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트위터와 김연아 효과, 그리고 실시간 웹

일반입력 :2009/06/10 18:38

추현우

이버, 싸이월드 등 토종 웹 서비스의 강세가 뚜렷한 국내 웹 서비스 시장에 최근 색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물 건너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Twitter.com)'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마이크로 블로그' 혹은 '소셜 메시징 서비스'로 불리는 트위터는 웹 세대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하는 이색적인 서비스다. 얼핏 보면 블로그 같지만, 한 번에 140자까지만 글을 올릴 수 있고, 마치 메신저를 하듯 다른 사용자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영미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데미 무어 등 정재계의 유명 인사는 물론 헐리우드 스타까지 참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블로그가 정적이고 다소 진지한 서비스였다면, 트위터는 동적이고 가벼운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간단히 개설해서 하고 싶은 말을 재잘거리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단점은 다국어 지원이 미비하다는 점. 영어와 일본어만 지원한다. 한글로 글을 작성할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한글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사용자에게는 생소하고 다가가기 어려웠다. 영문 서비스에 익숙한 몇몇 얼리 어답터와 해외 동포들이 트위터를 사용했다.

적어도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에 가입하기 전까진 그랬다. 올해 5월 들어, 피겨 퀸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에 가입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트위터에 한국인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6월 9일, 현재 1만 1천449명의 트위터 사용자가 김연아 선수의 트위터(twitter.com/yunaaaa)를 구독(follow)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 배경 화면을 바꾸거나, 피곤해라고 던지는 한마디에도 열화와 같은 반응이 쏟아진다.

일찌감치 트위터에 자리를 잡은 이찬진 대표의 트위터(twitter.com/chanjin) 구독자 수가 2천700명 선에서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인기다. 시쳇말로 '듣보잡' 해외 웹 서비스가 김연아 선수 덕분에 엄청난 한국인 사용자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트위터 바람은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트위터 방문자 수가 올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5월 2주 기준, 주간 방문자 수는 3만 2천여명으로 지난 1월 1주의 6천여 명에서 432% 증가했다. 주간 방문자 1천만 명 이상의 네이버 블로그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비하면 하찮은 수치지만, 유사한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중에서는 독보적인 증가세이다. 더구나 토종 웹 서비스가 아닌 해외 영문 웹 서비스라는 점에서 트위터의 상승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트위터 바람은 단순한 김연아 효과일까?

일각에서는 트위터의 인기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김연아'라는 반짝 효과일 뿐, 국내 웹 시장의 특성에 맞지 않은 해외 서비스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필자의 시각은 좀 다르다. 비록 트위터가 다른 토종 서비스에 그 역할을 넘겨줄 수는 있어도 트위터가 일으킨 바람은 변방의 작은 소용돌이로 그치지 않고 커다란 흐름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에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웹의 글로벌화이다.

국내 웹 서비스가 웹2.0의 변화에 부응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내수 시장에만 치중하는 사이, 새로운 변화에 갈증을 느낀 국내 사용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IT 업계의 특성상 영미권 기술 트랜드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것도 이유겠지만, 세계적인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해외 서비스에 대한 이질감과 진입 장벽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게다가 근래 한국 IT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한국어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해외 웹 서비스가 늘어났다. 반대로 국내 벤처 서비스가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조금만 살펴보면, 토종 서비스에 비해 가격과 용량, 성능이 월등한 해외 서비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약간의 낯섦과 언어의 장벽만 극복한다면, 굳이 토종 서비스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둘째, 탈 PC화이다.

국내 웹 서비스 시장은 뛰어난 네트워크 인프라 덕분에 PC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해외 기술 트랜드는 휴대폰, 넷북, 클라우드 컴퓨팅 등 PC 중심에서 벗어나 모바일 웹의 활용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영미권 트위터 사용자의 상당수가 휴대폰이나 아이폰을 이용해 트위터를 즐기는 것을 보면, 트위터는 PC 못지않게 모바일에 최적화된 웹 서비스이다.

필자 역시 블랙잭 스마트폰에 PockeTwit 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움직이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도 트위터를 즐긴다. 적어도 트위터를 이용하는 데 있어 PC는 필수적인 수단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휴대폰을 지닌 국내 이통 시장을 고려할 때,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는 모바일 킬러앱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웹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지난 2006년 시작된 웹2.0 열풍에 힘입어, 해외에서는 웹을 새롭게 정의하고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버-클라이언트 중심의 도식화된 웹에서 벗어나 보다 체계화되고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한 웹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웹3.0으로도 불리는 시멘틱 웹이 웹의 구조화와 체계화, 기계화(서버화)를 부추기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 유비쿼터스와 같이 웹을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공유재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구체화되고 있다.

따로 떨어진 서비스나 기능이 아닌 다양한 인프라와 요소들을 합치거나 분산하여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이다. 정적인 웹에서 동적인 웹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즉, 실시간 웹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진화하는 웹, 실시간 웹 시대의 도래

트위터는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실시간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시간 웹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웹 서비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에서 제공되는 구글 맵스(Google Maps) 같은 위치 기반 서비스, 모바일 실시간 게임 등이 바로 실시간 웹의 초기 구현 단계이다.

실시간 웹 환경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다. 블로그가 개방과 공유를 내걸며 개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지만, 소통에서는 수동적인 측면이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가 링크와 댓글을 달거나 트백백을 걸지 않으면,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트위터는 글을 쓰는(update) 행위 그 자체가 소통이다. 140자의 짧은 글은 트위터에 전송됨과 동시에 자신의 구독자(follower)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글을 쓴다는 개념보다 인터넷 메신저처럼 대화라는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타인의 트위터 글에 대한 댓글을 달거나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다시 소통이 되어 회자된다. 미디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문의 시대 이전인 18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가 온라인으로 부활한 느낌이랄까.

트위터는 이러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의 장을 제공함과 동시에 PC를 물론 모바일에 이르는 다양한 수단을 제공한다. 또한 API 개방을 통해 사진 링크, 단축 URL 제공 등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련 서비스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른바 트위터스피어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트위터 역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광고나 프로모션 등 변변한 수익 모델 하나 없이 운영되고 있다. 공짜 서비스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구글이나 MS 같은 거대 그룹에 인수되지 않는다면, 당장 내일 아침 트위터 서버가 멈춘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영미권의 경우 '마이크로 블로그 = 트위터'로 통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다. 얼마 전, 네이버가 인수한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인 미투데이나 플레이톡, SK컴즈의 토씨 등 토종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가 머지않아 트위터를 대신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웹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더라도 여전히 다수 대중은 친숙한 토종 서비스에 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트위터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니다. 트위터가 보여주고 있는 실시간 웹의 미래상을 얼마나 적절히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것이 트위터 그 자체가 됐든, 토종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가 됐든 끊임없이 진화하는 웹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신토불이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주장하는 'IT 강국 코리아'는 그저 공허한 내부의 메아리로만 남을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