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국내 모바일 산업, 이대로는 안된다

일반입력 :2009/03/05 16:01    수정: 2009/03/05 16:38

류한석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일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ISP 업체(예컨대 KT,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등)에서 제공하는 PC만을 사용해야 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만을 사용해야 하고, 또한 사용한 패킷만큼 종량제로 계산하여 통신료를 내야 한다면 어떨까?

끔찍한 일이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처럼 인터넷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인터넷이 일상 생활의 필수도구로 자리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네트워크로서의 초고속 인터넷망, 하드웨어로서의 PC, 그리고 소프트웨어로서의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이 모든 것들이 한 업체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 모바일에 대해 얘기해보자. 왜 모바일 시장에서는 이통사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일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결과로 소비자의 편익은 외면되고 있다. 휴대폰은 이제 단순한 음성통신 기기가 아니라 인터넷 접속기기로서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다.

그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하지만 한국의 모바일 산업을 보라. 이통사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 나머지, 한국의 모바일 산업은 기형아가 되어 버렸다.

3G가 가입자의 절반 가까이 보급된 상태이지만, 소비자들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광고에 현혹되어 비싼 폰을 구입한 후 그저 음성통화만 할 뿐이다. 데이터통신에 강한 3G는 스마트폰과 궁합이 잘 맞는다. 스마트폰의 가장 탁월한 용도는 인터넷 통신과 애플리케이션 활용이다.

그런데 한국의 스마트폰 현황을 보면, 윈도우 모바일을 탑재한 일부 모델이 출시되어 있을 뿐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은 아예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WIPI 폐지와 함께 출시 소문은 있지만 여전히 결정 난 것이 없다. 그리고 이통사들이 오랜 세월 동안 휴대폰에서 동작하는 웹과 애플리케이션을 통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 한국의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지금 전세계 모바일 산업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음성통신이 위주였던 휴대폰이 이제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고서 인터넷 통신을 위한 기기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워드나 스트레드시트 작업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PC가 대중을 위한 인터넷 머신으로 진화했듯이 말이다.

이제 휴대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전화도 되는 기기이다. 앞으로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시간보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스마트폰을 써본 사람이라면 필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 써본 사람은 이에 대해 논쟁할 자격이 없으니 일단 써보고서 얘기하자. 제대로 써보지를 못했으니 니즈가 없는 것이다. 그게 지금 한국의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모바일 산업은 마치 PC 산업이 겪은 것과 흡사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휴대폰의 용도가 단지 음성통신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고도의 운영체제가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시장에서는 노키아의 심비안, RIM의 블랙베리, MS의 윈도우 모바일, 애플 아이폰의 맥 OS X, 구글의 안드로이드 등 빅5 플랫폼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단지 음성통신과 간단한 애플리케이션 운영에 적합한 RTOS(실시간 운영 체계)는 앞으로 신흥시장의 저가폰에나 쓰이게 될 것이다. 이미 선진시장은 수년 전부터 고기능폰으로 바꾸는 대체 수요들로 휴대폰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최근 여러 스마트폰 플랫폼의 성능 향상과 경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선진시장은 스마트폰 플랫폼들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 전세계 휴대폰 시장은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인데, 스마트폰은 유독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모바일 산업은 네트워크와 하드웨어, 그리고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이 그 발전 정도에 있어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통사들이 시장을 좌우하는 현상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는 법이지만, 국내의 경우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그로 인해 이통사들은 비싼 폰을 팔고 비싼 통신료를 통해 큰 수익을 내고 있지만,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 분야는 업체도 제품도 존재감이 없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비싼 폰을 구입한 후 음성통화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같은 국내의 상황은 과연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이대로 가면 어쩌면 우리는 모바일 후진국이 될는지도 모른다. 소비자의 편익 증대와 모바일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희망사항을 갖고 있다.

첫째, 국내 이통사들은 ISP업체들처럼 그저 통신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는 뭘 하든 하지 않는 것이 관련 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과거의 행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본다. 이통사들간의 경쟁을 통해 데이터통신료는 대폭 싸져야 한다. 그게 모바일 산업이 발전하는 길이다.

둘째, 국내에도 대만의 HTC와 같은 소위 화이트박스 업체가 등장 하기를 바란다. HTC는 다양한 윈도우 모바일폰을 만들어 성장한 업체인데 최근에는 안드로이드폰도 만들고 있으며 최근 그 성장세로 인해 주목을 받고 있는 업체이다.

PC산업과 비교하자면 HTC는 마치 델과 같은 업체이다. 그냥 하드웨어만 열심히 만든다. 국내에도 그런 업체가 등장하여 삼성, LG와 경쟁하고 해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면 좋겠다. 아니면 삼성이나 LG가 화이트박스 제조에 좀 더 주력해도 좋을 것이다. 독자폰으로 수익을 올리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셋째, 모바일 웹,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일본 DeNA의 모바게타운은 단지 모바일 사이트만으로 천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하여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해외에서는 윈도우 모바일폰,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는 업체들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하고 성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의 상황은 이 모든 흐름에서 제외되어 있다. 마치 갈라파고스 섬처럼.

일본 총무성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2007년 기준으로 모바일 사이트가 16,000개를 넘었고 사업자 수도 4,200개를 넘었다.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많아져야 하고 실제로 성공하는 사례가 나와야 한다. 진정한 모바일 강국의 핵심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세 번째 희망사항이 달성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첫째 희망사항과 둘째 희망사항이 달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하드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이 이통사의 통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는 스마트폰 플랫폼의 확산이 힘들 것이고 또한 이통사와의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뛰어드는 업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모바일 산업의 발전과 소비자의 편익 증대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필자 또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희망사항들이 실현되기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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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데이터통신이용료로, 스마트폰을 통해 지하철에서 인터넷도 하고 연극 티켓도 예매하고 지도를 보면서 맛집도 찾고 싶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데이터통신료도 비싸고, 쓸만한 폰도 없고, 쓸만한 애플리케이션도 없으니 그저 해외 이용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필자는 믿고 있다. 한국의 모바일 산업도 이제 변화할 것임을.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기존에 기득권을 가진 몇몇 업체가 막을 수 없는 필연적인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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