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KT가 SKT와 맞짱 뜨는 법

KT는 지금껏 자신보다 강하고 덩치 큰 상대와 붙어본 적이 없다. SKT가 그 첫 상대다

일반입력 :2009/04/16 08:12    수정: 2009/04/16 08:18

이택 기자

 "011도, 우리 것이다" 지난 2000대년 초반 KT맨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건배 구호' 였다. 011은 물론 SK텔레콤을 지칭한다. 술자리 합창은 짧지만 강렬했다. 여러가지 의미가 숨어 있었다. 아쉬움과 회한, 적당한 시기심과 깎아내림이 혼재됐다. KT의 온전한 자산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SK에 내주었다는 아쉬움이 깔려 있다. 품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동통신이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줄은 몰랐다는 회한이 겹쳤다. 새 주인을 맞은 회사가 어느덧 초일류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도 모자라 통신왕국 KT 마저 위협했다. 시기심도 작용했다. 하지만 KT의 1등 자부심은 1백년 짜리이다. SKT가 아무리 잘 나가도 엄연히 모태는 KT이고 통신시장에선 아직 '아우'에 불과하다는 '깎아내림' 심리는 부정할 수 없었다.

KT맨들에게 정서적 일체감을 안겨주었던 이 건배구호에는 이유가 있었다. IMF터널과 유선시장 퇴행 예견으로 KT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창사 이래 가장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간신히 정신 추스리고 세상을 둘러봤지만 이미 모든 것이 바뀌었다. SKT는 IMF때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금, 인력, 브랜드 파워 모든면에서 통신시장의 새로운 지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011'이라는 브랜드는 프리미엄의 상징이었다. 마침 SKT와의 힘겨운 전투를 계속하던 자회사 한통프리텔(KTF)이 반전을 모색했다. 한솔PCS를 인수한 것이다.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KT가 94년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매각)하면서 SK로부터 받은 돈은 대략 4천300억원 수준. 이 마저도 수백억원 정도만 남겨두고 수천억원을 정부가 회수해 갔다. 주주의 권리라지만 KT직원들로서는 인내의 한계였다. 이런 결정을 통과시키는 이사회장에 침투한 노조원들의 '전설'이 탄생했다. 불과 5년여가 흐른 2000년에 KTF는 2조 8천억원(추정)을 주고 한솔PCS를 사들였다. 장사로 치면 최악이다. 화폐가치 따질 것 없다. SKT를 몇천억원 주고 넘겼는데 한솔을 몇조원 들여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구호의 조사가 특별했다. '011은'이 아니고 '011도'이다.

KT가 숙원을 풀었다. 이통 자회사 KTF합병을 이뤄낸 것이다. 이제 관심은 SKT와의 격돌이다. "011도 우리 것이다"에서 "011과 정면승부"로 진화할 단계이다. 벌써부터 '돈 싸움'이 아닌 시장 파이를 키우는 전향적이고 대승적인 경쟁을 강조한다. 양사 모두 입장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구름 위에서 날아다니는 논리 보다 매일 피말리는 영토전쟁을 벌이는 하부조직은 사정이 다르다. 통합KT의 위력은 일단 이통시장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일상의 경쟁이 야기되는 곳이다. 숫자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연말께면 이통시장 점유율을 통한 성적표가 나온다. 불리하고 껄끄러운 일을 시야에서 치워버리는 '비가시화 원칙'은 이제 무덤행이다. 앞으로는 통합KT의 파괴력이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초고속도, 방통 융합도, 유선전화도 좋지만 시장과 분석가들은 이통분야의 결과에 주목한다. 여기서 통신시장의 진정한 1인자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합 KT가 SKT와 맞짱을 뜨는 것이다.

KT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맞짱이 맞다. '이통시장에서의 KT'는 엄연히 SKT이다. 그래서 경쟁의 개념을 바꾸는 일이 최우선이다. SKT는 KT가 지난 1백년 동안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괴물'이다. KT는 지금껏 자신 보다 강하고 덩치 큰 상대와 붙어 본 적이 없다. 한체급 아래의 상대들을 '요리'하면 충분했다. 하나로가 등장해 초고속인터넷(ADSL) 붐을 일으키면 '메가패스'로 융단폭격했다. 케이블TV업체가 약진하면 결합상품으로 대응한다. 시내외 유선전화는 아예 철옹성을 쌓았다. 비록 갈수록 입지는 좁아지고 있지만 압도적 파워와 지위를 누리는 KT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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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SKT는 다르다. 이통시장의 지배력은 KT 보다 크다. 매출, 자금, 인력, 마케팅 노하우 모든면에서 KT에 꿀릴 것이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하다. 더구나 SKT는 이통시장에 최적화된 경쟁력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지난 10여년간 온갖 전투를 치르면서 얻어 진 최강의 무기인 셈이다. KT는 그런 SKT와 승부하는 것이다. 도망갈 구석도 없다. 과거에는 "자회사가 부실해서 밀린다"며 면피라도 했지만 이젠 아니다. KT의 모든 역량이 발가벗겨지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전쟁에 나서는 KT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도전자'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모든 전략전술이 출발해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의 경쟁은 차원이 다른 싸움이다. 통신 경쟁체제가 도입된 이후 지난 30여년의 KT는 '수성'의 역사를 썼지만 이제 처음으로 '공성'의 벌판에 서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011도 우리 것"이라는 '복잡 미묘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조직문화와 자세라면 승부는 뻔하다. 제 아무리 신묘한 상품과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도 전사들의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물거품이다. KT로서는 SKT를 바라보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부터 깨부수어야 한다. '겸허함'이야말로 진정한 자존심이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면 승산이 있다. 여전히 KT는 업력 1백년의 통신전문 기업이고 인프라와 조직 충성도는 넘버원 회사이다. 여기서 KT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임직원들의 고통분담과 헌신만으로 헤쳐가기에는 통신시장의 '현실'이 너무 엄혹하다는 점이다. 그 지긋지긋한 일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자고 통합한 것 아닌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