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SKT의 50.5%, KT의 50.5%"

일반입력 :2009/05/21 11:44    수정: 2009/05/28 19:56

이택 기자

"불필요한 시장 지배력 논란에서 벗어나 신성장 동력 발굴에 전념키 위해 52.3% 시장 점유율 자율 준수기간을 2007년말까지 2년 더 연장하겠다 (2005년 7월 김신배사장)"

"이동전화시장 50.5%는 지켜려 노력하겠지만 더 이상 시장 점유율 높이기 경쟁은 하지 않겠다(2009년 4월 정만원사장)"

참 이상하지 만 '부러운(?)' 기업 SK텔레콤의 전현직 사령탑들이 천명한 점유율 원칙이다. 이상한 것은 상식의 역설을 주장하는 논리요, 부러운 것은 경쟁사 임직원들의 속마음일 것이다. 이 둘이 어우러져 SK텔레콤은 이통시장의 '권력'이 됐다. 무한대의 성장 욕심을 스스로 억누른 채, 점유율 상한선을 두고 이를 지키겠다고 했다.

비록 신세기통신 과 하나로통신의 인수, 휴대폰 제조업 진출에 따른 규제 그물이 작용한 탓이라 해도 SKT의 '권력'은 흔들림이 없다. 가진 자의 오만이라 비판하겠지만 현실이다. 힘은 가졌으되 극단적 경쟁 제한성 시비는 피해가겠다는 자제와 절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통시장 참여자들은 누구도 SKT의 이같은 말도 안되는 정책을 비웃지 않는다. 도무지 깨지지 않는 철옹성의 위력을 현장에서 실감했다. 주파수라는 원천적 우월적 경쟁력, 축적된 자본과 경영 노하우, 소비 트렌드에 대한 선제적 대응력, 스피디한 의사결정 구조 등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기업이다.

그래서 SKT의 움직임은 경쟁자들에게는 곧바로 '전율과 공포'로 다가온다. 통신요금 내리면 "후발주자 다 죽이는 약탈적 정책"이란 아우성이 튀어 나온다. 보조금으로 대표되는 마케팅 비용 쏟아부으면 싹슬이 논란, 독점 시비가 불거진다.

당연한 이치이다. 이통시장의 절반 이상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규제와 제약을 걷어내고 정글 자본주의가 도입된다면 돈과 유통망, 브랜드 충성도 모두 앞서 있는 SKT의 독무대가 될 것이다.

이를 두고 볼 정부는 없다. 독과점은 필연적으로 반동을 초래한다. 소비자가 죽어날 것이 때문이다. 경쟁체제의 유지 및 활성화는 절대적 가치에 해당한다. 소비자 편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잇따라 도입되고 시행되고 있다. SKT의 독점을 제어하고 후발주자들의 입지를 확보해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편익에 서는 것이다.

지금도 후발주자들은 불완전 경쟁체제 타파를 부르짓는다. 800메가 황금 주파수의 재할당, 공유 주장에서부터 점유율 50% 미만 제한까지 다양하다.

세월의 변화 탓일까. 최근에는 이통시장의 SKT에 대한 화두가 온통 점유율 50.5%의 수성여부에 모아졌다. 유선의 절대 군력자 KT가 KTF를 합병한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거대 기업간 정면승부는 이통시장에서 치러질 것이란 분석에서 비롯됐다.

무형가치의 손익은 주관적 판단이지만 숫자는 객관성이다. 유난히 승부의 결과에 집착하는 언론에겐 좋은 먹이감이다. 통합KT는 SKT의 50.5%를 무너뜨리는 것이 당면 목표이다. 실현된다면 통신시장의 진정한 패자로 올라설 것이다.

SKT역시 다급하게 됐다. 상대가 상대인만큼 물러서지 않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아니 오히려 벼르고 있다.

이번에는 진검승부가 될 것이다. 권력은 사용하는 그 순간부터 영향력과 크기가 급속히 줄어든다. 속성이다. SKT는 그간 시장권력은 쥐고 있었지만 그 모두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SKT의 지배력과 영향력은 그래서 더욱 광대하게 평가 받아 왔다. 일종의 거품도 있다.

