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이폰은 과연 국내 출시될 것인가?

일반입력 :2009/04/01 16:23

추현우

미리 밝혀두건대 필자는 소위 말하는 '애플빠'이다. 잡스 교주의 교리에 따라 'Mac'과 'i'라는 단어가 들어간 애플의 제품은 조건반사적으로 환호하게끔 자기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물론 실행 파일은 '지갑 열기'이다. 지름신까지 겹치게 되면 '예약 주문'과 '매장 앞 줄서기'라는 초강수도 마다지 않는다. 그런 필자가 돈을 쌓아두고 지르고 싶어도 지르지 못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폰(iPhone)이다.

아이폰의 국내 출시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이 난무했고 지금도 그렇다. 지난해 초부터 '곧 출시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1년이 넘도록 드러난 것은 없다. 올 들어 4월 출시설이 있었지만, 막상 4월이 된 지금도 아이폰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요즘엔 7월 출시 소식이 들린다. 이쯤 되니 필자도 반 포기 상태다.

아이폰의 국내 시장에 선보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 위피(WIPI)가 걸림돌이다', 'IMEI 때문이다', '애플과 협상에 실패했다', '환율 탓이다' 등등 수많은 해석과 관점이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기술적으로 위피가 걸림돌이 될 수 있고, IMEI 정책이 아이폰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애플이 무리한 요구를 해 이통사가 곤란할 수 있고, 치솟는 환율 때문에 가격 정책을 수립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이폰이라는 세련된 단말기가 아닌 아이폰이 가진 치명적인 혁신성에 있다.

즉, 아이폰으로 인해 이통사 중심인 국내 모바일 시장이 송두리째 뒤집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밥그릇을 빼앗을 게 뻔한 단말기에 이통사가 적극적일 리가 있겠는가.

이통사의, 이통사에 의한, 이통사를 위한 국내 모바일 시장

국내 모바일 시장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시장에서 포식자는 이동통신망 사업자인 SKT, KTF, LGT 3사이다. 삼성, LG 등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휴대폰 단말기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통신사별 전용 단말기라 할 수 있다. 단말기 제조업체에서 각 이통사별로 휴대폰을 따로 만들어 공급한다.

단말기에는 해당 이통사의 각종 서비스(요금제, 무선인터넷, 음원 등)가 탑재된다. 따라서 제조업체와 이통사는 눈치 보기를 넘어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밀월 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도 이통사가 주는 대로 받아쓸 뿐이다. 특정 단말기를 쓰고 싶다면, 그 단말기를 채택한 이통사에 가입해야 한다. USIM 개방이 된 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단말기를 자유롭게 교체하는 사용자는 드물다. 이통사가 제공하는 부가 서비스만 써야 하며, 다른 좋은 서비스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가입한 이통사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이다.

CP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나 콘텐츠 하나를 개발하려도 단말기는 물론 이통사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만들어 놓고도 이통사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소비자의 손을 거치기도 전에 사장되기 일쑤다.

망을 장악하고 엄청난 영향력과 자금을 무기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통사가 중심에 서서 국내 모바일 시장은 성장해왔다. 이러한 닫힌 시장 구조는 적지 않은 모순과 불합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결정적인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변하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 아이폰이 등장했다. 아이폰이 바로 닫힌 시장에 주는 결정적인 충격 그 자체이다. 아이폰이 지닌 혁신성과 서비스 중심의 구조는 그동안 이통사들이 누렸던 기득권과 수익 구조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

이통사와 제조업체 모두를 위협하는 아이폰

아이폰은 이통사도, 단말기 제조업체도 아닌 컴퓨터를 만들어 파는 애플이 만든 휴대폰이다. 따라서 이통사의 수익 구조는 관심도 없고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 LG 등 단말기 제조업체와도 경쟁 관계에 있다. 문제는 아이폰이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진 휴대폰이라는 점이다.

디자인과 기능을 넘어 하나의 패션/문화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을 능가하는 제품은 없다. 단말기 자체의 경쟁력만으로도 아이폰은 소비자의 시선을 끈다.

이통사 입장에서 잘 만들어진 단말기를 마다할 리 없다. 그런데 아이폰은 이통사도 무시하고 있다. 아이폰의 관점에서 이통사는 그저 음성과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한 망을 제공하는 업체일 뿐이다. 이통사와의 밀월 관계를 구축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이통사의 고민이 시작된다.

일례를 들어 보자. 국내 이통사의 주요 수익 모델이 SMS나 벨소리, 게임, 음원 다운로드 같은 부가 서비스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MP3 음악 파일 하나를 내려받기 위해서는 1) 이통사가 제공하는 채널이 탑재된 전용 단말기나 소프트웨어를 통해 2) 이통사 전용 음원 서비스에 접속한 후 3) 접속료와 음원 사용료를 지불하고 내려받는다. 이 모든 과정에 이통사가 개입되어 있고, 각 과정마다 이통사에게 수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아이폰은 다르다.

