부에 수혈,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경험적 성공학습 효과를 이번에는 KT에 적용하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건너야 할 강이 있다. 강력한 오너쉽을 갖고 있는 대기업의 파격실험과 KT는 처지가 다르다. 이 회장은 '오너형 CEO' 이다. 내부 통제와 결속에는 한계가 있다. 벌써부터 그의 '넥스트 스텝'에 대한 설이 떠돌고 있다. 여차하면 비판과 견제가 고개를 들 수 있는 공간이 엄존한다.

소극적 저항세력들은 아예 '엎드리는 쪽'을 택할 공산이 크다. 변화는 위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직원들의 볼멘소리도 외면하기 어렵다. "뼈빠지게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요직은 낙하산으로 채우냐"는 정서적 반감이 거칠게 표출되면 도리가 없다. 논리와 객관성이 들어 설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집단 정서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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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에서 튀어 나오는 발상의 전환"을 걷기로 한 KT의 시도는 당연히 주변을 긴장 시킨다. 창의적 시각의 접근이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타파하는 전략 전술, 감성과 고객 마인드를 유혹하는 마케팅으로 통신시장 판도를 뒤흔들어 보라는 기대치도 높다.

분명 기대이다. 첫단추에는 찬사가 우선이다. 그 다음은 KT와 경영진들이 감당할 부분이다. 거대한 도전과 실험에 대한 1차 평가는 '실적'이란 숫자가 등장하는 연말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통신판도 이업종 교배를 통한 건강한 진화가 이루어지는 동네인 지, 관전자들은 흥미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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