이제는 이통시장의 SKT권력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사투를 벌여야 하는 판에 앞뒤 재고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사정은 KT라는 유선 권력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SKT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기름시장의 패자였던 유공이 점유율 50%를 내주는 순간 겪었던 위상변화의 악몽이 생생하다. 이통시장에서 전철을 밟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SKT에게 50% 점유율은 정서적 심리적 마지노선이 아니다. 그것이 허물어졌을 때 몰려올 판도 변화의 후폭풍을 체험해 본 사람들이란 점에서 현실적으로 사수해야할 방어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간과하는 포인트가 있다. SKT와 KT의 싸움의 방향이다. 점유율에 목을 맨 죽고살기식 다툼은 누구에게도 남는 것 없는 상처뿐인 영광일 공산이 짙다. 포화상태의 시장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차별화된 상품도 없다.

결국 '돈질'이다. 지난 10여년간 이통시장을 관통하는 법칙이 있다. 점유율 1% 높이려면 몇천억 태우면 된다는 '쩐의 법칙'이다. 마케팅비 붓는 것과 가입자는 정비례한다는 속설이다. 벌써 현실화됐다. 공짜폰이 난무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KT-SKT라는 초일류기업, 시장 권력자들이 언제까지 가입자 머릿수 싸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나. 주주와 고객들에게 들이내밀 성적표의 유일한 잣대라면 할 말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IT업계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물적 인적 자원을 가장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이 모든 경영역량을 점유율 전투에만 허비한다면 국가적 낭비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양사의 신임 사령탑이 밝혔듯이 해외시장가서 싸우고, 새로운 ICT엔진 만드는 일에 역량을 나누어야 한다.

가뜩이나 대한민국IT, 특히 정보통신산업은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 10여년간 폭발성장했지만 이통산업을 뒤 이을 신사업은 전멸이었다. 정부와 업계가 이것저것 두드려 봤지만 성공한 분야는 하나도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손대볼 분야도 마땅치 않다.

10년을 잘 나가는 이통산업 하나로 버틴 셈인데 지금은 그 마저 약발이 다했다.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이미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오른 KT-SKT에게 당장의 위험은 부재중이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표현하면 '연명중'이다.

그동안 곳간에 쌓아 둔 자금과 맨파워 이제는 앞마당에 꺼내놓고 먹거리 찾아야할 때이다. 시간은 간신히 벌었다. 그리 길지도 않지만 다행이다. 앞으로 10년 새롭게 돌릴 엔진 찾는 일에 경영역량을 안배해야 한다. 가입자 확보에 들이는 돈과 마케팅 역량의 절반이라도 할애하란 것이다.

50.5%는 점유율이 아닌 신사업에 투입되는 경영역량의 점유율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같은 고민은 전세계 모든 국가의 정부, 통신사업자가 똑같이 안고 있다. 미국이 하고, 보다폰이 한다면 우리 방통위, SKT-KT가 못할 것도 없다. 돈이 없나, 인재가 부족 한가. 사업 노하우가 미약한가.

시장 참여자들 역시 압박과 압력의 방향을 바꾸자. 점유율과 요금 따지는 것 만큼 초일류기업의 '밥 값' 제대로 하는 지 엄중하게 묻자. IT신화의 나라에서 '삽질 철학' 앞세워 기업의 창의력과 상상력 죽이는 지도 눈 부릅뜨고 감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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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의 50.5%와 KT의 50.5%는 점유율 전쟁의 상징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경영역량의 메타포로 바뀌어야할 시점이다. 일선의 흙탕물 싸움이 일상화되고, 걸핏하면 요금문제로 국회, 시민단체 불려 다니는 것은 초일류기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미래를 담보로 한 더 큰 싸움, 하늘을 보고 달려가는 더 큰 발걸음은 50.5%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KT-SKT의 역할론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치졸하고 한심한 권력놀음은 3류이다. 초일류가 보여주자. 국민이 쥐어 준 시장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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