1) 아이폰 자체 혹은 iTunes 소프트웨어를 통해 2) 애플이 운영하는 iTunes Music Store에 접속한 후 3) 원하는 음원 파일을 검색해 음원 사용료만 지불하고 내려받는다. 게다가 과정도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여기에서 이통사의 역할은 전혀 없거나 망을 제공하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게 된다.

수익 대부분은 애플이 가져간다. 심지어 애플은 사용자가 이통사에 지불하는 데이터 요금 중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십수 년 동안 이통사 중심의 시장에 익숙한 국내 이통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수많은 CP를 거느리며 콘텐츠를 독점하던 구조도 무너지게 된다. 애플의 App Store는 게임과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아이폰 전용 애플리케이션 공급 채널이다. 애플이 직접 운영한다. 개발자들은 이통사의 환경이나 조건에 따를 필요 없이 오직 아이폰에 최적화된 게임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App Store에 등록하면 그만이다. 애플이 유통과 판매를 책임진다.

판매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개발자와 애플이 나눠 가진다. 여기에도 이통사의 몫은 없다. 단지 애플리케이션을 전송하는 데 드는 데이터 요금을 더 받는 정도랄까? 이마저 애플은 이통사에게 데이터 정액 요금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통사는 철저히 배제된 시스템이다.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

이처럼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은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업체가 배제된 채, 애플과 소비자, 그리고 콘텐츠 개발자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애플은 멋들어진 단말기와 간편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CP와 개발자는 이통사 눈치를 보거나 골치 아픈 단말기 호환 문제를 걱정할 필요없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직접 수익을 얻는다. 이로 말미암아 소비자는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누리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특히 그간 소외되었던 CP와 개발자들이 아이폰을 반기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외 모바일 개발자 사이에 애플 App Store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App Store에 등록된 게임 등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얻으면서 개발자를 돈방석에 앉혀 놓았다.

최고 히트작인 슈퍼몽키볼 게임은 3일 만에 3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아마추어 개발자가 만든 십자말풀이 게임도 하루 만에 2천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App Store가 모바일 개발자의 엘도라도가 되고 있다. 별다른 마케팅이나 제약 조건, 언어의 장벽 없이 쓸만한 소프트웨어만 개발하면 전세계로 팔 수 있는 유통 채널이 열린 것이다. 그것도 판매액의 70%는 개발자 몫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수익을 갉아먹던 이통사의 횡포는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아이폰은 새로운 경험이다. 무선통신망 외에 Wi-Fi와 블루투스, PC/매킨토시와의 자동 싱크 기능을 제공하는 아이폰은 소비자가 통신비 부담없이 마음껏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게 한다. 불편 하고 조잡한 UI 대신, 시원스럽고 직관적인 UI와 간편함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동영상 감상과 MP3 재생, 일정관리, 웹서핑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공급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함으로 인해 이통사가 유통 단계를 가로막고 폭리를 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났다(물론, 애플이 이통사의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라는 관점도 없지 않다).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가 바로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이다.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지 않는 진짜 이유

이런 아이폰의 혁신성과 새롭게 조성되는 시장을 국내 이통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세계 최대의 VoIP 업체인 스카이프(Skype)가 아이폰 지원을 시작했다. 비싼 이통사의 무선망을 사용하지 않고, 사방에 널린 값싼 인터넷망만으로 음성 통신이 가능해진 것이다. 무선망을 독점하고 있는 이통사에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에 이통사의 몫이 없거나 현저히 적다는 사실 못지않게, 장기적으로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조차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통사를 곤란케 한다. 이쯤 되니 국내 이통사가 아이폰 도입에 적극적일 리가 없는 것이다.

국내 이통사가 아이폰을 받아들인다면 두 가지 전략 중 하나를 취해야만 한다.

첫째, 아이폰의 에코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애플과의 협상을 통해 기득권을 일부라도 보장받고, 데이터 요금과 콘텐츠 수급,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아이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에 이통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 이통사는 무선망 제공자 역할에만 머무르고 애플이 국내 이통사에만 호의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통사 나름의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둘째, 아이폰을 국내 시장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단말기 보급을 막지는 않되, 관련 서비스나 로컬라이징, 전용 요금제 등의 지원을 하지 않거나 등 한시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 시장에서 아이폰의 인기가 예상보다 저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폰을 보이콧하면서 이통사에 호의적인 단말기 제조업체를 통해 아이폰 킬러를 공급받는 전략을 쓸 수 있다.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통할 법한 전략이다.

따라서 당분간 아이폰 국내 출시 소식은 접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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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법.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통사도 모를 리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가 지속되는 한 제2, 제3의 아이폰 유혹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 이폰이 국내 출시되는 날, 필자는 매우 기쁠 것이다.

멋진 새 휴대폰을 가질 수 있어서라기보다, 아이폰이 가져다줄 혁신과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도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아이폰이 한국 소비자의 손에 들어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